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다.' 청년 시절 펄떡펄떡 뛰는 심장으로 한 번쯤은 먹어 본 마음일 것이다. 이 사회가 불의한 구조로 돌아간다는 걸 알았을 때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당찬 '다짐'은, 어렸을 적 현실을 잘 몰라서 했던 '객기'가 된다. '세상은 바꿀 수 없으니, 이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덜 타협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이야기가 더 어른스럽게 들린다.

그러나 여기, '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섰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다. 시민 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공동대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2012년, "초등학교 1학년이 고등학생이 되는 2022년, 대한민국에서 입시 사교육은 사라집니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너무 크고 심각해서 감히 덤비기가 힘든 '입시 경쟁 구조'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이 말은 절대 '현실을 잘 몰라서 부리는 객기'가 아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그동안 해 온 일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2012년 4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선행 교육 금지법 제정 운동' 출범 기자회견을 열었다. 1년 10개월이 지난 2014년 2월 20일, 국회에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 교육 금지법)'이 통과됐다. 여러 가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무한 경쟁으로 질주하는 우리나라 교육에 브레이크를 한 번 밟은 건 자명하다. 그 중심에 송인수 대표가 있었다.

▲ 송인수 대표를 7월 22일 서울 삼각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시간 반가량 운동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지난 6월 말, 송 대표는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우리학교)라는 책이다. 그가 2010년부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은 것이다. "무슨 페이스북에다 쓴 글로 책을 내냐"는 비판은 섣부르다. 이 책에는 '인간 송인수'가 세상을 바꾸는 운동을 하면서, 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고민한 흔적이 절절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녹아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번쯤 송인수 대표와 직접 만나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토록 좋아하던 교직을 접으면서까지 '운동'에 투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서 기독교 신앙이란 그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는 지금 한국 사회와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7월 22일 서울 삼각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났다.

잘못된 구조·제도 떠받드는 의식이 '몸통'

▲ 송인수 대표는 6월 말 책을 한 권 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는 희망에 대하여>(우리학교)는 송 대표가 4년간 페이스북에 쓴 글을 묶은 책이다. 272면, 정가 1만 4000원.

'당신은 도대체 왜 운동을 하는가.' 송인수 대표에게 가장 묻고 싶은 것이었다. 책에는 그가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외로운 감정들이 종종 묻어난다. 교육 운동에 매진하기 위해 그토록 행복해하던 교직을 떠난 것도, 운동에만 집중하느라 사람 만날 시간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 자녀 교육을 할 때도 자신에게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며,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명분이 있어야 하고, 또한 나같이 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살아온 길이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정당화'와 '변명'을 넘어서는 어떤 '적극적 이유' 같은 것이 필요하다(32쪽)"고 말한다. 피곤한 삶이다.

왜 그런 삶을 스스로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송 대표는 먼저 운동을 "세상을 바꾸는 것을 목표로 두 사람 이상이 손을 맞잡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1992년, 자신이 아직 운동에 뛰어들지 않고 교직에 있을 때 얘기를 꺼냈다.

"처음 담임교사를 할 때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가르쳤죠. 어느 날 학년부장 선생님이 담임선생님들 모아놓고 각 반에서 성적으로 1~15등 하는 학생들 명단을 주면서 그 아이들 학부모에게 20만 원씩 받으라는 거예요. 불법 찬조금이죠. 열두 반이었으니 총 3600만 원입니다. 아이들 야간 자율 학습 감독 수당, 교사들 회식, 교장·교감 수당 이런 걸로 지급하는 일종의 비자금으로 활용하는 거예요. 저만 거절해서 3300만 원 걷었어요. 이런 거 외에도 제가 옳지 않은 일, 양심적으로 어긋나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학교의 관행에 사사건건 반대했어요. 나중에는 그 부장 선생님과 주먹다짐하기 직전까지 싸웠죠. 그분과 저는 그렇게 끝장이 났어요."

