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편에 서라> / 짐 월리스 지음 / 박세혁 옮김 / IVP 펴냄 / 488면 / 2만 원

얼마 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에 관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내용 중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종교인 혹은 종교 기관의 정치적인 활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무려 74.6%나 되는 사람이 종교인 혹은 종교 기관의 정치적 활동을 반대했다. 이 결과는 일반 시민들이 종교가 공적인 영역인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아마 대다수 성도들의 생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어쩌다 종교 즉 기독교 신앙이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나게 되었을까?

짐 월리스의 <하나님 편에 서라>(IVP, 2014)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공적인 사명에 대한 책이다. 복음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개인의 속죄만 이루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것은 온 세상이고(갈 6:14) 예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요 3:16) 세상의 죄를 지고 대신 죽으셨다(요 1:29).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아 지금도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만 섬길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복음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그런데 이 왜곡된 현실을 우리는 지금 경험하고 있다.

월리스는 이런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으려는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앙은 보수적이다. 1948년에 태어난 그는 대학생이던 시절 보수적인 교회들이 인종 차별에 무관심한 것을 보고 신앙에 회의를 느끼며 교회를 떠난 경력이 있다. 그 후 사회운동을 하던 중 가난한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성경에서 발견하고 회심하게 된다. 1970년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 입학해 신학을 공부하지만 기성 신학의 한계를 절감하고 지금은 워싱턴 D.C.의 도심 빈민가에서 소저너스 공동체를 세워 그곳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타임>이 그를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50인에 선정할 만큼 그는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의 관심은 복음의 공공성 회복이다. 이미 출간된 <부러진 십자가>(아바서원, 2012), <회심>(IVP, 2008)을 보면 그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 신앙을 공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하나님 편에 서라>는 C. S. 루이스가 쓴 <나니아 나라 연대기>에 나오는 아슬란에게서 영감을 얻어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회심은 영혼의 운명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둘째, 신앙은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입장을 초월한다. 셋째,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서 공적인 삶에서 신앙을 실천해야 한다.

복음의 공공성은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을 통해 확보된다. 공동선이란 모든 이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이미 우리가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고 천명했다(갈 6:10). 이 말씀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웃의 한계를 허물어 버리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한다. 더구나 마지막 때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선을 베풀었는지 아닌지를 보시고 심판하지 않은가! 그래서 초대교회 교부인 크리소스토무스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임을 확언하였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다.

이와 같은 공동선의 추구는 정치라고 하는 공적인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개인적으로 선을 베푸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정책과 예산 확보는 공동선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들이다. 이때 정치적인 문제는 신학적인 문제로 환원된다. 정책과 예산이 가난한 자들과 관련된 신학적인 문제가 된 이상 교회가 정치라고 하는 공적인 영역에 간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월리스는 정치·경제 문제가 사실은 신학적인 문제 즉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밝히며 교회를 공적인 자리로 이끌어 내고 있다.

그런데 대개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앞서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조사한 통계에서 보듯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그리고 진보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은 개인 구원에만 매달려 있는 성도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나 월리스는 이런 구도 자체를 거부한다.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정치적 좌파의 길도 우파의 길도 아닌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적 이념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따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어갈 때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초월할 수 있다.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진보와 보수는 서로 그 가치를 존중하며 함께 일해야 한다. 실제 월리스는 진보적인 사람이지만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 진보의 가치인 사회적인 책임뿐만 아니라 보수의 가치인 개인의 책임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강조한다. 그리고 역시 보수의 가치인 가정과 결혼, 성 윤리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매우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국가주의 역시 경계해야 할 우상이다. 월리스는 이점도 명확하게 집고 넘어간다. 미국은 결코 다른 나라와 다른 '예외적인 나라'가 아니며 이라크 침공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911테러는 잘못된 것이지만 전쟁이라는 폭력으로 이것을 해결하려고 한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전쟁을 통해서 해결된 것은 거의 없다. 폭탄을 퍼부을 것이 아니라 빵과 기술을 줬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지적은 그가 국가를 신으로 섬기지 않고 예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노예제도를 종식시킨 월버포스나 인종 차별 정책에 저항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존경한다. 특히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 꿈이 있습니다"는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하지만 어떤 꿈을 꿀 것인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은 복음을 개인적인 영역으로 축소하지 않았다. 가난하고 연약한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기 위해 헌신했다. 오늘 주위를 둘러보면 여러 형태의 노예제도와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또 다른 월버포스와 킹 목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월리스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이웃 사랑에 대한 새로운 윤리를 갈망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킬 복음을 찾고 있는 것도 젊은이들이다. 하지만 대다수 교회 청년들에게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많은 선교 단체는 어떨까? 월리스는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때 만난 선교 단체 학생들을 소개하고 있다. CCC 학생들은 공산주의자들은 죽어야 한다고 했고 IVF 학생들은 그저 기도만 하고 있었다. 오늘의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축소된 복음을 배우고 있으면 젊은이들이라도 소망이 없다.

책의 내용 중에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월리스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다"고 말한다(208쪽).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존중하며 섬겨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선물로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요 1:12).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가족,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또 구체적인 예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예를 들어 56쪽을 보면 "주요한 사회 개혁 운동의 핵심에는 언제나 신앙 공동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교회가 공적인 영역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211~212쪽을 보면 "… 루즈벨트의 업적과 … 케네디의 성과는 … 강력한 노동운동과 흑인 민권 운동 덕분에 가능했다"가 나온다. 이것 역시 월리스가 주장하는 시민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사회 과학적으로 검증된 자료를 각주로 돌려 소개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

참으로 아쉬운 것은 한국교회가 복음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신학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일반 은총론이다. 일반 은총론은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한다. 이 일반 은총은 불신자들과 함께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일반 은총론으로 짐 월리스처럼 교회에 있는 성도들을 세상으로 이끌고 나와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도록 촉구하였다. 이 귀한 신학적 유산을 제대로 물려받고 실행해 나갔더라면 한국교회도 공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라>는 기독교 신앙을 공적인 영역으로 이끌기 위해 성경적 기초를 찾고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한 책이다. 비록 분석과 적용 대상이 미국이지만 자본에 의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것이나 복음을 개인의 속죄로만 이해하는 것 등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월리스의 조언들은 우리나라의 현실에도 매우 실제적이고 절실한 지침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기독교적 해답을 모색하고 있는 저자의 노력과 통찰에 감사했다.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성경적인 해답을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한국의 짐 월리스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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