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월요일 오전, "강남구청, 구룡마을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임시 예배당과 무료 급식소 철거!"라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바로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이병주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이 목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새벽에 50여 명이 와서 다 부쉈어요. 통화할 상황이 아니에요. 직접 와 보세요."

기자는 취재 일정을 조정하고 급히 구룡마을을 찾았다. 급식소로 쓰던 비닐하우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지붕 역할을 했을 나무 기둥은 완전히 부러졌고, 비닐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다. 찌그러진 냉장고와 밥솥, 내동댕이쳐진 냄비와 그릇들도 보였다. 그릇들 옆에는 이날 오전 이재민과 주민들이 먹을 밥과 반찬이 흙과 뒤범벅되어 있었다. 교회가 쓰던 헌금 봉투와 성경책, 기독교 서적들도 곳곳에 나뒹굴고 있었다.

강남구청(신연희 구청장)은 이날 용역 50여 명과 건설 중장비 두 대를 동원해,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임시 예배당과 구룡마을 무료 급식소를 강제로 철거했다.

철거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주민들이 모두 잠든 새벽 5시경, 강남구청은 경찰과 용역 직원을 대동해 행정대집행을 했다. 새벽 기도를 하러 임시 예배당을 찾은 이 목사와 서너 명의 교인들은 갑작스레 변을 당했다. 나이가 70세를 넘은 교인들이 20-30대로 보이는 직원들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예배당 밖으로 쫓겨났다. 이들은 제대로 된 저항은 해 보지도 못하고 포크레인이 임시 예배당과 무료 급식소를 짓누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 무료 급식소와 임시 예배당으로 쓰이던 비닐하우스가 지난 1월 12일 강남구청에 의해 철거됐다. 임마누엘순복음교회 교인들이 임시 예배당의 잔해를 보고 있다(사진 위). 전날 이재민들을 위해 준비했던 음식과 식자재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사진 오른쪽 아래), 임마누엘순복음교회가 사용하던 헌금 봉투와 기독교 서적이 흩어져 있다(사진 왼쪽 아래) ⓒ뉴스앤조이 박요셉

주민들은 철거된 급식소를 망연자실 보고 있었다. 임마누엘순복음교회를 다니는 김숙자 씨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아무리 법을 쥐고 있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며 구청의 조치에 분개했다. 무료 급식소에서 10년 넘게 자원봉사를 한 주민도 "노인들이 밥 먹고 예배드리는 게 그렇게 큰 죄냐. 돈 없고 힘없는 게 죄다"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이날 철거된 무료 급식소는 구룡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상징적인 곳이었다. 구룡마을 주민들은 약 26년 전부터 마을 안에 있는 독거노인과 형편이 어려운 이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 왔다. 이날 강남구청이 철거한 급식소는 약 15년 전에 지어진 곳으로, 주민자치회가 이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밥과 반찬을 만들어 매일 독거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해 왔다. 배고픈 시절을 서로 도우며 견뎌 온 기억이 묻힌 곳이었다. 주민들의 상실감이 커 보였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진용미 총무는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급식소는 중요한 곳이다. 명절 때마다 같이 모여 떡국을 먹고, 겨울철에는 같이 김장도 담그는 곳이다. 십 년 넘게 아무 말도 없다가 왜 갑자기 철거를 진행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작년 11월 6일 화재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매일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이날 급식소가 철거되면서 구호단체에서 받은 식자재를 모두 잃은 이재민은, 아침과 점심을 컵라면으로 해결했다.

▲ 작년 11월 9일 구룡마을 7B지구와 8지구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화마는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져 약 두 시간 만에 구룡마을 63세대의 삶의 터전을 모두 앗아 갔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경고문 받고 즉시 공사 멈췄지만…담당 공무원 바뀌었다며 모르쇠 

강남구청의 갑작스러운 철거에 주민들이 분개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강남구청이 경고한 건축물은 무료 급식소가 아닌 임시 예배당이었기 때문이다. 1월 6일 강남구청이 교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구청이 문제 삼고 있는 건축물은 임시 예배당이다. 주민들은 강남구청이 무료 급식소까지 철거한 것은 과잉 조치라고 지적했다.

