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8일 길자연 목사는 총신대 총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교단 내에서는 길 목사가 결국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길 목사는 6월 5일 총신대 재단이사회에서 임기 4년 동안의 포부를 밝혔다. (마르투스 자료 사진)

길자연 목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직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6월 5일 열린 총신대 재단이사회에서, 길 목사는 총장직과 관련한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고 보고하고 향후 도서관 건립과 장학금 모금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8일 총신대 운영이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임하겠다고 말한 후, 두 달 만에 자신의 말을 번복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길자연 목사, 총신대 총장 사임 표명)

지난해 말 총신대 5대 총장으로 당선된 길자연 목사는 교단과 교육부, 학교로부터 압박을 받아 왔다. 교단 내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70세 정년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교육부는 2월 10일, 길 목사가 칼빈대 이사로 있었을 때의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관련 기사 : 길자연 목사, 총신대 총장직 결격사유 발생) 교단법과 사립학교법에 저촉되는 상태가 됐다. 길 목사와 함께 총장 후보로 올랐던 총신대 박수준 교수는 '총장 직무 정지' 소송을 걸었다. 신학대학원에서도 학생들이 길 목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길 목사는 돌연 총장직 사임을 표명했다. 그는 교단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식 회의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교단 인사들과 학생들은 길 목사의 용단을 환영했다. 정말 교단을 위해서였는지, 압박을 받아서였는지 길 목사의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길 목사가 사임을 결정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하지만 길자연 목사는 사임 표명 후 사직서를 제출하는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다. 길 목사의 사표를 정식으로 수리해야 할 재단이사회는 정족수 미달로 번번이 유회됐다. 일주일 후 길 목사는 몇몇 교단 언론을 통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 물러나면 자신이 마치 소송에서 질까 봐 어쩔 수 없이 사임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당시 길 목사는 교육부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에 대해 집행 정지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함께 걸고, 박 교수에게 총장 직무 정지 가처분 소송을 당한 상태였다.

길자연 목사는 두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서울행정법원은 4월 24일, "교육부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는 본안 소송 판결 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6월 3일, 박 교수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길자연 목사는 사임 대신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6월 5일 재단이사회에 참석한 길 목사는 총신대 발전을 위한 포부를 내비쳤다. 교단지 <기독신문>에 따르면, 길 목사는 "(여러 소송으로 인해) 여러분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다. 앞으로 조심해 처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임기 4년 동안 박형룡기념도서관 건립과 신대원 반액 장학금을 위한 260억 원을 모금하는 기금후원회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 6월 5일 총신대 재단이사회 회의록 중 길자연 목사와 관련된 부분. 길 목사의 사임 번복 소식을 접한 교단 인사들과 총신대 학생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며 혀를 찼다.

길자연 목사의 번복에 대한 교단 인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라는 것이다. 한 목사는 "공인으로서 자기가 한 말을 그렇게 쉽게 번복해도 되나.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교단의 망신이다. 반드시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 99회 총회 때 길 목사의 총장 사임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목사는 길 목사가 사임을 표명한 시점이 봄 정기노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였다며, 70세 정년제를 지켜야 한다는 노회의 헌의를 막으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온건한 입장도 있었다. 길 목사의 사임 번복이 떨떠름하긴 하지만, 공식적인 회의에서 나온 말도 아니고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요즘 학교 운영이 어려워 후원을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교수가 총장직을 수행하는 것보다 교계에서 인지도 있는 길 목사가 총장을 맡으면 모금이 더 용이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총신대 학생들은 교단에 또 한 번 실망했다. 금권 선거와 목회 세습을 하고 교계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켜 온 길 목사를 처음부터 반대했는데, 사임한다는 말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 신대원생은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짐작했지만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지니 허탈하다. (길 목사가) 법정 싸움에서 모두 승소하니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신대원생은 "길 목사를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학생들의 전반적인 정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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