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유난히 많았던 2014년이었다. 지난 3월 서울시 송파구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를 준비해 둔 채 연탄불을 피워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 후, 유사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의 사회적 안전망에는 구멍이 많았고, 교회는 이 구멍을 메우는 것이 교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세 모녀 죽음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보니)

겨울은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혹독한 계절이다. 12월에 들어서고 한파가 시작되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소비문화에 잠식된 듯한 연말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연말연초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특히 12월에는 성탄절이 있어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시기다. 아기 예수가 낮고 낮은 말구유에 임해 온 인류의 희망이 된 것처럼, 교회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희망이 되어 주려고 한다.

위축된 국내 입양…"입양은 특별히 착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 한국입양홍보회와 같은 단체들은 국내 입양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양 부모와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 갈무리)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은 신구약을 통틀어 성경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다. 구약에서는 고아와 과부의 '편을 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자주 등장하고, 야고보서는 온전한 경건을 이야기하면서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버려진 아이와 여자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입양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렇고,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 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입양 부모 중에는 크리스천 부부가 많다. 입양한 크리스천 부모들은 입양을 하나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입양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입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주신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린다.

크리스천 양해성 씨(가명·35)와 그의 아내 박승희 씨(가명·34)는 올해 입양을 결심했다. 불임 때문이 아니었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데 이렇게 젊은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양 씨는 결혼 전 노숙인 봉사 단체에서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을 도우면서 우리 사회에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 결혼 후 첫째는 직접 낳으려고 했지만, 올해 초 해외로 입양된 한국 사람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더 이상 입양을 미루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부는 많은 기도를 올렸다.

이처럼 입양은 성경적으로도 '권장'되는 일이었다. 입양은 '선한 일'로, 입양을 선택하는 부모는 '선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정확히 말하면, 입양 부모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입양 부모를 선하다고 치켜세웠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인신매매하는 등 범죄 영화에 나올 법한 일들이 가끔 현실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그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는 것보다 숭고한 일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정작 입양 부모들은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 이들은 "입양은 단지 가정이 구성되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입양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입양된 아이들도 다른 평범한 아이와 똑같다"는 의식을 퍼뜨리려고 한다.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여러 입양 기관들과 한국입양홍보회, 한국입양가족협의회 등은 입양 부모와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만 입양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입양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 국내외 입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2007년부터 해외 입양 쿼터제를 실시해 국외 입양이 줄었고, 국내 입양도 2011년 이후로 큰 폭으로 줄었다. (자료 제공 통계청)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아이를 입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입양 아동 수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300~1400명 선을 유지해 왔고 2011년에는 1548명까지 뛰었다. 그러나 2012년에는 1125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686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요보호아동)은 매해 6000~8000명씩 나온다. 물론 아직까지 비공개 입양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입양 통계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요보호아동 수에 비해 입양 수는 너무 적다. 이들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새로운 가정에서 자라는 게 더욱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한국교회는 입양에 적극적인 편이다. 사랑의교회·안산동산교회·호산나교회 등 많은 대형 교회들이 입양을 권장하고 입양 부모들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교회들에는 입양 부모들이 모이는 '입양부'가 따로 있다. 5월 11일 '입양의날'을 전후로 입양 주일을 설정해 입양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가 위험한 곳에 유기되어 생명을 잃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9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명이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25~30명씩 유기된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표적인 크리스천 연예인 부부 차인표·신애라 씨가 딸 두 명을 입양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애라 씨는 지난 7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입양한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소개했다. 이런 노력들로, 입양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고, 입양아도 그냥 아이일 뿐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 크리스천 연예인 신애라 씨는 두 딸을 입양했다. 그는 지난 7월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입양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SBS 힐링캠프 갈무리)

새 가족과의 만남은 원가족과의 이별…응급처치에 가려진 '제도 개선'

▲ 뿌리의집은 입양의 그늘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해외 입양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구원과 밀매>라는 책을 펴냈다.

