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자연 목사가 총신대학교 총장직을 계속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6월 5일 열린 총신대 재단이사회에서, 길 목사는 총장직과 관련한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고 보고하고 향후 도서관 건립과 장학금 모금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28일 총신대 운영이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임하겠다고 말한 후, 두 달 만에 자신의 말을 번복한 것이다. (관련 기사 : 길자연 목사, 총신대 총장 사임 표명)
지난해 말 총신대 5대 총장으로 당선된 길자연 목사는 교단과 교육부, 학교로부터 압박을 받아 왔다. 교단 내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70세 정년제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교육부는 2월 10일, 길 목사가 칼빈대 이사로 있었을 때의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관련 기사 : 길자연 목사, 총신대 총장직 결격사유 발생) 교단법과 사립학교법에 저촉되는 상태가 됐다. 길 목사와 함께 총장 후보로 올랐던 총신대 박수준 교수는 '총장 직무 정지' 소송을 걸었다. 신학대학원에서도 학생들이 길 목사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길 목사는 돌연 총장직 사임을 표명했다. 그는 교단의 발전과 화합을 위해 물러나겠다고 했다. 정식 회의에서 한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은 언론을 타고 일파만파 퍼졌다. 교단 인사들과 학생들은 길 목사의 용단을 환영했다. 정말 교단을 위해서였는지, 압박을 받아서였는지 길 목사의 속내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길 목사가 사임을 결정한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하지만 길자연 목사는 사임 표명 후 사직서를 제출하는 정식 절차를 밟지 않았다. 길 목사의 사표를 정식으로 수리해야 할 재단이사회는 정족수 미달로 번번이 유회됐다. 일주일 후 길 목사는 몇몇 교단 언론을 통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 물러나면 자신이 마치 소송에서 질까 봐 어쩔 수 없이 사임하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당시 길 목사는 교육부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에 대해 집행 정지 가처분과 본안 소송을 함께 걸고, 박 교수에게 총장 직무 정지 가처분 소송을 당한 상태였다.
길자연 목사는 두 소송에서 모두 이겼다. 서울행정법원은 4월 24일, "교육부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는 본안 소송 판결 후 30일이 되는 날까지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6월 3일, 박 교수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법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길자연 목사는 사임 대신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6월 5일 재단이사회에 참석한 길 목사는 총신대 발전을 위한 포부를 내비쳤다. 교단지 <기독신문>에 따르면, 길 목사는 "(여러 소송으로 인해) 여러분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다. 앞으로 조심해 처신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임기 4년 동안 박형룡기념도서관 건립과 신대원 반액 장학금을 위한 260억 원을 모금하는 기금후원회를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길자연 목사의 번복에 대한 교단 인사들의 반응은 차갑다.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나'라는 것이다. 한 목사는 "공인으로서 자기가 한 말을 그렇게 쉽게 번복해도 되나.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교단의 망신이다. 반드시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월 99회 총회 때 길 목사의 총장 사임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목사는 길 목사가 사임을 표명한 시점이 봄 정기노회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을 때였다며, 70세 정년제를 지켜야 한다는 노회의 헌의를 막으려고 수작을 부린 것 같다고 했다.
반면, 온건한 입장도 있었다. 길 목사의 사임 번복이 떨떠름하긴 하지만, 공식적인 회의에서 나온 말도 아니고 정식으로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요즘 학교 운영이 어려워 후원을 많이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교수가 총장직을 수행하는 것보다 교계에서 인지도 있는 길 목사가 총장을 맡으면 모금이 더 용이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총신대 학생들은 교단에 또 한 번 실망했다. 금권 선거와 목회 세습을 하고 교계에서 여러 문제를 일으켜 온 길 목사를 처음부터 반대했는데, 사임한다는 말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한 신대원생은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짐작했지만 진짜 이런 일이 벌어지니 허탈하다. (길 목사가) 법정 싸움에서 모두 승소하니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신대원생은 "길 목사를 총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학생들의 전반적인 정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