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교회협의회와 신학> / 이형기 지음 / 북코리아(Bookorea) 펴냄 / 544쪽 / 2만 8000원

요즘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이하 WCC)'가 각종 매체와 신앙인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최고의 화젯거리다. WCC 총회가 2013년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참조 공식 영어 홈페이지).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이형기 전 장신대교수)가 탈도 많고 논란도 많은 WCC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가장 잘 짚어 줄 적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차분한 논조로 WCC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공식 문서를 중심으로 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나라는 이념적 혹은 종교적 논란에 휩싸이게 되면 이성이나 합리나 논리보다는 "그(것)가 누구의 편인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등의 선정적인 혹은 이념적인 판가름이 우선하고 그 뒤에 가서 진정한 논의는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다.

소위 역사적(historic) 개혁(칼뱅)주의자들은 16~17세기의 교리적 잣대로 WCC를 다룬다. 잣대만 좀 다를 뿐, 한국의 근본주의적 교단이나 관련자들의 입장도 유사하다. 이들은 여러 가지 과거의 다양한 부정적인 사례들, 혹은 다른 비기독교적 사례들과의 유사성을 나열하는 것으로 WCC에 대한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해 낸다. 그러나 실제로 WCC에 대한 합리적 전문가들의 저술은 고려되지 않으며 직접적인 연구도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전폭적인 지지자도 있고 중립적인 입장도 있을 터인데, 진리 아니면 거짓이라는 흑백논리로 선결론 후조사의 태도를 보인다.

아주 오래전에 에큐메니칼('범교회적') 공의회를 개최하고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 등을 논하던 시대는 이미 가고 역사 속에서 지금껏 수(십, 혹은 백)차례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분열되었으며, 하나의 교회나 하나의 신앙고백의 시대에서 교단이나 교파의 신앙고백의 시대로 사분오열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독교 선교와 대사회문제'와 관련한 기독교협의체가 생겨난 것은 기독교 역사상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문제점들을 갖고 모인 협의회이지만 기독교회의 모임이라는 점에서 세계교회의 다양한 역사적 신학적 배경을 가진 협의회가 갖게 될 일치성(을 지향하는)과 다양성의 '대화'와 사회참여의 문제는 한편으로는 환호를, 다른 한편으로는 정죄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저자(본서는 총 13장-미래-이지만, 여기서는 12장까지만 다룬다)는 1장에서 기존의 사람들이 갖는 WCC에 대한 오해를 먼저 개괄적으로 다룬다. WCC에 대하여 궁금한 독자들은 이 단락을 반드시 정독해 주기를 바란다. 특별히 WCC가 하나의 슈퍼 교회 체제를 만들려 한다거나, 교회의 정체성을 버리고 사회참여를 한다거나, 자력 구원의 펠라기우스를 추종한다거나, 자유주의신학을 수행한다거나, 하나님의 선교의 일변도로 나간다거나,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한다거나, 공산주의를 옹호한다거나, 정현경 박사와 같은 초혼의 굿의식을 긍정적으로 여기는가?

저자는 2장에서 종교개혁과 대각성 운동, 그리고 현대 개신교(보수) 연합 운동의 두 갈래, 그리고 에큐메니칼 연합 운동을 나열하고 비교하면서 유사성과 차이점의 이유를 설명해 간다. 부흥 운동과 선교 운동 자체는 연합 운동의 기치를 높였고 종교개혁 당시와 20세기 근본주의 운동은 부분적인 연합 운동과 오해와 갈등의 역사를 초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WCC가 제시하는 공식 선언문에 나타난 교리적인 차이와 문제점이 크게 대두되기는 하였지만, 성경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에서 비롯된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과 확장이 주요 의혹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특별히 생태신학이라든지, 해방신학에서 주장하는 구조의 문제로 인한 정치·경제적 정의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만의 고민거리가 아니라 20세기와 21세기에 들어서서 복음주의자들의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고민은 이제는 (처음에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의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개인, 영혼 구원과 내세 천국이냐의 논란도 결국 신학적 해석의 패러다임의 전환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지, WCC만의 문제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3장에서 성경해석학의 문제('통일성과 다양성')를 다룬다. 앞서도 말했듯이, WCC는 전 세계 기독교의 협의체이며 그들의 입장은 공식 문서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와 같은 공식 문서는 모호하거나 포괄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으며 특정 교단이나 특정 입장과의 간격이나 심지어 일치할 수 없는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다름이나 다양성을 인정할 부분인 것이지, '비기독교'의 범주에 둘 일은 아닌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다른 기독교 교파들과의 협력이나 대화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저자는 4장에서 온전한 복음을 다룬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이 논제는 오랜 신학적 토론과 성경 탐구를 필요로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많은 부분에서 합의가 도출되리라고 생각한다. 온전한 복음이란 단순히 영혼을 '죄 많은' 이 세상에서 구출하는 것 이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세상에서의 죄악을 초래하는 구조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더 성경적인 것이다.

