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곽건용 목사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으로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세 편의 글로 이어지는 연재 칼럼입니다. 6월 첫째 주 후속 글을 전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김 아무개 목사가 최근 설교에서 "하나님이 공연히 (세월호를)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에요.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이 대한민국, 그래도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예요"라고 말했단다. 이에 대해 한 페이스북 지인이 앞뒤 문맥을 다 잘라먹고 일부 문장만 인용해서 비난하는 건 정당하지 않다고 쓴 걸 봤다. 나도 동의한다. 거두절미하고 일부만 인용하여 그 본뜻을 왜곡하는 건 저들이 오랫동안 써 오던 치졸한 수법 아닌가. 그렇게 하면 글을 쓰거나 말한 이의 본뜻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다.

저들은 그래도 우린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김 아무개 씨 설교의 경우에도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한두 문장만 떼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양반이 한 얘기의 본뜻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려 했던 것은, 세월호 참사는 궁극적으로 이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경고함으로써 또 한 번의 기회를 주기 위해 하나님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다. 엎어 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김 아무개 목사의 이 발언에 대해서 적어도 내 페이스북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규탄해 마지않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런 망발은 규탄받아 싸다. 그런데 문제는 김 아무개 목사의 이런 '해석'이 어디서 비롯됐냐는 거다. 어디서 나왔을까? 그는 무엇을 근거해서 이런 망발을 했을까?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성경'에서 왔다. 성경, 그것도 구약성경 말이다. 안 그런가?

성경에는 대량 학살에 대한 얘기가 적지 않은데 그것들은 예외 없이 '의미'와 '목적'이 있어서 일어난 걸로 되어 있다.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런 참변이 벌어졌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적지 않은 경우가 '하나님'이 일으킨 걸로 되어 있다. 대개의 경우는 사람들을 통해서 했지만 가끔 하나님이 직접 하기도 했다.

얼른 떠오르는 것만도 출애굽했을 때 이집트인 장자들을 대량으로 죽인 일(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한 걸로 되어 있다), 광야에서 금송아지 사건 후에 모세가 레위인들을 시켜서 광란의 밤을 보낸 동족 3천 명을 몰살한 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거기 살고 있던 일곱 종족들을 어린아이와 짐승들까지 모조리 죽인 일, 히스기야 시대에 예루살렘을 에워싸고 있던 앗시리아 군대를 하나님의 사자들이 수십만 명을 한꺼번에 죽인 일 등이 있다. 아, 노아 시대에 홍수로써 온 땅을 쓸어 버린 일도 있었다. 이게 규모론 제일 컸으리라. 이에 대해서는 한동안 논란이 됐던 영화 '노아'를 보시라. 엄청 실감날 거다.

여러분은 이 대량 학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우리가 대한민국에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어린 학생들을 죽였다는 김 아무개 씨의 설교에 치를 떨고 규탄해 마지않는 것만큼 성경에 등장하는 대량 학살에 대해서도 똑같이 치를 떨고 규탄하는가? 여러분은 그런 얘기들이 아무 문제없이 술술 읽히는가? 정말 그런가? 그리고 정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시나?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우리가 뭐 어떻게 하라고? 하나님이 하신 일인데 거기에 어떻게 토를 단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할 거다. 이건 '신앙'이 아니고 '회피' 아닐까? 답을 찾기 어려우니까 그냥 하나님에게 미뤄 놓는 '회피' 말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죽은 학생들은 안타깝고 히브리인들이 탈출할 때 떼로 죽은 이집트 장자들은 안타깝지 않은가? 그들은 죽어 마땅한가? 왜? 단순히 히브리 노예들을 괴롭힌 이집트인의 자식들이기 때문에? 어떤 글을 보니까 그들의 아비들이 히브리인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그 자식들은 죽어 마땅하다는 식으로 썼던데 정말 그런가? 아비가 잘못하면 자식이 벌을 받는 게 과연 옳은가?

만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렇다면 가나안에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일곱 족속들이, 아이들과 짐승들까지 몰살당한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나? 그들이 히브리인들에게 무슨 죄를 졌는가 말이다. 죄고 잘못이고 아직 섞여서 살기도 전인데 잘못을 했으면 무슨 잘못을 했고 죄를 졌으면 무슨 죄를 졌겠냐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몰살당했다. 그들은 존재 자체가 죄였을까? 고고학자들과 구약성서 학자들은 실제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성경에는 엄연히 그렇게 적혀 있지 않은가. 우린 대체 이런 기가 막힌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아시는 분 있으면 내게 알려 주시라.

정직해야 한다. 수긍할 수 없으면 수긍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데 무작정 하나님 편을 든다거나 성경이니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내 페이스북 지인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학생들을 수장시켰다는 김 아무개 목사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 동의는커녕 분노했고 규탄해 마지않았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대량 학살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성경은 의미 없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히브리인들을 괴롭혔으니까 이집트의 장자들을 다 죽였다, 아니면 바로가 야훼 하나님의 말을 안 들으니까 그랬다는 해석에 동의하시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일곱 족속과 섞여 살게 되면 그들의 바알 종교에 물들게 될 것이므로 미리 예방 차원에서 그들을 몰살했다는 해석에 여러분은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왜 거꾸로는 생각해 보지 않나?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의 야훼 신앙을 가질 가능성은 전혀 없었을까? 그렇다면 야훼보다 바알이 더 세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집트의 장자들이 몰살당한 것도, 가나안 일곱 족속이 멸망당한 것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해도) 하나님이 한 일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도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럼 뭐냐고? 그건 이미 글이 지나치게 길어졌으므로 다음 글에서 쓰겠다.

곽건용 / 나성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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