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시골에서 교사로 지내면서 답답했다. 생각을 나눌 만한 사람이 너무 적었다. 학교를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로 생각하는 사람은커녕 교회 다니는 교사도 드물었다. 교회에서 집사, 장로인 교사도 학교에서는 그냥 교사였다. 일반 교사 중에 좋은 사람 많았지만 자꾸만 나쁜 교사가 눈에 들어왔다. 초보로 허덕이며 "존경할 만한 선배를 보내 주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학교를 사역지로 생각하며 아이에게 삶을 쏟는 교사를 만나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살과 피를 가지고 살아가는 교사 중에 존경할 만한 사람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내 곁에도 좋은 교사가 있었지만 '존경'이라는 말을 쓸 정도는 아니었다. 내 기도 제목은 기독 교사 대회에 참가하면서 응답받았다.

▲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 송인수 지음 / 우리학교 펴냄 / 272쪽 / 1만 4000원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쏟아붓는 사람

기독 교사 단체 연합 모임인 '(사) 좋은교사운동'에서 2년마다 한 번씩 기독 교사 대회를 한다. 처음 참가한 기독 교사 대회에서 송인수 선생님을 만났다.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기던 저자는 기독 교사 대회 마지막 날 우리에게 후원금 증액을 요청했다. 지금도 좋은교사운동은 교사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앉아있는 1800여 교사들은 돈을 내는 위치였고 저자는 후원을 요청하는 위치다. 뭐라 해야 할까? 귀한 일, 하나님나라를 위한 일에 후원해 달라고 부탁해야겠지.


고통당하는 아이들 사진을 보여 주거나 효과가 많은 사역이라고 홍보하면 후원금이 늘어난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설득해도 늘어난다. 헌금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설득한다. 예배당 짓는 걸 '성전 건축'이라고 해야 헌금이 늘어난다. 헌금 많이 하면 복이 올 거라고 말하면 역시 헌금이 늘어난다. 하나님나라에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늘어나겠지만 다른 방법보다 후원금이 많아지진 않을 것이다.

저자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는 일인데 후원금 조금 내고 만족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돈 내놓으라는 소리 듣고 찔렸다. 교회에서 가난한 성도에게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걸 저자도 안다. 저자는 안다. 그러나 우린 교사다. 아이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아이를 위한 일에 후원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나! 미안해하며 증액했다. 후원 더 해 달라는 소리를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 분은 처음 봤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후원을 요청한다는 것은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요청한 자가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게 요구하려 한다. 만일 내가 타인에게 운동에 초대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도 미안한 일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에게 더더욱 미안한 일이다. 그런 일은 당장 중지해야 한다. 자신에게나 남에게 미안한 일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일에 자신을 밀어 넣을 만큼 가치를 확신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돈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102~103쪽)"

교회에서 동정심, 성전 건축,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라는 가치, 예수 그리스도가 원한 일이라는 가치를 외치며 헌금하자는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모한 운동가

저자는 구로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사로 생활하다 2003년 사직했다. 기독 교사 모임인 좋은교사운동을 섬기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포기했다. '안정'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 곁을 떠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강의 중에 저자는 자살한 고등학생의 시를 읽으며 '아이를 위해 자신을 내던져 헌신하라'고 울부짖었다. 함께 울었다. 더 높은 가치, 고귀한 목표를 위해 교사인 우리가 낮아지고 고생하자고 외쳤다. 돈 많이 벌지 말고 고생하자는 말에 박수를 쳤다.

5년 동안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섬긴 뒤에 우리나라 사교육 문제와 맞서 싸우겠다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다. 무모하다. 사교육 걱정을 없애겠다니 가당키나 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골치 아픈 곳이 교육부장관 자리다. 무얼 해도 욕먹는다. 학부모 생각하면 관료가 욕하고 교사를 생각하면 학부모가 욕한다. 아이를 생각하면 온 사방에서 욕한다. 모두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으면 저마다 말이 다르다. 국민 전체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다.

저자는 학생들이 사교육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꿈을 꾸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교육이라는 철옹성에 온몸을 부딪친다. 사교육 업체에 고발당해 재판정에 드나들고 위협도 받지만 '가치'에 투자한 이상 맞서 싸운다. 무모한 출발에 놀랐는데 치밀한 정책, 꼼꼼한 추진력, 성실한 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학생을 향한 사랑에 감격한다.

