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 목사의 '몰살하는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에 이은 두 번째 글입니다. 세 편의 글로 이어지는 연재 칼럼입니다. 이 글은 곽건용 목사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으로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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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이게 정말일까?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을 일으키는 얘기들이 가끔, 아니 상당히 자주 나올 거다.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히브리인들이 출애굽했을 때 홍해바다가 갈라졌다는 얘기가 대표적일 게다. 이 얘기가 사람 입에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이유는 그만큼 유명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의 역사적 사실성을 두고 수백 년 동안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구의 주류 학계에선 논쟁을 그친 지 오래지만 보수적인 신학이 지배하는 한국 학계와 교계에선 여전히 논쟁 중인 걸로 알고 있다.

내 경우는 영화 '십계'에서 보듯이 바다가 쫙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성서의 진술에 글자 그대로 '그저 믿습니다!'도 아니지만, 히브리인들이 건넌 곳이 '홍해'가 아니라 '갈대 바다'라고 부르는 갈대가 가득한 늪지대였다는 나름 '합리적'인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성서가 그렇게 진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서의 진술은 영화 '십계'에 가깝다. 좌우간 나의 경우에는 믿음보다는 이성이 더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성서의 진술이 글자 그대로 믿기진 않는다. 그 주제에 어떻게 목회를 하냐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직은 쫓겨나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염려 마시라.

근데 사실 이 얘긴 기적의 스케일로 따지면 여호수아 10장에 나오는 얘기에 비해 새 발의 피다. 거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족속과 전쟁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때는 바다가 갈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태양이 멈춰 버렸다는 거다. 와, 태양이 멈췄단다! 놀랍지 않은가? 달이 멈췄다고 해도 놀라 자빠질 텐데 태양이 멈췄다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인가 말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자. '당신은 태양이 멈췄다면 믿겠습니까?'라고 말이다. 아마 열이면 열 모두, 묻는 날 미쳤다고 할 거다. 한국의 기독교인이 25% 정도라고 하니 열 명에 두세 명은 '그럴 수도 있다. 믿을 수 있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난 장담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엔 그렇게 쓰여 있다고 해도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는 믿지 않을 거란 얘기다. 안 그런가? 목사가 말해도 마찬가질 거다. 요즘 목사는 옛날 목사에 비해 '(영적) 권위'가 바닥이기 때문에 (자업자득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목사가 물어도 "목사님, 솔직히 그걸 어떻게 믿어요"라고 대답한다는 데 10불 건다. 설령 목사가 설교에서 이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해도 교인들은 진지하게 듣지 않을 거라는 데 또 10불 건다.

이 '엄청난' 사건과 관련해서 하고픈 얘긴 두 가지다. 하나는, 이런 얘기를 적어서 후대에 전한 사람들 ­― 한국에선 '자유주의' 학자라고 부르고 서구에선 '주류' 학자(수적으로 많다는 의미)라고 불리는 이들이 '신명기 역사가'라고 부르는 사람들 ― 은 태양이 멈추면 어떤 현상이 생길 거라고 상상했을까 하는 점이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저 높은 천정 어딘가에 달려 있는 태양이 돌기를 잠시 멈춘 정도로, 그게 잠시 멈췄다 하더라도 이 땅에는 아무 영향도 안 미친다고 믿었을 거다.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과 과학 지식에 비춰 보면 그랬다는 얘기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다르다. 태양이 멈춘다면 그건 지구가 자전을 멈춘다는 말이 된다. 우린 그들과 달리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만일 지구가 자전을 멈춘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겠지만 (공상 과학 영화에서도 이런 경우는 못 봤다) 그래도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나, 그냥 다 죽는 거지! 하지만 여호수아 10장을 적어서 후대에 전한 사람들은 이와 같은 과학 지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감히 '증언'하고 있는 거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 주려고! 그 힘으로 자기들을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줬다고 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못하는 일이 없기에 지구가 멈췄다 해도 아무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라. 그런 분은 그렇게 믿으셔야 한다. 그렇게 믿으시기 바란다. 나도 그런 분에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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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 곧 세계관과 '패러다임'에 대한 얘기다. 홍해가 갈라졌다고 아무렇지 않게 전하는 모세오경과 태양이 멈췄다고 당당하게 전하는 신명기 역사서가 기록됐던 시대의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과 패러다임이 어땠는지를 고려하지 않으면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는 얘기가 하고 싶은 거다.

뭔가를 믿기 위해서는 먼저 그 뭔가를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와 믿음의 관계에 대한 고전적인 논의를 재론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상식선에서 생각해 봐도 어떻게 '이해'하지 않고 '믿는다'는 말인가? 물론 세상 만사가 다 이해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얼마든지 벌어진다는 거, 나도 인정한다. 신비한 일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거, 나도 수긍한다. 하지만 태양이 멈추는 게 과연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일까? 그런 일은 사람의 인식 범위 바깥의 일이니 그저 '눈 딱 감고' 믿어야 하나? 정말 그런가? 그걸 못 믿으면 신앙이 없는 건가? 그 사건을 '이해'하려 드는 건 '불신앙'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건도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이해'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라 태양이 멈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어떤 세계관과 패러다임 안에서 그렇게 믿었는지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물론 21세기를 살아가는 내가 3천 년 전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과 패러다임을 공유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러기엔 우리 유전자에 너무도 많은 정보가 새겨져 있다.