송 대표는 "교직 인생에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던 좌절과 절망을 경험했다"고 회상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는데, 다른 선생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부장 선생과의 인간관계는 완전히 깨져 버렸다. 이 경험은 그가 운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그분이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죠. 학교가 입시 경쟁으로 돌아가니까 다른 학교에 비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많이 보내야 하고, 그러려면 모의고사 성적 좋아야 하고, 그러려면 야간 자습이나 보충 수업 많이 해야 하고, 교사들에게 추가 수당 줘야 하니까 비자금이 필요하고, 그걸 수요자인 학부모에게 요구한 것뿐이고…. 우리 사회에 잘못된 구조·관행이 편만한데, 그 속에서 내가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 자신을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저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도 아니고, '나는 그렇게 안 하겠다'고 했어요. 최소한의 방어를 하느라고 제 교직 인생에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거예요.

문득 12명의 선생님 중에서 두세 명이라도 뜻을 모아 학교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그랬으면 제가 좀 덜 다쳤을 것 같더라고요. 잘못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함께 힘을 합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죠.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하면서 만나는 학부모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운동하지 않는 학부모들은 학교의 잘못된 관행, 그 잘못된 관행에 찌들어 있는 동료 학부모와 교사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버려요. 어느새 자기도 그 조직과 구조를 돌리는 한 주체가 되어 있어요. 자신을 지키지 못한 거죠."

▲ 송인수 대표는 잘못된 제도뿐 아니라 그와 호응하는 의식도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운동가 스스로 자신의 의식과 직면하는 것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저력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송 대표가 바꿔야 할 잘못된 제도는 명확했다. 입시 경쟁 구조. 그는 글에서 종종 자신의 삶을 '괴물'과 싸우는 '전쟁'에 비유한다. "'괴물'의 실체는 입시 경쟁 구조와 그것을 떠받드는 잘못된 인식의 총합이다. 이것을 끝장내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행위를 '전쟁'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는 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운동가 스스로의 의식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건, 입시 경쟁 구조뿐 아니라 그걸 떠받드는 의식도 괴물의 한 영역으로 본다는 건데요. 사실 잘못된 구조는 그걸 떠받드는 잘못된 의식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거거든요. '일제 고사', '점수와 등수로 한 줄 세우는 제도', 이런 게 왜 존재하나 생각해 보면, 이와 호응되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엄마 나 수학 100점 맞았어!' 막 좋아서 엄마한테 얘기해요. 엄마는 기분 좋죠. 그런데 '잘했다'고 선뜻 얘기 안 해요. 한국 사람들은 반드시 물어봐요. '너 말고 몇 명이 100점 맞았니?' 30명 중 20명이 100점 맞았다고 하면 칭찬 안 해요. 나밖에 없다고 할 때, 그제야 비로소 칭찬이 나오거든요. 운동하는 사람도 다르지 않아요. '너 몇 등이야', '너 말고 몇 명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밖에서는 '여러분 일제 고사는 잘못됐습니다'라고 말해요.

잘못된 의식은 타인이 아니라, 운동하는 사람 속에 있는 거예요. 잘못된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의 뿌리가 되는, 내 속에 있는 잘못된 의식을 직면하고 그것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해요. 운동가 스스로 잘못된 의식에 직면하는 것은 타인의 의식을 바꾸는 힘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의식에 기생하는 잘못된 제도와 싸울 수 있는 저력과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은 자기 내면이 파괴되지 않고 오래 운동할 수 있어요. 그렇지 못하면 내면의 황폐화는 쏜살같이 찾아와요.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리죠. '저 사람 얘기 속에는 힘이 없어', '왠지 내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 자기가 울면서 편지를 쓰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그 편지를 보면서 울까요. 반대로 타인이 울었다면 분명히 글 쓴 사람이 울었기 때문이에요. 운동가 스스로의 의식 변화는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죠."