저자는 지독하게 가난한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다. 형편이 어려워 돈 들지 않는 학교에 다니게 해달라고 당시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편지 보냈다가 고생도 했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문제집 팔아 주고 받은 돈으로 회식하는 문화에 반대해서 왕따를 당하며 괴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런 삶이 있어서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책의 부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는 저자가 틈날 때마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일기, 에세이)을 모은 책이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공동대표. ⓒ뉴스앤조이 구권효

뛰어들어 사는 사람

저자는 '기록'을 중요하게 여긴다.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린다. 틈날 때마다 올린 글이라 한 가지 주제로 정리하기 어렵다. 출판사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묶으려고 했지만 4부로 된 내용을 주제로 구분하기 어렵다. 가족(아들, 아내, 어머니), 소소한 일상(날씨, 전철에서 만난 제자), 묵직한 운동(시민운동을 하는 이유, 운동의 품격, 운동을 하는 자세와 방향), 미래에 대한 소망과 헌신에 관한 이야기가 얽혀 있다.

가족 이야기를 읽으며 '안타깝다', '멋지다' 생각한다. 이땅의 아이들에게 빚진 자로 분투하며 가족에게 빚을 지는 마음을 안타깝게 읽었다. 그러면서도 아내를 위해 가정일을 나누고, 아들과 단둘이 텐트 꾸려 여행을 다니며, 환경 보존을 위해 여전히 선풍기로만 버티는 모습이 멋졌다. 한 발 물러서면 얼마나 편하게 지낼 수 있는지 알기 때문에 이 악물고 서서 버티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책에서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내용은 '운동'이다. 저자는 시민단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안다. 운동을 왜 하는지, 누구와 어떻게 하는지, 얼마나 고민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언젠가 조선소 회장이 수십 억의 후원금을 제안했다. 절박하게 필요하고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도할 때 들어온 돈이 아니어서 거절했다. "절박하게 운동하다가 적절할 때 들어오는 거액은 거액이 아니다. '사명의 규모'가 '후원금'보다 큰 조직이 되어야지, 후원금의 규모가 사명보다 큰 조직은 위태하다.(124쪽)" 나는 이런 생각 못한다. 운동의 효과만 생각하고 감사하게 썼을 거다. 고발과 협박에 어떻게 견딜까 여러 번 생각했는데 책에서 답을 읽었다.

"합리적으로 운동하는 단체도 온갖 부정적인 말로 비난받는 중심에 설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가 교양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뛰어듦은 위험하다. 뛰어듦으로 변화를 일으킨다면 박수도 받지만, 흔들리는 권력이 위기를 느끼는 이들로부터 공격의 타깃이 되기 쉽다. 그가 합리적이거나 교양이 있거나 혹은 겸손하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인격일지라도 공격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래도 그때 가진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싸워야 할 나의 전쟁, 우리의 전쟁이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비난받아도 행복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행복하다. 실패로 모든 것을 다 잃을지라도 그가 흘리는 눈물은 아름다운 것이다.(29쪽)"

고난길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

"길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순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바로 길입니다. 그렇게 던지면 없던 길이 생깁니다.(39쪽)" 모순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문제라 피해가라는 뜻 아닌가? 모순이기 때문에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사교육'이라는 거대한 모순에 구멍을 뚫고 돌을 깨며 조금씩 길을 만들려면 사람의 힘만으론 안 된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늘 하나님께 기도한다.

새벽마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저자에게 이런 말을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400년 종살이를 하는 것이나 우리 아이들이 입시 노예로 입시에 종살이하는 것이나 뭐가 다르나?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킨 운동이나 우리나라에서 입시와 공부에 노예가 되어 아이들이 일요일 예배도 드리지 못하고 그렇게 공부에 매여 사는 것을 해방시키겠다는 운동이나 같은 것 아니겠니?(177쪽)" 이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할 때 저자가 품었던 마음이다. 인격적인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주신 꿈을, 기도하는 어머니에게도 보여 주시고 함께 기도하게 하셨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보다 더한 길을 걸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라오의 팔에서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도 구해내리라 믿는다. 고난길 헤치고 나아가는 사람이 있기에.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 집회에서 선생님은 '고난길 헤치고 찾아온 길'이라고 쓴 노란 종이를 들었다. 들고 다니던 피켓 다른 사람에게 주고 이 문구를 쓴 까닭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다.

우리 지금 지는 것 같으나, 이길 것이다.
우리 지금 슬퍼하나, 기뻐할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지금 아파하나,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은 고귀한 것,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
그 죽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부모들과 선생들과 시민들의 부끄러운 양심에 남아,
새 시대를 이끌고
더이상 슬픔이 없는 나라,
눈물이 없는 나라로 이끄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힘이 될 것이니,

어찌 주 예수의 나라가 곧 오지 않겠는가,
그러니 어찌 "고난 길 헤치고 찾아온 길"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8월 5~8일 연세대 원주 캠퍼스에서 2014 기독 교사 대회가 열린다. 2000여 명의 교사가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자들'로서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나님이 저자에게 주신 마음을 함께 나누고 깨달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는 교사와 학부모가 많아진다면 사교육, 입시 경쟁, 학원 때문에 소망을 잃는 아이가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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