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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ㅂ 선교사, 성폭행 구속 기소부터 무죄판결까지
ㄱ교회 측, "완벽한 결백 입증"…피해자 측, "물증이 없을 뿐"
  • 구권효 기자 (make1@martus.or.kr)
  • 승인 2014.08.19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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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교 1세대로 일가를 이룬 ㄱ교회 ㅂ 선교사는 2010년 성폭행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관련 기사 : 또 다른 재일 한인 선교사, 6년째 성범죄 법정 공방) 일본 형법에 따른 정확한 범죄명은 '준강간'인데,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폭행이나 협박하지 않고 강간한 것을 뜻한다. 일본 검찰이 준강간 혐의로 기소한 사례는 많지 않다. 또 검찰이 기소하고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그러나 ㅂ 선교사는 2011년 5월 재판부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형사소송 결과가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하지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C와 그를 돕는 모르드개 모임은 형사재판 판결에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재판부가 ㅂ 선교사의 상습적인 성추행·성폭행에 저항할 수 없었던 C의 심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또 C가 성폭행당했다고 진술한 2007년 2월 17일 오후 3~5시, ㅂ 선교사의 알리바이도 수상한 점이 많다고 한다. 알리바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진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는 지난 7월 말, 일본에서 양측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ㅂ 선교사의 소송을 담당하는 부목사들을 만나 ㅂ 선교사의 성 추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C와 그를 돕는 '모르드개' 모임 사람들과도 만났다. 판결은 이미 3년 전에 났지만, 이에 대한 양측의 입장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강간 전부터 상습 성추행…"하나 되기 위해 몸과 마음 의탁해라"

   
▲ C는 2006년부터 ㅂ 선교사에게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포옹과 볼에 키스하는 정도였다. ㅂ 선교사가 다른 여사역자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이런 스킨십을 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위는 점점 심해졌다. 사진은 2007년 2월 말, ㅂ 선교사와 사역자들의 모습. ㅂ 선교사(붉은 티셔츠 입은 사람)가 한 여사역자와 다정하게 어깨동무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C는 2001년부터 이바라키 현에 있는 ㄱ교회 채플에 다녔다. 사역자가 되고 싶어 ㄱ교회가 운영하는 신학교인 '12사도공동체세미나리' 과정에 입학했다. C는 이 과정이 명확한 커리큘럼도 없고, 졸업도 ㅂ 선교사의 마음에 달렸다고 했다. C는 5년간 세미나리에 다니고 3년은 ㄱ교회 지교회를 돌며 전도사로 사역했다. ㅂ 선교사의 성 추문이 퍼지던 2008년 말, C는 교회를 떠났고 자신이 당한 일들을 경찰에 신고했다.

ㅂ 선교사가 자신을 추행한 건 2006년부터였다고 C는 말했다. ㅂ 선교사가 인생 상담을 해 준다며 목양실로 불렀다고 했다. ㅂ 선교사는 C를 안거나 볼에 키스했다. C는 ㅂ 선교사가 다른 여사역자들에게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서양식 인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ㅂ 선교사의 추행은 수위가 계속 높아졌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만지더니, 나중에는 가슴을 만지고 딥키스를 했다. C에 따르면, ㅂ 선교사는 "우리는 사명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신뢰 관계다. 너의 몸도 마음도 나에게 의탁하는 것이 신뢰다. 나에게 모든 걸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 모든 걸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깊은 하나님의 비밀이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리고 2007년 2월 17일 오후 3시경, 형사재판의 발단이 된 성폭행이 일어났다고 C는 주장했다. ㅂ 선교사가 자신을 목양실로 불러, "진정한 사랑이 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신비로운 하나님의 깊은 비밀이다. 이 관계가 천국의 관계다. 평생 하나님을 위해서 사역하는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사명을 위해서 이 천국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 너는 나를 남편처럼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신뢰하고 모든 걸 의탁하면 된다. 이 천국의 관계는 이 세상의 상식, 윤리, 도덕을 훨씬 뛰어넘는 관계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을 초월한 하나님의 신비다. 나와 네가 하나가 되어서 천국의 관계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다. 하나님이 너를 내 밑으로 보내 주셨고, 평생 하나님나라 사명을 위해서 함께 사역하도록 하셨다. 옷을 다 벗어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자"고 말했다고 했다.