출산과 마찬가지로 입양을 통해 가족의 일원이 생긴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입양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입양에도 어두운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버려진 아이에게 새로운 가정이 생기는 것은 기쁨과 감격이지만, 아이가 생모와 이별하고 버려진다는 것은 상처이고 아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생아' 입양이 절대다수고 특히 여자 아이가 입양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입양 부모들의 선호 때문이다. 태어난 지 1년 이상이 되는 아이들을 '연장자'라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연장자 입양은 극히 드물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입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입양되는 신생아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아기다. 한 부모가 신생아를 입양한다는 말은 곧 한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한다는 말이 된다.

미혼모로 인한 연간 요보호아동 발생 수는 10년 전 4000명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1500명이 넘는다.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미혼모의 40% 이상이 10대다. 한국은 청소년이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사회적인 시선도 따갑다. 미혼모를 관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만약 10대 청소년이 아기를 낳게 됐을 때, 그는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중퇴자로 아이를 키우며 살지, 학교는 다니되 입양 기관에 아기를 떠나보낼지.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원가정이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뿌리의집, 진실과화해를위한입양인모임(TRACK),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입양인 원가족 모임 민들레회 등이다. 이들은 최대한 아이와 엄마가 이별하지 않고 원가정이 지켜질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입양하고 권하는 개개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꾸 입양만 강조해서는 아이가 버려지는 상황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단체들은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이 같은 시각을 가져 줄 것을 요구했다. 이미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응급처치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랐다. (관련 기사 : 입양 권하는 교회가 알지 못한 것들)

▲ 지난 10년간 요보호아동 발생 유형 현황표. 미혼모로 인한 요보호아동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1년에 1500명이 넘는다. (자료 제공 통계청)

이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전까지만 해도, 입양에 관한 법률의 이름은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정부의 기조가 '입양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뿌리의집 등은,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결국 법은 이들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2012년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됐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이 단체들의 노력으로 청소년 미혼모는 정부로부터 한 달에 15만 원씩 지원받게 됐다. 내년에는 좀 더 나은 수준의 금액이 책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입양특례법은 입양 기관들과 부모들의 원성을 많이 샀다. 입양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서 절차가 까다로워져, 안 그래도 부족한 국내 입양이 더욱 위축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입양특례법은 아기의 출생 신고를 반드시 친모가 하도록 했다. 아기가 출생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취지였다. 입양 기관과 부모들은, 자신의 호적에 기록이 남을 것을 두려워하는 미혼모가 아기를 유기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런 부분들을 개정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자녀가 다니는 주일학교에 미혼모가 온다면?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 주는 것과, 친부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 모두 '아이의 행복'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다. 응급처치와 제도 개선이 선순환한다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입양이 권장되고 입양의 밝은 면이 부각되는 것만큼, 입양으로 인해 생기는 그늘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입양부가 있는 대형 교회는 입양을 권장할 뿐 아니라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들도 지원하는 일을 하지만, 교회가 공동체 바깥에 있는 약자를 지원하는 것과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안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교회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교회는 혼전 순결을 강조하고 이를 어기면 죄악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혼외 임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문란한 아이'라는 시선이 돌아온다. 미혼모에게 교회는, 혼외 임신을 밝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라기보다 숨기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미혼모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에 교회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산 위드맘한부모가정지원센터 이효천 선교사(섬김선교회)는 13년간 청소년 사역을 하다가 4년 전부터 청소년 미혼모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10명의 미혼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교육하는 등 10대 미혼모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미혼모들이 기존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얘기한다.

"만약 자녀가 교회 중고등부 주일학교에 다니는데, 거기에 미혼모가 왔다고 가정해 보세요. 뭔가 나쁜 물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될 거예요. 이런 시선들 때문에 (미혼모) 아이들이 기존 교회에 진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교회가 필요하고 예수가 필요하죠. 미혼모들만을 위한 교회가 따로 필요한 실정입니다."

국회는 12월 9일 '송파 세 모녀법'을 통과시켰다.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당장 이런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 긴급 복지 지원법을 개정했으며,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 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 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의 구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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