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가 1월 22일 향린교회에서 '거리 교회, 거리 목사, 거리 예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최 목사는 지난 5년간 194차례에 걸쳐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올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항상 새로운 예수를 본다." 권력에 억압받고 상처받은 사람들만 찾아가 예배를 드리는 목사가 있다. 때로는 공감의 눈물로 때로는 분노의 일갈로 철저히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그는 말 그대로 '거리의 목사'다. 예수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고 예수에 미쳐서 목사가 됐다는 그는, 거리로 나와 약자들을 직접 찾아갔던 예수를 본으로 삼았다. "현장을 외면하고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촛불교회 최헌국 목사 얘기다.

최헌국 목사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용산 참사 현장,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현장, 제주 강정마을 해군 기지 반대 현장, 4대강 규탄 현장,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현대자동차·재능교육 노동자 투쟁 현장, 철도 파업 현장, 그리고 얼마 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규탄하며 분신한 고 이남종 열사의 빈소까지, 그는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직접 찾아가서 묵묵히 나무 십자가를 세우고 촛불을 켠다.

최헌국 목사가 1월 22일 향린교회에서 '거리 교회, 거리 목사, 거리 예수'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지난 5년간 거리 교회를 지향하고 거리 목사를 자처하며 거리 예수의 뒤를 좇은 최 목사에게 어울리는 주제였다. 그에게 '거리'는 곧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을 의미한다. 겨울에도 어김없이 현장을 지키는 그는 강의에 앞서 연거푸 기침을 해 댔다. 강좌를 주최한 길목협동조합 측은 "매번 추운 현장에서만 뵀는데 이번에 따뜻한 곳에 모시게 됐다"며 최 목사를 소개했다.

▲ "현장을 외면하고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교회가 무력해지는 것은 현장에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최헌국 목사는 문자 그대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현장을 지켰다. 사진은 2011년 7월 촛불교회 100번째 기도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고통받는 사람 돌보지 않으면 '가짜 목자', '가짜 그리스도인'

2008년 광우병 촛불 집회 당시 기독교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최 목사는 사회 문제를 규탄하는 현장에 앞장서게 됐다. 2009년에는 몇몇 목회자와 함께 촛불교회를 창립해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촛불교회는 여느 교회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배당도 없고 고정적인 예배 장소도 없다. 현장이 예배 장소다. 최 목사에게 목회란 힘닿는 데까지 약한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렇게 촛불교회는 5년 동안 194번에 걸쳐 거리 예배를 드렸다.

최헌국 목사는 에스겔 34장으로 촛불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본문은 야훼 하나님이 양을 먹이지 않고 오히려 양을 먹어 버리는 거짓 목자들을 몰아내고 자신이 직접 양들을 구원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는 성경에 나와 있는 '목자'가 현대의 목사만을 의미하지 않고, 예수를 따르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말씀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해당한다고 말했다.

▲ 최헌국 목사는 에스겔 34장을 통해 촛불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그는 억압받는 민중을 먹이는 게 목자의 본분이라며, 한국교회가 이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성경에 따르면 '가짜 목자'들은 야훼 하나님에 의해 해고당할 수 있다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목자의 본분은 양들을 먹이는 일이다. 최헌국 목사는 이 시대의 양은 상처받은 민중이라고 정의했다. 민초들 한 사람 한 사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게 목자가 할 일이라고 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억울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관심이었다고 최 목사는 전했다. 자신들은 생사가 걸려 있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힘들다며, 다른 건 바라지 않고 자주 찾아와 주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지 못했다. 민주화 시대에는 기독교가 이 역할을 감당했지만,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생각한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기득권에 편승한 모습을 보였다. 양을 먹이지 않고 스스로를 먹이고 있는 꼴이다. 최헌국 목사는 한국교회가 '개독교'라는 오명을 쓴 가장 큰 이유도 민중을 외면하고 개인 심령에만 집중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촛불교회도 5년이나 됐지만 아직 그리스도인들의 참여는 미미한 수준이다. 회원은 200명 정도고 매주 목요일 촛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20명 안팎이다. 한국에서 매주 수백만 명이 예배당을 찾지만 억눌린 사람들을 찾는 교인들은 극히 적다는 뜻이다.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거짓 목자들을 대적하며 그들이 다시는 양을 먹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먹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최헌국 목사는 어쩌면 우리가 가짜 목자로 드러나 해고당할 수도 있다며, 그리스도인들이 이 말씀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을 먹이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무책임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양을 먹이는 것을 방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진짜 목자라고 최 목사는 말했다. 마침내 가짜 목자들을 심판하고 직접 자신의 양을 먹이실 하나님과 협력해 생명과 평화가 충만한 이상적인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고도 했다. 사회운동적인 관점으로만 현장에 참여하는 것은 분명하게 선을 긋지만, 무조건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목적도 아니라고 했다. 참목자는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헌국 목사는 촛불교회가 전국 각지에 퍼져 이런 사명을 감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조직은 작지만 이런 모임을 서울 외의 지역에도 만드는 게 앞으로의 목표라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각자 다른 교회를 다니더라도 현장에서 만나 하나가 되는 촛불교회의 형태에서 한국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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