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신교 단체들이 2014년부터 사용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개신교 부분이 적게 기술됐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학자들은 교과서 내용을 바꾸려면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한국검인정교과서 홈페이지 갈무리)

2014년부터 사용될 한국사 교과서에 개신교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바깥에서는 한국사 교과서를 두고 이념 논쟁이 한창이지만, 한국교회가 제기하는 문제의 성격은 다르다. 개신교가 우리나라 근대사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은 너무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에 정치계와 친한 몇몇 개신교 인사들은 최근 특별대책위원회를 조직,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원들을 만나 교과서 수정을 요구하기도 했다.

개신교 단체들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교과서를 수정해 달라고 촉구해 왔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산하 한국교회역사바로알리기운동본부(이용규 본부장),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산하 한국교회발전연구원(이성희 원장), 한국교회사학회(강경림 회장) 등은 교과서에 개신교가 왜곡·축소 서술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여는 등 지속적으로 교과서 개정을 촉구했고, 한국교회사학회는 교과서에 들어갈 문구를 직접 만들어 한국사 교과서를 만드는 각 출판사에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교과서에 실린 개신교의 분량이 타 종교에 비해 적다고 주장했다. 특히 개항 이후 개신교의 수용과 배경, 발전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 교과서에 불교·유교·천도교·천주교 등 다른 종교가 처음 들어온 과정은 설명이 자세한데, 개신교가 처음 등장한 과정은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최소한 천주교나 천도교가 유입됐을 때의 분량 정도로 개신교의 등장을 서술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 12월, 개항 이후 종교 부분의 집필 기준을 수정했다. '(개항 이후) 종교에 대해서는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이 없도록 하고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설명하도록 한다'에서 '개항 이후 개신교의 수용과 각 종교의 활동에 대해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서술하도록 유의한다'로 바꾼 것이다. 개신교 단체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교과부가 받아들인 것이라며 환영했다.

집필 기준에 따라 교과서가 수정되기를 기다리던 개신교 단체들은, 최근 개정을 거친 교과서를 받아 들고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한기총 한국교회역사바로알리기운동본부 전문위원장 박명수 서울신대 교수는 9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된 교과서가 기존 교과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2013년 개정된 한국사 교과서 8종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의 교과서가 개항 이후 개신교의 등장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몇몇 개신교 인사들은 '한국교계교과서·동성애동성혼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책 마련을 꾀했다. 위원회는 전 국회위원이자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부총회장 김영진 장로가 상임대표를 맡았고,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 의원과 국가조찬기도회 회장 김명규 목사,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총재 전용태 장로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들은 지난 10월 4일 여야 교육문화위원회 소속 국회위원들과 조찬 모임을 하면서 교과서 수정을 부탁했다.

교과서 바꾸려면 연구 통한 공감대 형성이 우선

한국사·교회사 학자들은 개신교 단체들이 교과서 문제에 정치적으로 접근한다고 꼬집었다. 개정을 요구하려면 합당한 연구를 거치는 게 순서라고 입을 모았다.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는 일부 개신교 인사들이 연구는 제대로 하지 않고 압력만 행사한다고 비판했다. 학문적으로 모두가 공감할 만한 연구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염복규 연구원(역사문제연구소·국사편찬위원회)은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되는 것이 교과서에 반영되지, 어느 단체가 강력하게 주장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아니고 바뀌어서도 안 된다고 언급했다.

개신교의 역할에 비해 서술된 분량이 적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도 있다. 홍석률 교수(성신여대)는 교과서 나름대로 검증 기준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종교가 차별받는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한국사 교과서에 근현대사가 차지하는 분량이 굉장히 적고, 주어진 분량에서 여러 단체들의 요구를 모두 고려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역시 "개신교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많이 이뤄진다면 교과서 기술도 자연스럽게 바뀌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한편, 개신교의 정치력 때문에 아예 답변을 꺼리는 교수도 있었다. 근현대사를 전공한 한 교수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개신교가 축소 기술됐다는 주장에 대해) 뭐라고 발언하면 개신교 측과의 논쟁을 피할 수 없다. 우리나라 개신교는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교과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연구 영역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 공세다"고 말했다.

개신교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시점에 이런 논의가 불거지는 것을 우려하는 학자도 있다. 이덕주 교수(감신대)는 개신교가 세상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있는 지금, 해체 여론에 둘러싸인 한기총이 딴죽을 걸면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신교가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신사참배를 비롯한 친일 행각 등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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