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CC 총회 파송 예배서 설교한 마이클 랩슬리 성공회 사제는 죄악·미움·죽음보다 정의·평화·생명이 훨씬 강하다면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 협력자로 거듭나기를 바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 총회가 파송 예배를 끝으로 9박 10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란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110개국, 347개 교파 및 교단에 속한 기독교인 5000여 명이 참여했다.

11월 8일 오후 2시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파송 예배는 '주께서 왕위에 오르신다'는 찬송으로 시작했다. 기도에 나선 장상 아시아 회장은 사랑의 뿌리를 내리게 하사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봉사로 성장하고, 삶 속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해 달라고 했다.

설교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 마이클 랩슬리 성공회 사제(기억치유연구소 소장)가 했다. 그는 1973년 남아공으로 파송됐고,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하던 1990년 4월경 인종차별 단체 측이 보낸 편지 폭탄에 두 팔과 한쪽 눈을 잃었다. 랩슬리 사제는 사고로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된 이유는 죄악·미움·죽음보다 정의·평화·생명이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고백했다. 총회 참가자들에게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는 협력자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 WCC 제10차 부산 총회가 파송 예배를 끝으로 9박 10일간의 일정을 마쳤다. 이번 총회에서는 30년 만의 선교 선언문을 비롯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 등이 채택되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간의 탐욕이 세상을 죽이고 있다며 종교 간 연대를 강조했다. 랩슬리 사제는 "지금도 인종차별 철폐뿐 아니라 성차별과 어린이 폭력에 대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며 평화는 요원하다고 했다. 만일 서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확대 에큐메니즘' 정신으로 기독교 아닌 다른 종단과도 연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직자를 향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오늘날 성직자는 설교를 줄이고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고통을 들어줄 마음이 있다는 것은 곧 정의를 위해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성 소수자 그룹 LGBTI 공동체에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연령대에서 여러분(성 소수자)이 고통스럽게 살았다. 모든 종교의 지도자가 (저와) 똑같이 사과하는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예배 후 참석자들은 주위 사람을 꼭 안아 주며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과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며 헤어짐의 인사말을 전했다.

한편, 예배 도중 한 남성이 무대에 난입하면서 예배가 잠시 중단기도 했다. 흰색 복장을 한 그는 마이크를 움켜쥐고 회개하라고 외쳤다. 무대 아래에서도 한 여성이 회개하라고 외쳤다. 행사 관계자 10여 명이 붙어 남성을 무대에서 끌어 내리고 이들을 예배당 바깥으로 내보냈다. 무대에 뛰어든 남성은 WCC 총회 기간 내내 벡스코 주위를 맴돌며 총회 반대 시위를 해 왔다.

참가자들 "다양한 의견 들어 도움" vs "호사스러운 총회"

▲ 반대 시위는 총회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예수만이 구주이고, 다른 종교에는 구원이 없다'는 피켓을 든 한 남성이 벡스코에서 시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총회 참가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독일에서 온 프란츠 제버 교수(프랑크푸르트대학교)는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고, 종파와 교단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서 온 로버트 반 더 바르트는 이번 총회를 포함 5번째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역대 총회 중 부산이 최고의 시설과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했다. 총회 반대 집회를 하는 이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고 했다.

미국에서 온 빅토르 카시노는 가톨릭 신학생으로 2015년 사제 서품을 받는다. 종교 간 대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GETI(세계에큐메니칼신학원) 참가자로 부산 총회에 임했다. 에큐메니컬 좌담과 전체 회의 등을 통해 세계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HIV 문제 등을 알게 됐다고 했다. 주말 프로그램으로 광주 양림교회를 찾은 빅토르는 밥상 공동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미국의 성당에는 예배 후 식사 문화가 없다면서 예배 후 공동 식사하는 모습이 꼭 성만찬처럼 보였다고 했다. 빅토르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WCC 총회를 다시 찾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총회가 보여 주기에 급급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KETI(한국에큐메니칼신학원) 지도교수로 참가한 김기석 교수(성공회대)는 총회의 화려함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물씬 풍긴 WCC 총회가 신자유주의에 도전한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중심에 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김영주 총무)가 행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것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목사는 일치를 꿈꾸는 그리스도인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좋은 일이지만, 행사가 외형적인 부분에 치우친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일례로 11월 7일 열린 수요 예배는 외국인 참가자들에게 과시하려는 듯했다며 진지하게 열린 개막 예배와 비교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명과 생태를 강조하는 총회장 내부에 종이컵이 쏟아져 나오는 등 아쉬운 점도 많았다고 했다.

▲ 새로 선출된 중앙위원회 위촉식이 있었다. 박종화 WCC준비대회장이 위촉식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 WCC는 예배 참가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을 하나씩 나눠 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파송 예배에는 2000여 명의 참가자가 참석했다. 예배 중인 참가자들의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 WCC 한국준비위원회 임원진의 모습. 사진 왼쪽부터 김영주 집행위원장, 허원구 부산WCC준비위원장, 이영훈 부위원장, 김삼환 대표대회장.ⓒ뉴스앤조이 이용필
▲ 파송 예배 후 참석자들은 주위 사람을 꼭 안아 주며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과 함께하신다",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할 것"이라며 헤어짐의 인사말을 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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