ㅂ 선교사는 C를 덮쳤고, C는 고개를 젓고 몸을 뒤틀기도 했지만 완강히 저항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ㅂ 선교사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믿었다. 그동안 ㅂ 선교사가 신학교 과정에서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특별한 목사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나에게 순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난을 받고 축복이 없는 비참한 광야 인생을 살아간다"는 내용으로 자주 가르쳤기 때문이었다.

C는 ㅂ 선교사가 성폭행 후 어떤 말을 했는지도 진술했다. ㅂ 선교사는 "이건 사고(accident)다. 삽입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래도 네가 나를 신뢰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성관계를 맺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던 ㅂ 선교사가 '사고'라고 말하니 C는 혼란스러웠다. C는 한참을 울었고 ㅂ 선교사는 위로했다. 이후 ㅂ 선교사와 함께 목양실에서 TV를 보고, 외출했다가 돌아온 ㅂ 선교사의 아내, 비서와 함께 식사를 한 뒤 교회 건물에서 빠져 나왔다.

검찰은 C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2010년 1월 말 ㅂ 선교사를 긴급체포하고, 2월 초 기소했다. 그렇게 형사재판이 시작되었다.

"2월 17일 선교사 부부 대접…C의 증언은 완전히 거짓말"

   
▲ 2007년 2월 17일 C가 성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ㄱ교회 교육관. 하지만 ㅂ 선교사는 이날 한국에서 온 김 아무개 선교사 부부를 대접하고 있었다고 항변했다. 범행 시간인 오후3~5시, ㅂ 선교사가 김 선교사 부부와 찍은 사진이 나오면서 ㅂ 선교사의 알리바이가 입증됐다. (ㄱ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ㅂ 선교사 측은 C의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C를 성폭행하지도 않았고, 자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권위를 받았다는 등의 내용을 가르친 적도 없다고 했다. C와 그를 돕는 모르드개 모임 사람들이 자신과 ㄱ교회에 악감정을 가지고 거짓말로 음해하고 있다고 했다.

성범죄는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피해자의 진술에 의존한다. 일본 형사재판 특성상 범행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야 하는데, C의 경우 2년 가까이 지난 일에 대해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해 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C는 자신의 디보션 노트(큐티 노트)에 2007년 2월 18일 "비참하다"라고 쓰인 것을 보고, 전날인 17일에 성폭행을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당시 ㅂ 선교사에게 "삼일교회 선교팀이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보고한 것도 기억이 났다. 그날이 17일이었다.

하지만 ㅂ 선교사 측은 C의 큐티 노트가 오히려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먼저, 2007년 2월 18일 C가 쓴 "비참하다"는 말은 전후 문맥을 살펴볼 때 성폭행당해서 한 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당일 C의 큐티 노트에는, C가 목회자가 되려고 하는 헌신자로서 새벽 기도와 큐티에 소홀했던 점이 기록되어 있었다. 성폭행이나 ㅂ 선교사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만약 C의 말대로 성폭행을 당해 비참한 마음이 들었다면, 더더욱 C의 진술이 의심스럽다고 ㅂ 선교사 측은 주장했다. 사후에 ㅂ 선교사와 함께 TV를 보고, ㅂ 선교사의 아내, 비서와 함께 식사까지 하고 나온 행동은, 성폭행을 당해 수치스러움을 느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ㅂ 선교사는 헌신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고난을 받는다는 등의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실제로 ㄱ교회가 사용하는 교재에도 일반적인 개신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이 없었으며, C가 교재에 메모한 것을 봐도 그런 내용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

2008년 8월, ㅂ 선교사의 성 추문이 교회에서 불거졌을 때, C가 ㅂ 선교사에게 일종의 '사실 확인서'도 작성해 주었다고 했다. ㅂ 선교사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자신이 C를 상습적으로 성추행하고 성폭행까지 했다면, C가 어떻게 이런 사실 확인서를 썼겠느냐고 반박했다.

