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뉴욕에 도착하고 이틀이 지났지만 직접 무언가를 주문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셋째 날 오후, 맛있는 먹거리 상점들이 모여 있는 옛 공장 건물 첼시마켓(Chelsea Market)을 방문했다. 각자 일정 금액을 받아 들고 먹고 싶은 것을 직접 사 먹었다. 뭐든지 시작이 힘들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사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지만 한 번 해 보니까 자신감이 생기나 보다. 아이들은 디저트까지 알차게 챙겨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와 고가 철로를 산책로로 바꾼 하이라인파크(High Line Park)를 걸었다. 눈이 많이 쌓인 추운 하이라인파크를 걸으라고 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졸릴 때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아이들 얼굴이 점점 '뉴욕 빛깔'인 잿빛으로 변해 갔다.
그리고 방문한 곳이 국립9·11추모박물관(The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차에서 내려서 추모공원 주위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은 조용해졌다.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가 있던 자리는 이제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약 3000명의 희생자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 있다. 비행기 네 대에 탄 사람들을 포함해 희생자들을 구조하려 출동했다가 빠져나오지 못한 소방관들의 이름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의 이름이 그라운드제로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들은 9·11추모공원을 보면서 자연스레 세월호를 얘기했다. 한 학생은 목포에 사는데 진도에서 희생자를 실어 나르는 병원이 학교 근처였다고 했다. 그때는 기자들이 다 몰려와서 난리를 쳤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도 맞장구를 치며 자신들이 기억하는 세월호를 얘기했다. 미국은 숨진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건물을 짓고 애를 쓰는데, 우리나라는 빨리 잊고 덮어 버리자고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무고하게 희생된 또래의 학생들이 떠올랐는지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여행이나 수련회를 갈 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사람 수를 확인하는 일이다. 한번은 야경을 보기 위해 배를 타러 갔다. 하필이면 아이들이 도착하자마자 배가 떠나 버려서 다음 배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선생님들은 이미 피곤에 절어 있는 아이들이 30분을 기다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하고 아이들과 함께 인근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까지 내려갔는데 누군가가 외친다. "어? 한 명이 없잖아?"
아뿔사, 진짜 한 명이 없다. 배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 다들 흩어져서 잠이 들었는데, 미처 한 명을 데리고 오지 못한 듯했다. 선생님 두 명이 허겁지겁 다시 선착장으로 향했다. 혹시나 뉴욕에서 미아가 된 줄 알고 울고 있을 그 친구를 위해 부리나케 뛰어갔다. 마음이 급한 건 선생님들뿐이었나 보다. 오히려 그 친구는 태평하게 앉아서 선생님들을 맞아 주었단다. 그 뒤로 어디를 가나 인원 체크는 착실하게 하고 있다.
아이들이 이렇게 값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현지의 한국 교인들 덕이다. 유독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2기 아이들은 2월 7일 토요일 밤, 뜻깊은 초대를 받았다. 뉴욕장로교회(NYPC) 교인 두 분이 아이들을 집으로 불러 삼겹살·떡볶이·된장국·밥 등 그토록 소원했던 한식을 대접해 주셨다. 아이들은 기도 응답을 받았다고 즐거워하며 산처럼 쌓인 음식들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다음날 주일에는 뉴욕장로교회를 방문해 이승한 담임목사의 덕담도 듣고, 교인들을 만나 인사도 나눴다.
꿈마실 22일의 여정 중 4박 5일의 뉴욕 일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추운 날씨, 입에 잘 안 맞는 음식, 책에서나 보던 작품들을 실물로 만났을 때의 감동, 타임스퀘어의 화려함, 힐송(Hillsong) 예배 참여, 교인들의 극진한 대접. 화려한 대도시를 뒤로 하고 이제 필라델피아로 떠난다. 뉴욕 안녕!
2015년 PK 비전 투어(꿈마실) 세부 일정 출국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D.C. *애틀랜타 *로스앤젤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