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7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학교를 출발해 국회까지 걸었다. 국회에서 노숙하는 친구들의 부모님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아름다운배움 멘토들은 음료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아름다운배움 고원형 대표(36)를 처음 만난 건 작년 7월 16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이었다. 그날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생존 학생들이 국회에서 노숙하는 희생자 부모들을 응원하기 위해 도보로 행진하던 때였다. 고원형 대표와 대학생 멘토들은 코스 말미에 자리를 잡고 즉석에서 음료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현장에 있던 한 목사의 소개로 고 대표와 인사를 나누었다. 잠깐 이야기를 들어 보니, 청소년 멘토링 전문 기관 아름다운배움은 생존 학생들을 직접 만나고 케어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고 대표는 일산은혜교회(강경민 목사) 교인이었다. 세월호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기독교인이라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었지만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이들이 언론에 큰 상처를 받은 상태라 자신들도 조심스럽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아름다운배움은 작년 5월 말부터 1년 가까이 생존 학생들과 희생자들의 형제자매를 상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세월호와 관련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없다. 직원들과 멘토들이 아이들을 위해 일절 언론사와 접촉하지 않았다.

고원형 대표를 다시 만난 건 올해 4월 6일, 좋은교사운동이 주최한 집담회에서였다. 고 대표는 이 자리에서 "1년 동안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고 이런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단원고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고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숨어서 활동했다. 가능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1주기가 다가오고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는 상황에서, 벌써 잊히는 것 같아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그 자리에서 어떻게 단원고 생존자들과 만나게 되었는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했다.

4월 1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아름다운배움 사무실에서 고원형 대표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늦깎이(?) 신자였다. 전까지는 교회에 나가지 않다가 3년 전부터 일산은혜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고 대표와 대화하면서,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부터 그가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 고원형 대표는 작년 5월부터 단원고 생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절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은 점이 아이들에게 신뢰를 주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아이들 회복시킬 능력 없는 나라

아름다운배움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만난 것은 교육청의 요청 때문이었다. 작년 4월 16일 이후, 단원고 생존 학생 75명은 바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교가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생존 학생들도 치유가 필요했다. 이들은 안산 중소기업연수원에서 두 달간 합숙했다. 그때 경기도교육청에서 아름다운배움으로 연락해 왔다.

"아이들이 오히려 상담에 너무 지쳐 있다는 거예요. 와서 좀 다른 프로그램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멘토 40명을 선발해 중소기업연수원에 들어갔죠.

가서 보니까 실제로 아이들이 상담에 많이 지쳐 있었어요. 처음에는 A라는 정신과 박사가 상담하더니, 다음에 갈 때는 B라는 박사가 앉아 있더라는 거예요. 그리고 똑같은 걸 물어봐요. 아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질문이 '단원고 학생이냐'와 '요즘 어떻게 살고 있냐'라고 하더라고요. 하도 많이 물어보니까. 이런 식으로 상담 프로그램만 돌린 거예요."

고원형 대표는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접하게 되면서 당시 아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참여했던 많은 단체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정신과 박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한민국은 아이들을 회복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게 고 대표가 내린 결론이었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최고의 전문성은 오래 같이 있어 주는 것이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다시 알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자기 편이 되어 주는 단 한 사람이에요. 자기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는 한 사람이 필요한 거죠. 무슨 박사 학위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사람들은 대학생 멘토가 전문성이 없다고 해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대학생들은 아이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알거든요. 저희는 프로그램을 할 때 치유 전문가와 대학생 멘토들이 항상 같이 움직여요."

아름다운배움은 밴드, 요리, 뮤지컬, 공예, 바리스타, 마술, 원예 등 문화 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멘토들이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관계를 쌓았다. 아이들의 반응은 좋았다. 아름다운배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다른 곳의 프로그램보다 아이들에게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희는 연수원에서 프로그램 진행하고, 6월 말에 연수원 나왔을 때부터는 방학 프로그램 진행하고, 2학기부터는 학습적인 측면도 도와줬어요. 아이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아이들은 세월호 참사를 겪었지만 그냥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에요.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노는 거 좋아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거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들이에요. 그런 걸 있는 그대로 받아 줬어요.

또 한 가지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저희가 일절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아이들이 언론에 대한 반감이 심해요. 그래서 저희도 언론과 인터뷰하지 않았어요. 사실 사업적으로 본다면 단체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겠죠. 하지만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고 직원들과 멘토들이 모두 공감했어요. 아이들 곁에 오래 있으려면 조용히 있어야 하거든요."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한 이해 없이 접근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고 대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의 가혹함을 느꼈다.

"저희도 사실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온 아이들이니까. 그들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어요. 아이들은 그냥 놀기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잖아요. 그리고 사람이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하루 종일 슬프지 않거든요. 근데 사회적인 시선이, 걔들은 웃으면 안 되고 놀면 안 되고 이런 거예요. 이상하게 삐딱해져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특례 입학 이런 건 원하지도 않았어요. 어른들이 괜히 그런 얘기해서 상처 준 거죠.

그래도 단원고 아이들이 생각보다 힘이 있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 중에 마지막에 자신의 롤모델을 찾아 인터뷰하는 시간이 있어요. 2명이 저희를 찾아오더라고요.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고 하면서. 아이들이 '나는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고원형 대표의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바로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들이었다. 고 대표는 이들을 위한 돌봄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경기도교육청에 지속적으로 얘기했다. 희생자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우느라 집 밖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희생자 부모님들에게는 무엇이든 '가해자'가 있습니다. 정부든 해경이든 유병언이든 언딘이든.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형이 죽었는데 동생이 울지 않는 거예요. 어머니가 너무 우니까 동생은 본인도 너무 슬프지만 울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어머니는 또 그걸 모르고 '너는 형이 죽었는데 울지도 않느냐'고 야단치는 거예요. 그러면 둘째에게는 어머니가 가해자가 돼요. 혹시나 그런 아이들 중에 누구 하나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우리나라 완전히 무너지는 겁니다."