결정적 증거 '사진', 진실인가 조작인가

   
▲ ㅂ 선교사 측이 제출한 ㅂ 선교사(맨 왼쪽)와 김 선교사 부부가 나온 사진. 이 사진은 2007년 2월 17일 오후 3시 31분에 찍었다고 나와 있다. 검찰 측은 사진 파일의 일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진 제공 모르드개 모임)

형사재판에서 ㅂ 선교사가 무죄가 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의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가 성립됐기 때문이다. C가 성폭행당했다고 진술한 2007년 2월 17일, ㅂ 선교사는 한국에서 온 김 아무개 선교사 부부와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고 주장했다. 범행 시각인 오후 3~5시에는 김 선교사 부부와 산책 중이었다고 했다. 그 증거로 김 선교사의 이동식 메모리에 있는 사진을 제출했다. 2월 17일 오후 3시 31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ㅂ 선교사가 김 선교사 부부와 배추밭에 있는 사진이었다.

검찰은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진 파일의 일시는 쉽게 변경할 수 있다는 점과, 당시 기상 상황, 김 선교사가 사진을 제출한 과정 등을 고려했을 때, ㅂ 선교사가 찍힌 사진이 17일이 아닌 16일에 촬영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재판부는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했고, 전문가는 사진이 반드시 조작됐다고 볼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검찰 측이 사진 조작 정황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김 선교사 부부의 출입국 기록과 호텔 예약 기록은 명확했기 때문에 ㅂ 선교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C와 모르드개 모임은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심을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있다. 김 선교사 부부는 16일에 도쿄 지역을 관광했다고 말했지만, 16일에 찍은 사진은 전무했다. 그에 비해 유독 범행 시각인 17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찍은 사진이 많았다. 김 선교사가 이후 그 디지털 카메라를 분실하고, 처음 사진 파일을 백업했던 노트북마저 분실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사진이 조작됐다고 확실하게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정에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무죄 선고로 끝난 줄 알았지만

재판부의 저울은 ㅂ 선교사 쪽으로 기울어졌다. 13차례 공판을 거친 후 2011년 5월 20일, ㅂ 선교사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C가 성폭행까지 가게 된 경위, 사건이 벌어진 당시와 이후의 상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진술했다는 점과, 자신이 성폭행당했다고 공개적으로 거짓말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 C의 증언이 어느 정도 신뢰성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C의 큐티 노트와 ㄱ교회의 교재 등에 비춰 봤을 때, C의 진술이 약간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여러 곳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ㅂ 선교사의 증언은 ㅂ 선교사의 아내와 비서, 김 선교사 등의 증언과도 일관된다고 했다. 또 사진을 조작했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ㅂ 선교사의 알리바이는 성립된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C와 모르드개 모임은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재판부가 당시 C의 상태, 즉 ㅂ 선교사에게 세뇌당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상태였음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C가 성폭행 당한 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한 점이나 큐티 노트에도 헌신자로서 일반적인 언급만 한 점, ㅂ 선교사가 사실 확인서를 써 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써 준 점은 모두 C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ㅂ 선교사는 한 번도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물증만 없을 뿐 많은 피해자들이 ㅂ 선교사의 말을 거역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형사재판은 철저히 물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게 되었다며 원통해했다.

ㅂ 선교사 측은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승리"라고 자축했다. C와 모르드개 모임에 대해서는, ㅂ 선교사를 음해하고자 허위 고발과 위증을 서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결정적인 증거인 사진이 남아 있었던 것은, 진실이 승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말했다. ㅂ 선교사의 알리바이가 완벽하기 때문에 검찰도 항소를 포기한 것이라고 했다. ㄱ교회 측은 ㅂ 선교사를 긴급체포하고 구속 기소한 검찰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한편, 형사소송은 끝났지만 2009년부터 시작된 ㅂ 선교사의 상습 성추행 의혹에 대한 민사소송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성폭행 혐의에서 벗어난 ㅂ 선교사는 민사소송도 승소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2014년 5월, 그는 민사재판에서 70건의 상습적인 성추행 혐의를 인정받아 피해자들에게 도합 1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민사소송에서는 모르드개 모임이 언급한, '세뇌당한 상태', '저항할 수 없었던 상태'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다. 민사소송에 대해서는 다음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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