임시 예배당은 임마누엘순복음교회(이병주 목사)가 올해 초 급식소 안의 일부를 빌려 마련한 곳이었다. 교회는 작년 11월 9월 구룡마을에 발생한 화재로 예배당과 선교관을 모두 잃었다. (관련 기사 : 구룡마을 사람들, 집도 타고 속도 탄다) 화재 이후 이 목사 부부는 임시 대피소에서 이재민들과 숙식을 해결하고, 일요일에는 교인의 가정집을 빌려 예배를 했다. 40여 명의 교인들이 모이기에는 공간이 협소하고 불편했지만 두 달을 그렇게 보냈다.

이후 이 목사는 구룡마을 무료 급식소의 일부를 빌렸다. 무료 급식소인 비닐하우스 구석에서 이 목사와 교인들은 앉아서라도 예배를 하기 위해 내부 공사를 했다. 약 13평 규모의 흙바닥에 시멘트를 붓고 보일러 판넬을 설치하는가 하면, 비닐로 칸막이도 세웠다.

공사가 거의 끝나 갈 무렵, 교회는 강남구청으로부터 한 공문을 받았다. 당장 공사를 중지하고, 1월 9일까지 임시 예배당을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용도 변경을 하지 않고 농지를 종교 부지로 이용하는 건 불법이라는 게 이유였다. 공문을 보낸 날짜는 1월 6일이었다. 3일 만에 원상 복구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교회는 즉시 공사를 멈췄다. 하지만 예배는 무료 급식소에서라도 하기로 했다. 지난 1월 11일 임마누엘순복음교회는 처음으로 무료 급식소에서 오전 예배와 오후 찬양 예배 그리고 저녁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를 마친 이들은 다음 날 이재민들이 먹을 식사를 준비했다고 한다.

임마누엘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인 이칠성금 목사는 "강남구청이 이렇게 빨리 철거를 진행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12일 오전에 강남구청 주택과를 찾아가 공사를 멈췄다고 신고하고, 교회가 일요일마다 식당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도록 요청하려고 했다.

기자는 강남구청 주택과에 왜 이렇게 철거를 서둘러 진행했는지, 철거 대상이 아닌 무료 급식소는 왜 해체했는지 물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공무원은 "지난주 다른 지역으로 전근한 담당자가 모두 사전에 처리해 놓은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 화재가 난 이후로 이재민들 중 9세대(약 30명)는 주민자치회가 마련한 임시 대피소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이들은 강남구청이 마련한 임대 주택을 거부하고 원래 살던 곳에서 지낼 수 있도록 구청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작년 11월 26일 임시 대피소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갈 데 없는 이재민들, 대피소에서 쫓겨날 처지 

한편, 작년에 발생한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은 구룡마을 이재민들 중 대다수는 작년 12월 중순 서울시와 강남구청에서 제공한 임대 주택으로 입주했다. 나머지 30여 명의 이재민들은 입주를 거절하며 현재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생활권이 강남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을 꺼리고 있다. 대신 원래 살던 곳을 복구해서 살도록 구청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구청은 구룡마을 개발이 진행될 때까지 화재 지역을 복구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이재민들이 피해 지역에 접근하는 것도 막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작년 12월 말, 강남구청은 이재민들에게 임시 대피소로 쓰고 있는 자치회관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자치회관을 원래 목적에 맞게 농수산물센터로 이용하라는 이유에서다. 이재민들에게는 어디로 가라는 지시도, 요구를 들어준다는 말도 없었다. 밥 먹을 곳과 기도할 곳을 잃은 이재민들은, 이제 잠잘 곳마저 잃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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