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 중부 대도시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 인접한, 인구 70%가 흑인인 퍼거슨(Ferguson) 시에 개신교·유대교·이슬람교를 망라한 종교 지도자들이 모였다. 10월 13일,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18세 흑인 소년을 기리는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뉴욕타임스>, abc News를 비롯한 다수의 언론은, 행진이 끝난 후 사회참여 개신교 단체 소저너스의 창립자이자 대표인 짐 월리스(Jim Wallis), 전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이자 미국 시민운동가인 코넬 웨스트(Cornel West) 등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 10여 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10월 13일, 종교 지도자들은 미국 중부 인구 2만 3000여 명의 작은 도시인 퍼거슨(Ferguson) 시에 모였다. 이들은 8월 9일,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18세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을 추모하는 행진에 참여했다. (<타임>지 기사 갈무리)

지난여름, 미국은 인종차별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8월 9일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마이클 브라운(Michael Brown)이라는 흑인 소년은 대런 윌슨(Darren Wilson)이 쏜 총 최소 6발을 맞고 길거리에서 죽었다. 다수의 목격자는 브라운이 총기를 소지하지도 않았고, 항복하는 자세로 두 손을 공중에 올린 채 총격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가해 경찰인 윌슨이 백인이라고 알려지자, 퍼거슨 시 경찰 권력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들이 다음 날부터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브라운이 총을 맞던 자세를 재연하며 공권력에 항의했다. 시위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경찰과 시위대 사이의 폭력적인 충돌이 약 열흘 넘게 계속되었다. 결국 주 정부는 방위군을 투입하고서야 시위대를 해산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0월 13일, 퍼거슨 시에서는 또 한 번 대규모 행진이 있었다. 퍼거슨 시 지역의 교회 지도자들은 '퍼거슨의 10월: 저항의 주말'이라는 행사를 계획했다. 이들은 지역에서 소외되고 있는 젊은 흑인 청년들의 비참한 삶에 주목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번듯한 직업 없이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을 사회는 낙오자로 인식했다. 이들은 일정한 수입이 없이 간신히 하루를 살아가고 점점 사회 시스템 밖으로 밀려났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진 이들은 경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지역 경찰들은 그들을 짐승같이 취급했다.

미국 중부 미주리 주의 주도인 세인트루이스(St. Louis) 시에 인접한 도시인 퍼거슨. 이 도시는 원래 백인과 흑인이 균등하게 살고 있었지만, 2000년대 들어 흑인의 인구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도시의 흑인 청년들은 낮은 교육 수준으로 인한 높은 실업률로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었다. 청년들은 경범죄를 저지르는 횟수가 많아졌고 구성원의 대부분이 백인인 시 경찰과 대치하는 경우가 늘었다. 퍼거슨 시 경찰 권력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여기서 기인한다. (구글 지도 갈무리)

지역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들과 교회가 이런 현상을 간과한 점을 회개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먼저 자신들의 무관심을 회개하고 경찰들도 이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지역의 흑인 청년들이 다시는 마이클 브라운과 같은 대접을 받지 않길 기도하며 행진에 나선 것이다.

전국에서 모인 종교 지도자들과 지역 교회 리더들은 맨 앞줄에서 행진을 이끌었다. 자신들이 맨 앞에 서서 경찰 구성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직접 회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까닭이다. 실제로 시위는 그렇게 진행되었다.

시위에 참여했던 짐 월리스는 14일 <소저너스>에 기고한 글에서 시위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시위에 참여한 약 400명의 사람들은 우선 퍼거슨의 한 교회에 모여서 함께 예배했다. 월리스를 비롯한 다수의 성직자들은 서로의 팔을 낀 채 맨 앞줄에서 행진했다. 후에 이들은 교회를 출발해 퍼거슨 시 경찰서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 흑인 청년이 바닥에 누웠고, 쓰러진 그의 몸 형체를 따라 또 다른 청년이 흰 분필로 길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이는 마이클 브라운 외에 경찰에 의해 희생된 다른 흑인들을 기리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시위대가 경찰서에 도착하자 경찰들이 일렬로 줄지어 서서 더 이상 건물 방향으로 진행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때부터 예정했던 대로 시위대 맨 앞줄의 목회자들은 각각 경찰 한 명씩을 맡아 마주 서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월리스는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경찰이 36년 동안 시에서 근무한 베테랑 경찰이었다고 했다. 경찰은 월리스와의 대화에서, 지난 두 달간이 자신의 40년 가까이 되는 경찰 생활 중 최악의 시간들이었음을 고백했다. 또한 그는 자신도 기독교인이며 하루 빨리 이 일이 평화롭게 끝나길 바란다고도 했다.

경찰들과 대화를 마친 종교 지도자들은 건물 안에 있는 경찰들과 더 대화를 나누길 원했다고 한다. 이들은 경찰들이 제한해 놓은 저지선을 뚫고 건물로 접근하려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약 10명의 종교 지도자를 비롯한 50여 명이 체포되었다고 밝혔다.

짐 월리스(Jim Wallis)는 미국에서 대표적인 사회참여 개신교 단체 소저너스(Sojourners)의 대표다. 그는 이번 시위에 자신은 '백인' 목사로서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인종차별을 묵인한 백인들이 미국에서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소저너스> 홈페이지 갈무리)

<소저너스>에 쓴 글에서 짐 월리스는 이 모든 일이 끝나기 위해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미안해하거나 죄의식을 느끼는 데서 끝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고 했다. 월리스는 회개하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퍼거슨 시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지금 미국에서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사람은 백인 기독교인이라고 지적했다. 심각한 인종차별 문제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침묵하고 있는 백인 기독교인과 백인 교회가 하루 빨리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리스는 인종차별은 흑인 형제자매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미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경찰이 인종차별을 행하는 행위 자체가 죄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월리스는 이 행위가 미국 민주주의에 반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반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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