마침 한 NGO가 안산 회복팀 파트너로 아름다운배움을 선택해 3년 동안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름다운배움은 작년 7월, 안산글로벌센터에 돌봄학교를 만들었다. 희생자 형제자매들만이 아닌 안산 지역 청소년들까지 대상으로 했다.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140여 명 정도 되는데 돌봄학교에 참석하는 인원은 30~40명 정도다. 아름다운배움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돌봄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 지난 4월 6일 좋은교사운동 집담회에서 발언하는 고원형 대표. 그는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가오는데 벌써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농어촌 아이들 품는 청년들에게서 예수를 보았다

아름다운배움이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과 희생자 형제자매들을 잘 돌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그동안 농어촌 산간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취약 계층 청소년들을 멘토링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원형 대표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다니던 2009년 아름다운배움을 창립했다. 아름다운배움은 주로 저소득층·농어촌 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진행한다. 대학원 시절, 고 대표는 자신이 직접 팀을 구성해, 복지관에서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을 상대로 멘토링했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쌓이면서 노하우가 생겼다. 지금 아름다운배움은 전국 곳곳에 지부가 있고, 5,000명의 대학생 멘토 풀을 갖추고 있다.

"원래부터 '사람 권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우리나라 보면 대부분 권리 자체를 잘 모르잖아요. 결국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 기본권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런데 어려운 아이들 멘토링을 해 보면서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알게 됐죠. 학교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아이러니하게도 교육 현장이 인권 침해가 가장 심해요."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사실 교회는 인권을 탄압하는 이미지였다.

"사실 저는 교회를 싫어했어요. 아내를 따라서 한 대형 교회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담임목사가 설교하면서 학생 인권 조례를 엄청 욕하는 거예요. '여러분 학생 인권 조례가 통과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항문 성교를 배우게 됩니다.' 수만 명 앞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막 해요. 더 황당했던 건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이 줄 서서 학생 인권 조례 반대 서명을 하더라고요. 너무 화가 나서 다시는 그 교회에 가지 않았어요."

그런 그가 2012년부터 일산은혜교회에 출석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2009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에서 일했던 김성천 선생님이 <복음과상황>에 글을 한 편 썼다. 김 선생님이 고원형 대표와 만났던 이야기를 풀어 놓은 것이었다. 크리스천도 아닌 고 대표가 청소년들의 꿈을 위해 투신하고자 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당시 <복음과상황> 편집장은 일산은혜교회 이광하 부목사였다. 그때 또 마침 한빛누리 황병구 본부장의 <관계 중심 시간 경영>이 출간됐는데, 이 목사가 고 대표에게 서평을 부탁했다. 이런 인연으로 이 목사와의 관계가 시작됐다. 이 목사의 권유로 고 대표는 일산은혜교회 고등부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강경민 담임목사의 아들 카페바인 강도현 사장과 만나게 됐고,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되었다. 일산은혜교회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교제하면서, 고 대표는 '이런 교회라면 신앙을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몇 해 동안 일산은혜교회 청년들을 데리고 농어촌으로 갔어요. 많은 교회가 뭐 단기 선교다 비전 트립이다 하면서 외국에 나가는 프로그램을 하더라고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외국에 나가기보다 우리나라 농어촌으로 가야 해요. 농어촌이 얼마나 힘들고 거기에 사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저희는 청년들이 2주 동안 한 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요.

저는 사실 아직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신앙 이야기를 하는 게 좀 부담스러워요. 다만, 제가 세례받으면서 했던 말이 있는데요. 청년들과 함께 농어촌 갔을 때, 청년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정말 마음을 쏟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을 텐데 아이들과 함께 아파하고 잘해 주려고 하고…. 사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프로그램 할 때도 일산은혜교회 청년들이 많이 참여했어요. 그 청년들의 모습 속에서 예수가 보이더라고요. 성경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예수는 사랑, 정의, 공의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예수는 사랑이었다. 조건 없이 자기 것을 내어 주는 사랑. 그를 보면서, 예수의 참제자가 되는 것은 신앙의 연수와 꼭 정비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참사 1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아직도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고원형 대표는 유가족들을 걱정한다. 그는 상황을 낙관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정부의 태도나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이 언제 이뤄질지 가늠할 수 없었다.

"유가족 어머님 아버님들 뵐 때마다 죄송해요. 지금 치료받으셔야 할 분들이 거리에서 노숙을 하시고 일선에서 투쟁하시잖아요. 이건 잘못된 거죠. 투쟁은 시민들이 해 주고 그분들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 집중하셔야 하는데, 시민들의 투쟁이 너무 약하니까. 벌써 잊으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사회가 악하다고 말할 때, 그건 정부만을 의미하지 않아요. 우리 시민들이 모두 악한 거죠."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고원형 대표는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이 그랬다. 꿈을 잃은 청소년들을 보면서 공교육에 절망했지만, 아름다운배움을 만들어 소외된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래 곁에 있어 주는 것'이었다.

"단 한 명이 중요한 거 같아요. 실제로 아이들 만나 보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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