과학적인 면에서 보면 신명기 역사가가 태양이 멈추는 일이 가능했다고 본 것은 그들의 세계관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해한 우주는 평평한 땅과 하늘 위 어딘가에 존재하는 지붕, 그 지붕에 달려 있는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그 지붕 위에 가득 차 있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비가 오는 건 지붕에 붙어 있는 창문 같은 게 열려서 그 위의 물이 쏟아져 내려오는 걸로 믿었다. (언젠가 우종학 교수가 페이스북 담벼락에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 있던데 그걸 참조하면 좋겠다.) 그들은 우주가 이렇게 단순하게 생겼고 그리 넓지 않다고 믿었기에 태양도 하나님이 명령하면 멈출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지상에는 티끌 만한 영향도 미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나는 태양이 멈췄다는 신명기 역사가의 얘기를 이렇게 '이해'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갖고 있던 과학적 지식에 어긋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과학적 지식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 믿음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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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그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는지를 살펴보자. 이건 성경이 전하고 있으니 답을 찾느라 고민할 거 없다. 성경은 그때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물렀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렀던 이유는 이스라엘이 원수들에게 복수하기를 끝마치기 위해서였다고 전한다(여호수아 10:13). 풀어서 말하면 지금 원수인 아모리 족속을 한창 죽이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면 앞이 안 보이고 앞이 안 보이면 전투를 할 수 없으니 살육을 계속하려면 태양이 멈췄어야 했다는 거다.

여러분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보면 가나안은 그저 중동 지역의 작은 일부이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는 거 나도 인정한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그 땅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준 '약속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이 사소한 일은 분명 아니었을 거다.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지만 아무리 그게 중요한 일이었다 해도 자기들이 땅을 차지하는 걸 방해하는 아모리 족속을 살육하기 위해서 태양이 멈췄다?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배웠으므로 '의심'하는 데 익숙하진 않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자기들이 전쟁에서 이기게 하려고 하나님이 태양을 멈췄다고 주장하는 건 아무리 이스라엘이 '우리 편'이라고 해도, 그래서 좋게 봐 주려 해도 지나치다. 안 그런가? 물론 이스라엘이 우리 편일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또한 성경 아닌 다른 책이나 다른 종교의 경전에 이런 얘기가 쓰여 있다면 기독교인이 그걸 역사적 사실로 믿을까? 그렇지 않을 거다. 성경에 쓰여 있으니까 고민되는 거 아닌가. 성경이 아니라면 믿긴커녕 조롱받을 얘기 아닌가 말이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전한 이유는 그들 신앙이 철저하게 '부족주의 신앙(tribalism)'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신앙의 시야가 자기 부족을 넘어서지 않았기 때문이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그게 무슨 얘기냐? 구약성경에도 보편주의 신앙(universalism)이 얼마나 잘 드러나 있는데… 무식하면 말이나 말지…'라고 하실 분이 있을 거다. 하지만 구약성경에서 그런 보편주의 신앙과 신학이 나타난 것은 이로부터 적어도 수백 년 후였다.

그러니까 부족주의, 이게 문제였던 거다. 시야가 자기 부족의 범위 안에 머물러 있는 부족주의 신앙 말이다. 여호수아 10장 얘기에서 날 오랫동안 괴롭혀 온 문제는 정말 태양이 멈췄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당시 사람들의 과학 지식의 수준과 관련시켜서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날 괴롭힌 문제는 그 태양이 '자기들을 위해서' 멈췄다고 믿었던 데 있다. 그것도 첨에는 '흠, 이들 자기들이 선민이라고 믿으니 별 걸 다 믿었군…'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선민의식 때문이 아니라 당시 누구나 갖고 있던 부족주의 때문이었다.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해도 그 시야가 부족 단위를 넘어서지 못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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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부족주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민의식'이나 '단일민족' 사상도 그중 하나가 되겠다. 세상에 단일민족이 어디 있는가. 그건 '신화'에 불과하다. 태양이 멈췄다는 얘기는 과학 지식의 한계와 더불어 부족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얘기로 읽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네 신앙과 직접적인 관련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얘긴 내게 '믿어야 할 얘기'라기보다는 '이해해야 할 얘기'인 것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다른 대량 살육 얘기의 밑바닥에도 부족주의 신앙이 깔려 있다. 따라서 난 그 얘기들도 믿기보다는 이해하는 방향으로 읽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얘기들이 갖고 있는 현실적 영향력이다. 말하자면 그 얘기들은 엄청난 임팩트를 지금도 여전히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 얘긴 따로 해 보려 한다. (계속)

곽건용 / 나성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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