그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면서 많이도 울었다.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입시 구조와 전력으로 싸우고 있지만, 자기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게 '달랑' 편지 한 통이 아니다. 풀어야 할 문제에 모든 것을 소진하여 성과를 내며, '후원을 해도 아깝지 않구나'라는 공감이 없다면 편지는 힘없는 도구다. 절박함 없이 욕심이나 막연한 필요로 시작되는 후원 요청은 과자 봉지 해설서에 불과하다. 살아 온 세월, 풀어야 할 문제에 대한 아픔과 자기 한계가 담긴 후원 편지를 쓰며, 나는 울지 않은 때가 거의 없다. 그 마음이 담기지 않은 편지는 안 쓰는 것이 낫다고 늘 스스로에게 말한다"(<우리는 아이들에게 모두 빚진 사람들이다>, 102쪽).

구체적인 데이터로 대중을 설득하라

▲ 올해 2월 21일 국회에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 교육 금지법)'이 통과됐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선행 교육 금지법 제정 운동을 벌인 후 1년 10개월만이다. 그동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수많은 토론회와 서명운동, 1인 시위 등을 벌였다. (사진 제공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철저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송인수 대표의 저력은 실제 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통계를 치밀하게 준비해 반격당할 빈틈을 주지 않는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자료를 제시해 몇 가지 정책 대안을 만들어냈다. 심지어 교육부에도 없는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운동해야 적들을 이길 수 있는지, 송 대표에게 배워 보자.

"왜 그렇게 데이터를 가지고 치밀하게 싸움을 거느냐, 저는 우리 운동의 성격, 우리 운동이 지향하는 바와 무관치 않다고 봐요. 운동 단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이슈를 제기하는 단체'와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 이슈를 제기하는 단체는 어떤 아젠다를 제시하면 되는 건데, 문제를 해결하는 단체는 반드시 그 영역의 문제를 풀어야 하거든요. 저희는 풀어야 할 문제가 뭔지 자명해요. 입시와 사교육 문제죠. 그 문제를 풀지 않고는 아무리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보급하고, 회원들이 많아지고, 많은 후원을 받아도 성공한 게 아니에요.

두 번째는 저희가 대중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문제를 풀겠다고 했거든요. 과거에는 교육 운동도 그렇고 다른 운동도 그렇고, 아주 헌신돼 있는 소수의 운동가들이 운동을 끌고 가는 힘이었어요. 2000년대부터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봐요. 이제 운동은 평범한 시민들의 가슴 속에 있는 에너지와 물적 자원을 끌어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해요. 또 사교육 문제는 보수·진보 어느 한 축만 끌어안고 운동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온 국민이 동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념이 아닌 합리적인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가장 중요한 건 데이터, 통계예요. 만약 데이터와 통계로 설명할 수 없는 주장이라면 대중과 언론을 움직일 수 있는 설득력이 없어요. 그런데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지난한 과정이죠. 돈도 많이 들고, 사람들 쫓아다녀야 하고, 뒤지고 캐내고…. 저희가 대학 체제 개편과 관련해 '좋은 대학 100 플랜'이라는 대안을 만들려고 1년 동안 한 주제로 30번 토론회를 열었어요. 외고 입시 정책이 2010년에 개선됐는데, 그것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5번의 토론회를 거쳤고요. 선행 교육 규제법과 관련 실태 파악을 위해서만 10번 정도 토론을 했어요. '대안'은 머릿속의 아이디어가 아니고, 현실을 다 뒤지고 탈탈 털면 그 속에 숨어 있어요."