5장은 삼위일체론이다. 삼위일체론이 WCC의 최근 경향을 잘 말해 준다고 하겠다. 일치 속에서의 다양성과 교제(코이노니아).

6장은 구원론이다. 이 구원론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153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신칭의와 관련한 루터교와 로마가톨릭교회사이의 합의문에 영향을 받았다. 이 합의문에는 "일치와 차이가 나타나 있다"는 점과 "더 이상 이로 인한 서로의 정죄를 하지 않겠다"는 두 가지 점이 그 특징이다. 우리가 잘 알 수 있듯이, 칭의의 문제는 성화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논리적으로 칭의와 성화는 분리되지만, 불가분의 관계인 것도 사실이다. 구원론과 관련해서는 가톨릭과 루터파, 루터파와 개혁파, 개혁파와 감리교 사이의 다양한 협의와 논의라는 중요한 성과도 언급할 필요가 있다.

7장은 교회론이다. 그동안 WCC가 행한 교회들(적 전통) 사이의 '가시적 일치 추구의 조건들'과 사회참여(선교와 코이노니아)와 관련된 논의를 다룬다.

8장은 종말론이다. 그들은 '미래 지향적 하나님나라에 대한 희망'과 '현세적 실현 과정'과 '종말 이전'의 도덕과 윤리를 강조한다. 종말은 창조의 완성이지, '단순한 복귀'나, 그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것이다.

9장은 종교 간의 대화 문제다. 이것은 각자의 특수성을 유지하면서 '타 종교 나름의 보편적인 진리성과 타당성을 가지는 진리들'을 발견해 내는 대화인 것이다(339쪽). 그렇기 때문에 대화는 전통적인 측면에서의 복음 선포나 전도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한 대화의 추구는 '사랑과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공동체 추구'에 있다(353쪽).

10장은 경제문제다.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으로서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나 경제문제 등의 종교를 넘어서는 지구 거주자들의 공동체성이 강조된다. 그것은 특별히 신자유주의가 낳은 문제점들에 대한 공동 대처인 것이다.

11장은 로마가톨릭교회다. 개신교 사이에서의 대화와 일치와 협력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개신교와 로마가톨릭과 성공회와 동방정교회와의 관계는 여전히 소원하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는 교리적 대화와 일치의 추구에 있다. 여기서 일치는 통일 혹은 획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적 정리

첫째, WCC라는 '독립되고 특별한' 실체는 없다. 이들은 기독교 역사와 종파와 다양한 입장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실체일 뿐이다. 사실 역사상 많은 문제를 초래한, 혹은 시작한 자들은 그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을 함께 논의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이들은 각각의 다양한 신학적 전통과 입장을 가지고 '일치'를 위하여 협의체를 이루며 그들 나름의 그리고 현대 기독교신학의 '다양성'을 반영할 뿐이다. 우리는 이들과는 일치하게 그리고 다르게 기독교신학을 정립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려 한다면, 당연히 누군가는 옳고 누군가는 잘못된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논리를 비기독교라는 범주에 두려는 시도는 더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시점에서, 그리고 오래 그 '다름'이 수용 가능한 다름인가, 수용 불가능한 다름인가는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WCC와 벌어지는 논란은 결국, 교회의 역사 속에서 다루었던, 리버럴한 기독교(혹은 현대신학(들))를, 천주교와 동방정교를, 급진적인 선교관을 수용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의 연장인 것이다. 이 책을 잘 읽어 보고, 또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WCC의 모토인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 '일치 속에서의 다양성'은 실천 가능할 수도, 실천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WCC에 관하여 쉽고 전반적으로 이해 가능한 서술 형식을 취하는 이러한 책자-물론 저자가 100% '역사적' 개혁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를 통하여 WCC가 갖고 있는 목표와 입장과 세부 사항을 알고 나누는 일이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가를 상기시켜 준다. 어떠한 뜨거운 주제와 관련하여 비판서와 아울러 이러한 책들을 병행하여 읽어 보고 전문가들을 불러 그들의 입장과 부연 설명을 들어 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낀다. 물론 개인이나 교회나 교단적인 입장이 있으니, 이렇다 저렇다 쉽게 단정 지을 일은 아니지만, 개인의 평가와 이해가 모여 교회나 교단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니만큼, 찬반 입장을 떠나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라고 여긴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 고민거리는, WCC에 대한 다름의 견해/의사표현이 그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불구대천의 원수, 사탄의 앞잡이, 지옥의 사자들인가? 한국 보수기독교의 일부는 어떤 이슈에 대하여 항상 적절한 논의와 합당한 논리를 넘어서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WCC에 대하여 그들이 취하는 과격하고 비이성적인 행동이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들 과격파들의 주요 무기는 근거 없는 혹은 매우 과장된 선동(煽動) 그 자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와 행동은 객관적이고 건전한 이해가 아니라, 결국 불쾌한 '감정적'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많은 대화와 연구를 통하여 중립적이며 설득적인 논의들도 나오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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