저번 시간 저희는 한국 성결교회의 특이점을 보았습니다. 한국 성결교회의 가장 큰 특이점은 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직접 복음을 전한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은 한국 성결교회를 세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정빈, 김상준 중에서 정빈의 생애를 알아보겠습니다. 

정빈은 1873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납니다. 신미양요(미국이 강제로 통상 수교를 하자고 했으나 조선이 반대하여 교전이 일어나고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이 강화됨)가 1871년이었으니 세상은 엄청 급박하게 돌아가던 때에 태어난 것입니다. 

정빈은 8살 때 서당을 다니면서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고 10살 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20살이 되었던 1893년 연동교회 청년부 신자가 됩니다(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절러가 한국 땅에 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정빈은 1905년 8월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왜 일본으로 건너갔냐면 자신에게 복음을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1905년 11월 17일 조선은 을사조약으로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머나먼 일본 땅에서 그 소식을 들은 정빈은 일본의 태극학회에 가입합니다. 그는 성경을 가르치고 설교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강조하고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태극학회에서 활동하던 정빈은 1905년 김상준과 함께 동경성서학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동경성서학원은 나카타주지, 길보른, 카우만이 일본에 사중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세웠던 신학교였습니다. 정빈은 그 동경성서학원에서 성경을 배우고 열심히 노방전도를 합니다.

그리고 한국 성결교회의 핵심인 사중복음을 배우게 됩니다. 2년 동안 동경성서학원에서 열심히 배웠던 정빈은 1907년 졸업한 뒤 바로 한국으로 귀국합니다. 그는 김상준과 함께 1907년 종로에서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사중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한국 성결교회의 처음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성결교회가 다른 외국 선교사의 도움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정적 어려움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빈과 김상준은 좌절하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에서 정빈은 일본에서 배운 전도 방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것은 악기를 치고 전도 연설을 하며 각 집을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요.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에서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 정빈은 다른 교회를 추천합니다. 예를 들어, 

정빈: 예수님 믿으세요.
x: 네, 믿을게요. 
정빈: 그럼 저희에게 오지 마시고 저기 있는 교회 다니세요.

이러는 것입니다. 장로교, 감리교가 성장하는 데 한국 성결교회도 큰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한국 성결교회는 선교와 복음 전도를 중심으로 한 전도관이 시작입니다. 그러나 1907년 평양대부흥으로 대한민국에서 믿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은 선교 단체여서 많은 오해가 생깁니다.

또한 1914년 9월 30일 정빈에 이어 무교정 복음전도관 주임 교역자가 된 김상준은 무슨 이유인지 정빈과 서로 의견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들을 일본에서 가르쳤던 길보른이 화해하라고 하고 김상준은 정빈을 찾아가 사죄하지만 정빈이 받아 주지 않습니다. 여기서 정빈에게 '너무한다. 못됐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사정이 있었겠지요.

정빈은 성결교회 목사로서 사표를 제출하고 북간도 지방으로 떠나갑니다. 그는 교단의 제약 없이 복음을 전하다가 1917년 동양선교회로 돌아와 안성교회를 창립합니다. 2년 뒤인 1919년 9월 인천교회로 가서 복음 전하는 일에 힘씁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사중복음을 듣고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따랐기 때문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은 1921년 9월 교단을 조직하고 교단 명칭을 '조선야소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로 합니다. 

교단이 만들어졌을 때 정빈은 인천교회를 사직하고 북간도로 떠납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땅에 사중복음을 선포할 때 원칙이 있었습니다. 첫째, 어떤 새 교단도 만들지 않는다. 둘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 

하지만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은 교단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정빈은 자기 신념에 맞게 교단을 떠난 뒤 북간도로 갑니다. 북간도로 간 이후 개척교회를 시작하지만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 이후에 정빈에 대한 자료가 없습니다.   

급변하던 시대 속에서 복음을 붙들고 살았던 정빈, 한국 땅에 사중복음을 전파했던 정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결교회 있는 것입니다. 성결교회가 이단이라고요? 아닙니다. 성결교회는 한국인이 한국 땅에 복음을 전한 정통 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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