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자동차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도회가 덕수궁 대한문에서 열렸다. 감신대 주최로 열린 기도회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이 희생자를 위한 침묵 기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헬리콥터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회색 먼지가 날리는 옥상에는 경찰과 노동자들이 뒤섞여 있었다. 싸움이라기보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었다. 그 사이 몇 명의 노동자가 넘어졌다. 경찰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들고 있던 곤봉으로 사정없이 내리쳤다. 이미 그들은 사람이 아니기에, 그저 제압하고 끌어내리면 되는 작업 대상이기에. 이는 3년 전 어느 수련회에 참석했다가 기자가 보았던 영상의 한 장면이다.

3년이 흘렀지만,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노조)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어느 곳을 가도 그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점점 고립되어 갔고, 22명은 결국 죽음을 택했다.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 해고 철회하라!" 100여 명이 외치는 소리가 덕수궁 대한문을 가득 메웠다. 4월 19일, 22번째 쌍용자동차 희생자인 고 이윤형 씨를 추모하는 촛불 기도회가 열렸다. 특별히 이번 기도회는 감리교신학대학교(감신대) 학생회가 주관한 만큼 40여 명이 넘는 학생이 참석했다.

▲ 쌍용자동차 노조 김정욱(좌) 지부장과 <오마이뉴스> 이명옥 시민기자가 시대의 증언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시대의 증언 시간, 쌍용차 노조 김정욱 지부장은 "전쟁 속에서 동료를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며 운을 뗐다. 김 지부장은 2009년 파업 당시 사 측의 대응을 '테러 진압'이라고 표현했다. 해고 후 용접공과 일용직을 전전하는 동지들과 아예 소식조차 없는 동지들을 떠올리며 김 지부장은 "하루빨리 이 아픔의 '트라우마'를 잊고 싶다"고 했다. 또한 5월 18일까지 대한문에서 열리는 고 이윤형 씨의 49제를 무사히 마치고, 쌍용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 외에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이명옥 씨는 "한진중공업 희망 버스에 참여하면서 쌍용자동차 문제를 멀리 했다는 마음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이 씨는 매일 <오마이뉴스>에 촛불 문화제를 알리는 기사를 쓴다. 그게 노동자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 마지막 소통의 수단

▲ 이덕주 교수는 어린 여공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자기 몸을 불살랐던 고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설교에서 고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했다. 이 교수는 전 씨가 자신의 생활 여건이 불편해서 투쟁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전 씨는 자신보다 어린 10대 여공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법전을 펼쳤지만 한자가 너무 많았다. 한자투성이인 법전을 번역해 주는 대학 친구 1명이 전 씨는 무엇보다 그리웠다."

한 손에 법전을 들고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한 전 씨는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어머니께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어머니, 기독교 신자로서 자살이 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믿는 예수라면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더라도 내 여동생들에게 나은 세상을 만들어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이 교수는 "죽음은 노동자들이 택한 마지막 소통의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죽어간 노동자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살아 있는 우리가 전하자고 했다.

광고 시간, 최헌국 목사(예수살기)는 고 이윤형 씨의 사진을 들고 나왔다. "잘 차려진 영정사진을 가져 오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프린트 한 것을 들고 올 수밖에 없었다"며 최 목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분향소조차 차리지 못하게 하는 정부에 대응해 종교계가 나서서 분향소를 지키자는 심정으로 참석했다고 말했다.

▲ 최헌국 목사가 고 이윤형 씨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시간이 없어서 영정사진 준비를 못 해 왔다는 최 목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서른여섯, 돌보아 줄 가족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윤형 씨는 성실하게 살았다고 최 목사는 말했다. 노동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겠다며 투쟁에 참여했다가 결국 죽음으로 내몰린 윤형 씨를 위해 최 목사는 외치는 기도를 제안했다. "고 이윤형 님, 그리고 쌍용자동차 학살로 죽은 영정들이여,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부활하소서."

▲ 촛불을 든 참석자들이 외치는 기도를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설교 후 참석자들이 국화꽃을 들고 고 이윤형 씨의 분향소에 분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감신대 학생회 대표들이 나와 성명서를 읽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  참석자들은 동그랗게 모여 서서 공동 축도로 기도회를 마쳤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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