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한동대학교가 차기 총장 선출을 두고 갈등을 겪고 있다. 이사회가 주도하는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이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한동대학교(김영길 총장)가 내년 1월 말 퇴임하는 김영길 총장의 뒤를 이을 차기 총장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내홍을 겪고 있다. 학교법인 한동대학교 이사회(김범일 이사장)가 주도하는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들이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와 학생들은 이사회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이사회가 귀를 막고 있어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사회는 올해 2월부터 차기 총장을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법인 이사 5인, 외부 인사 2인으로 총장인선위원회(인선위·이성만 위원장)를 구성해 후보자를 추천하게 했다. 인선위는 후보자 공개 모집을 원칙으로 △창의적 교육 비전 △학문 업적 △재정 모금 능력 △행정 능력 △원만한 신앙 인격을 기준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한동대 교수 80% 이상이 가입한 교수협의회(교수협·이문원 회장)와 총학생회는 인선위에 교수와 학생 대표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총장 선출의 전권이 이사회에 있지만,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다른 대학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이문원 교수협 회장은 교수와 학생이 배제된 인선위는 한동대가 처음일 거라고 주장했다.

주요 사립대학들은 인선위 구성에 학생과 교수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교수 15명과 학생 3명을 인선위에 두고 있고, 서강대학교도 교수 15명과 동문 4인을 인선위에 포함한다. 현 김영길 총장이 이사로 있는 카이스트도 올해 총장 선출에서 교수협의회 회장을 인선위에 발탁했다.

이사회, 교수·학생들 참여 요구 무시

교수협은 지난 3월 19일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총장 인선에 교수들의 의견이 들어갈 수 있도록 요청했고, 총학생회도 3월 29일 김범일 이사장과의 면담에서 인선위에 학생위원회를 구성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들의 요구를 듣지 않았다. 이문원 회장은 이사회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을 받지 못했고, 뒤늦게 최소한의 정보만을 접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신임 총장을 모시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해야 할 구성원들이 무시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총학생회도 의견이 무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김민식 총학생회장은 김범일 이사장이 8월 31일 후보자 모집이 마감되면 총장 인선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김 학생회장은 "학교 교수 두 분이 지원했다 떨어졌다"는 소식만 나중에 들었다고 했다.

총장 인선 과정이 학내 반발에 직면하면서 김영길 총장의 행보까지 의심을 샀다. 개교 이후 19년 동안 총장을 맡은 김영길 총장이 3월 학부장 회의와 8월 교수 수련회에서 명예총장을 맡아 차기 총장을 돕겠다는 뜻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은 김영길 총장이 퇴임 이후에도 학교에 남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으로 번졌다.

▲ 총학생회는 학내 게시판에 성명을 내고 김영길 총장의 명예총장 추대를 반대하고, 이사회에 총장 선출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뉴스앤조이 한경민

총학생회와 일부 교수들은 10월 1일 학내 게시판과 인트라넷에 성명을 내어 김영길 총장의 명예총장 추대를 반대하고, 이사회에 총장 선출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한동대 동문회도 10월 4일 연서를 돌리며 동참했고, 한동대를 졸업한 남상곤 교수(파이퍼대학·공공보건학)는 10월 8일 학교 교정에서 김영길 총장의 명예총장 추대를 반대하고, 차기 총장 선출에 학내 구성원이 참여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인선위는 10월 1일 인트라넷을 통해 10월 31일까지 후보자 모집을 마감하고 이사회에 추천할 후보자를 공개하겠다고 공고했다. 김영길 총장도 10월 13일 학교를 도우려는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며, 명예총장을 맡으려 했던 바람을 내려놓겠다고 밝혀 논란을 진정시켰다.

학내 구성원들, "소통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

하지만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사회가 지금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차기 총장에 대한 학교 안 여론이 제대로 반영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이문원 회장은 한동대 차기 리더십과 학교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없는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수차례 이사장과 총장 면담에서 교수들의 의견을 전달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대화가 단절된 현 상태에서 이사회가 어떤 총장을 선출하더라도 학교 구성원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교 창립 멤버이자 생명과학부장인 이관희 교수도 공동체의 지도자를 모시는 일에 제대로 된 논의가 없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한동대가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김영길 총장을 대신할 차기 리더십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이사회와 학내 구성원 간 대화의 단절을 지적하며, 차기 총장의 가장 중요한 리더십으로 소통을 꼽았다. 사진은 한동대학교 도서관. ⓒ뉴스앤조이 한경민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도 대체로 대화의 단절을 지적하며, 소통의 리더십을 차기 총장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국제어문학부 이정기 씨는 "학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소통되지 않아 답답하다"며, 다음 총장은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길 바랐다. 기계제학공학부 황규현 씨도 "이사회와 김영길 총장이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좀 더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며, 한동대 학생과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차기 총장으로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혹 해명, "후보·선출 과정 공개하겠다"

한편, 이사회는 절차와 원칙을 강조하며 지금의 방식을 믿어 달라고 당부했다. 김범일 이사장은 인선위가 좋은 총장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후보 모집이 끝나면 후보자들의 이력과 선출 과정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학교 교수 두 명이 지원했다 탈락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김 이사장은 지원한 이들이 인선위에서 제시한 다섯 가지 기준에 미치지 못해 지난 9월 초 서류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당사자들이 공개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김 이사장은 지원한 교수들에 관해 학교 안에서 여러 가지 말이 돌 것을 우려해 비공개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길 총장도 자신에 관한 의혹을 언급했다. 김 총장은 한동대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면 처음부터 총장직을 내려놓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이사회가 총장직 연임을 요청했지만, 자신이 고사했다는 것이다. 이후 명예총장을 맡아 학교를 도와 달라는 김범일 이사장의 요청이 있었고, 자신의 퇴임 이후 한동대를 걱정하는 국내외 후원자와 학부모, 교수와 학생들을 위로하기 위해 명예총장을 맡아 차기 총장을 돕겠다고 한 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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