그에게 운동의 목적은 분명했다 - '세상을 바꾸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가 얼만큼 세상을 바꿨다'는 결과를 내놔야 한다고 송 대표는 역설했다. 구호만 난무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운동은 '실패'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운동 단체가 자기들이 내건 가치, 문제의식, 그런 것만 붙들고 있다 보면, 자족적인 운동이 되기 쉬워요. 이러면 시민들이 먼저 알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일들에 결과를 내지 못하는 단체에는 후원하지 않거든요. 혹 그런 단체에 후원하더라도 굉장히 좌절을 느껴요. 사람들은 그 단체가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원해서 후원하죠. 그런데 1년 2년 3년이 지나도 그 단체가 여전히 현상 유지만 하는 걸 보면 어떨까요. '아, 내가 후원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뜻있는 시민들에게 절망감을 심어 주는 것은 운동 단체로서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서든지 '결과'를 내야 하는 거죠.

그런데 많은 시민 단체가 결과를 이야기할 때, 'output'을 얘기해요. '우리가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런 캠페인·행사를 했다', 이런 걸 총회 때 얘기해요. 이건 결과가 아니에요. 'outcome'이 진짜 결과죠. output을 통해 세상을 얼마나 바꿨느냐, 우리가 한 해 동안 노력해서 바꾼 세상의 변화의 모습을 제시해 주는 게 중요해요. 그것을 제시해 주지 않으면 사실 시민들 후원을 받으면 안 돼요. 일반 시민 단체나 기독교 운동 단체들이 간과할 수 있는 착시 효과가 이거예요. 우리가 프로그램을 많이 운영을 했다는 것이, 마치 세상을 바꾼 것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는 거죠."

'아직', 그러나 '이미' 온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잘못된 입시 정책과 사교육 관행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소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소책자 구입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홈페이지(cafe.daum.net/no-worry/C88W/212)에서 할 수 있다. 

송인수 대표의 글에는 종종 '새 세상', '새 시민'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새로운 세상이 오길 바라는가. 그 세상이 오면 나를 바꾸겠다 말하지 마라. 그 세상이 오지 않고 칠흑같이 어두운 지금일지라도 나는 그 세상의 시민으로 살겠다고 나서라"(190쪽).

기독교적인 용어로 치장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에서 '하나님나라'의 가치관이 엿보인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오는 시대의 질서'로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나라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그에게 하나님나라와 운동은 어떻게 연결돼 있을까.

"대학·대학원 시절에 하나님나라에 대해 배웠어요. 그 당시 기독교 세계관 열풍이 불었거든요. 우리가 유행처럼 표현하고 있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하나님나라는 왔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되게 공허하더라고요. 'So what?',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얘긴데'. 굉장히 막연했어요. 이미 온 하나님나라가 저의 삶에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별로 없었어요. 교사로 살아갈 때, 촌지나 불법 찬조금 받지 않고, 그러다가 학년 회의에서 왕따 당하고, 그런 경험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미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삶이라는 생각에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단지 '그리스도인은 정직하게 살아야 해'라는 생각이었죠.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운동을 하면서 회원들에게 계속 얘기했어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2022년에 온다. 그때 되면 오니까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운동합시다.' 그런데 회원들이 우리가 만든 <아깝다 학원비> 같은 소책자를 보고, '등대지기 학교' 강좌를 듣고 바뀌는 걸 봤어요. <아깝다 학원비>는 그렇게 급진적인 내용도 아니에요. 입시 경쟁을 인정하더라도 불필요한 사교육까지 시킬 필요는 없다, 학원에 대한 소비를 좀 알뜰하게 하자, 이런 정도의 가르침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소책자를 읽으면서 학원 일체를 안 보내기 시작해요. 등대지기 강의를 통해서 불안과 공포를 내던져 버리고 겁 없이 살아가요. 그리고 뭐라고 말하냐면, '대학 때 예수 믿고 난 후 최초로 찾아온 종교적 체험, 변화의 체험이었다', '대학 시절 학생 운동도 했지만 부모로서는 그냥 비루하게 살아 왔는데, 이 운동과 강좌를 통해 내 속에 변화를 경험했다', 이러는 거예요.

