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6일 저녁 9시경,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박 아무개 씨와 두 딸이 번개탄을 피워 함께 목숨을 끊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긴 봉투 위에는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제공 서울지방경찰청)

2월 26일 저녁 9시경,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박 아무개 씨와 두 딸이 번개탄을 피워 함께 목숨을 끊었다. 언론에 따르면, 세 식구의 생활비는 박 씨가 식당 일을 해서 번 120만 원이 전부였다. 남편은 벌써 12년 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 모녀의 안타까운 소식에 애도하는 여론이 일었고,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의 복지 정책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고아와 과부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는 이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뉴스앤조이>는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후인 3월 2일 주일, 한국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모니터링했다. 소속 교단이나 규모, 성향에 상관하지 않고 33개 교회를 선택해 설교 내용을 검토했다. 그중 7개 교회가 세 모녀 사건을 언급하고 교회의 책임을 얘기했다.

서울 강북구 쌍문동에 있는 높은뜻정의교회(오대식 목사)는 세 모녀의 죽음을 그리스도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박병만 목사는 4부 청년 예배에서, 이런 소식을 접할 때 대부분 정부와 사회 시스템을 비난하지만, 사실은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교했다. 박 목사는 "형편이 어렵고 일자리가 없어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왜 교회가 돕지 못하나"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교회들이 구제에 대한 실제적인 연습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자신도 적금을 붓고 있고 아이들 보험도 들어 놓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적금은 없었다며 자책했다. 박 목사는 "사람이 죽든 말든 생활고를 비관하든 말든,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무슨 그리스도인이냐"며 "사순절을 금식과 기도, 구제로 보내고 부활절을 맞이하자"고 청년들을 독려했다. (박병만 목사 설교 바로가기)

오대식 담임목사는 3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교회의 사회 책임'이라는 제목으로 세 모녀를 언급했다. "언론과 SNS상에서 안타까워하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그중 많은 이들은 정부의 복지 정책이 실질적이지 않다고 질타합니다. 그러나 복지 정책이란 언제나 허점이 있게 마련이고 그 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이 바로 교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모녀의 죽음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지 못한 교회의 탓인 것 같습니다."

오 목사는 높은뜻정의교회 교인들이 3월 2일 구제헌금을 많이 했다고 썼다. 세 모녀의 자살이 구제헌금을 소홀히 했던 우리 때문인 것 같아 다시 정신 차리고 열심을 냈다고 했다. 적어도 우리 동네는 가난 때문에 삶을 접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지역 주민을 위한 구제 사업은 절대 축소시켜서는 안 되겠다 굳게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 5만 5000개 교회가 각 지역을 돌아보고 책임진다면 다시는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높은뜻정의교회 오대식 목사 페이스북.

낙산교회 김희헌 목사는 설교 처음부터 이 사건을 짚고 넘어갔다. 그는 세 모녀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됐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세 모녀가 70만 원을 넣어 둔 봉투에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고 적었다며, 죄송하다는 말은 도리어 이 사건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왜 우리 사회에 이런 비극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과연 이런 세계를 하나님이 창조했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지금도 일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옳은가", "이 절망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지금도 창조의 사역을 해 나가신다는 믿음을 과연 지킬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며 설교를 이어 갔다.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는 하박국을 본문으로 불의한 세상을 지적하며 세 모녀 사건을 언급했다. 김 목사는 "그들이 남긴 말은 '죄송합니다'였지만 사실 죄송한 것은 우리다. 그 '죄송합니다'라는 말 속에서 하박국의 외침을 듣는다"고 설교했다. "살려 달라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고, '폭력이다'고 외쳐도 구해 주지 않으시니, 주님 언제까지 그러실 겁니까?" (하박국 1장 2절)

하지만 김 목사는 하나님이 이 소리를 듣고 있고, 이 부르짖음에 응답하라고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귀가 되고 입이 되고 손과 발이 되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석 목사 설교 바로가기)

▲ 세 모녀가 살던 송파구의 반지하 월세방.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세 모녀가 살던 집과 같은 송파구에 위치한 들꽃향린교회(김경호 목사)도 사건을 언급했다. 김경호 목사는 "아무도 숨진 박 씨가 부러진 팔을 회복하기 위해 1~2달을 버틸 수 있는 용기를 주지 못했다. 우리가 속한 주변에서 누구도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한두 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마지막 길을 택한 그들의 절망감과,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 책임감에 가슴이 저민다고 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서로를 지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설교했다. (김경호 목사 설교 바로가기)

송파구에 있는 또 다른 교회에서도 세 모녀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임마누엘교회 김국도 원로목사는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며, 국민들을 분열시키는 요인을 제거하고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설교했다. 김 목사는 "세 모녀가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병들고 살아갈 길이 없어 번개탄을 피워 놓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월세를 장만했다. 얼마나 양심적이냐. 그런가 하면 강남에서 돈을 물 쓰듯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며 빈부 격차를 꼬집었다. (김국도 목사 설교 바로가기)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함께여는교회(방인성 목사)도 설교 도중 세 모녀의 죽음을 언급하며 교회가 이런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새길교회는 이웃을 위한 묵상 시간에 세 모녀를 위해 기도했다.

한편, 세 모녀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3월 2일 서울 동두천에서 한 30대 주부가 네 살배기 아들과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했다. 3일에는 서울 화곡동에서 50대 부부가 투병으로 인한 생활고를 못 이겨 목숨을 끊었다. 같은 날 경기도 광주에서는 40대 가장이 두 자녀와 함께 죽음을 택했다.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3월 한 달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일제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 자택에서 발견된 세모녀의 가계부. 우유 1050원, 깻잎 500원, 쑥갓 930원 등 10원 단위로 꼼꼼히 적혀 있다. (사진 제공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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