나는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2022년에 온다고 했어요. 그것은 곧 그 세상이 지금은 안 왔다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의 삶은 분명히 앞으로 와야 할 세상의, 그 나라의 가치를 살아가는 시민의 모습이에요. 2022년에 찾아올 세상 속에서 살아갈 시민의 모습이 이미 보인 거죠. 나라가 없는데 시민이 있다? 이거는 말이 안 되죠. 시민이 있다는 것은 그 나라가 있다는 거예요. 온전한 형태는 아닐지라도, 달라진 세상을 이미 살아가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세상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것은 기만이죠. 그때 갑자기 대학·대학원 시절에 배운 '하나님나라'가 딱 오버랩됐어요. 아, 하나님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왔다. '아직'과 '이미' 속에서 그 긴장을 끌어안고 그 나라의 가치를 살아간다는 게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한 거죠."

송 대표는 자신의 직업 속에서 몸을 던져 운동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는 과정 속에서만 진정 하나님나라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나님나라 개념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나라의 새 시민으로 산다는 얘기는 아니다. 불안과 두려움을 떨치고 마치 그 세상이 온 것처럼 살 때 비로소 하나님나라는 피부에 와닿게 된다.

현재의 행복을 미래에 담보 잡힌 아이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스탭들과 회원들이 5월 15일 광화문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회원들은 지금까지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교육 운동가로서, 세월호 참사는 송인수 대표에게 더욱 고통스럽고 죄스럽게 다가왔다. 지난 4월 25일, 안산 합동 분향소를 다녀온 후 그는 이렇게 썼다.

"이렇게 훌쩍 우리 곁을 떠나기 전, '무엇을 이루기 전이라도, 너희 삶은 준비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그 자체로 찬란한 존재란다' 그 소중한 진실을 진작 알려 주었어야 했다. 우리의 그 말을 듣고 '선생님, 엄마, 아빠, 그래요, 제 인생은 준비하는 생만은 아니랍니다. 제 인생도 이렇게 4월의 봄날처럼 찬란합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니 고맙습니다'라는 기쁜 고백이 있었다면, 아이들의 죽음은 그래도 덜 원통했을 것 같다. 준비하는 것 외에 생의 의미를 느껴본 적 없는 아이들. 그렇게 가르쳐 오고, 그렇게 윽박지르며 몰아 온 우리들이었기에 더욱 부끄럽고 미안하다"(54쪽).

세월호 참사에 대해 얘기하는 송 대표의 목소리는 자주 흔들렸다. 붉어진 눈시울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100일이 지나도 못다 핀 아이들의 죽음은 생생하게 가슴속에 새겨져 있다.

"국민들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세월호 참사에 애도할까요. 그건 수백 명의 꽃다운 우리 아이들이 채 좋은 세상도 보지 못한 채…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고된 준비만 하다가, 일순간에 꽃이 떨어진 것에 대한 비통함, 이런 게 국민적인 애도로 표현된 것 같아요. 지난 17년 동안 아이들이 이 땅에서 죽을 고생하며 고통을 겪어 왔다는 거예요…. 부모들이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강요한… 그러나 그 결과로 미래의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고, 고통만 겪다가 생이 끝나 버린 것에 대한 애석함과 미안함, 빚진 마음… 이런 것들이 부모들, 특히 어머니들의 마음속에 비수처럼 꽂혔죠.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이렇게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는 존재로 만들면 안 되겠다, 그것이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인 양 말하면 안 되겠다, 보장도 못할 뿐만 아니라 보장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희생을 강요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각성이 일어났어요.

아이들의 죽음을 통해, 지난 40~50년 동안 지속되어 왔던, 아이들을 학대해 왔던, 입시 경쟁의 관행과 구조와 의식들을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 된다는 게 참사에 담겨 있는 시대적인 요구에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당선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진상 조사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멈춰서는 안 되죠.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계속 강요하는 입시 경쟁 구조를 종식하는 새로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 운동가로서 이 참사에 담겨 있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단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이지만, 앞으로 더욱 더 이 입시 경쟁 구조를 끝장내는, 스톱시키는 국민적 운동을 어떻게 풀어 갈 것이냐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지난 5월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을 세우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이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은 평일마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관련 기사 : 그분께 약속했다, "피켓이라도 들겠다"고 <시사인>) 1인 시위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교회가 입시 경쟁 구조 방치·조장했다

세상은 점점 더 편리해지지만 우리네 삶은 점점 팍팍해지는 것 같다. 10대 아이들이 더 그렇다. 현재를 충분히 누리고 행복해야 할 아이들이 불투명한 미래에 행복을 저당 잡혔다. 송인수 대표는 그 근본적인 원인을 '입시 경쟁 구조'라고 보고 있다.

한국교회는 뭘 하고 있나. 10대들의 우울한 삶을 보면서 이들을 해방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10대와 관련한 한국교회의 아젠다는 '주일학교에 아이들이 없다. 그러니 전도에 힘쓰자'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교회에 아이들이 없는 건, 입시 경쟁 구조를 '방치' 또는 '조장'한 교회의 책임이라고 송 대표는 일갈했다.

"10대가 교회에서 사라진 것은 사회보다는 교회의 책임이죠. 교회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 시대의 일꾼과 시민을 만들어 내는 일에 소홀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사회가 이렇게 망가지도록 방치한 거예요. 그 결과가 우리 아이들이 교회에서 사라지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요. 보세요. 왜 우리 아이들이 입시 경쟁에 이렇게 올인할까요? 좋은 대학 가야 하고, 그래야 좋은 일자리 갈 수 있고, 그래야 사회에서 루저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좋은 일자리가 뭘까요? '돈'과 '안정성'이죠. KDI(한국개발연구원)가 발표한 30대 대기업 집단과 공기업·금융업. 이 기업들이 한 해 창출하는 신규 고용 인력은 2만 개뿐이에요. 2009년 고교 졸업생 평균이 60만 명이거든요. 그러면 30명 중 1명만 그 일자리에 들어가는 위너고, 나머지 95%는 루저가 되는 거예요. 폭력적인 구조죠.

그런데 교회가, 기독교인들이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요. 교회 역시 돈과 안정성을 좋은 일자리의 기준으로 보는 거죠. 이 기준을 내면화한 상태로 수능 기도회를 하면서 그 일자리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구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뜻이 자녀에게 있든 없든 관계없이,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싫어하는 기독교인의 생각. 그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하면 우리 아이들의 인생은 위험하게 되고 낙오한다는 생각.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들을 그동안 서슴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아이들에게 강요했던 교회가 오늘의 이런 결과를 방치하고 오히려 조장한 거죠. 그러니 주일학교에서 전도한다고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회복이 될까요?"

송 대표는 현재의 주일학교 체제는 한국교회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부모가 아이들의 신앙 교육과 삶의 교육에 대한 책임자로서의 위치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고, 교회는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을 장려하는 형태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울림 있는 글, 울림 있는 삶

한 시간 반가량이 속도 있게 지나갔다. 비록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가 사무실로 쌩 올라가 버려 식사 한 끼 같이하지 못했지만, 뭐 상관없었다. 그와 나눴던 말과 생각을 곱씹는 걸로 만족했다. 아무래도 그의 책을 한 번 더 읽어 봐야겠다.

송인수 대표는 '운동'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이라는 말이 왜곡돼 좀 과격하게 들리는 감이 있지만, 송 대표의 운동은 과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세상을 바꾸는 모든 행위가 운동이다. 그는 자신의 운동을 어려운 용어와 논리로 포장하지 않았다. 항상 평범한 시민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가 간다.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게 있다. 공감을 이끌어 내고, 울림을 준다.

말이 쉬워서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울림 있는 글은 울림 있는 삶을 전제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송 대표는 가슴속에 뜨거운 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건 냉혹하리만치 철저한 자기 성찰이다. 그래서 그는 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다. 입시 사교육을 완전히 끝장내는 2022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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