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서 실로암은 치유의 연못이다. 그러나 한 모 씨가 운영한 '실로암 연못의 집'은 위탁 장애인들에게 죽음의 연못이었다. 9월 14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칭송받던 한 모 씨의 이중생활이 공개됐다. 한 모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시설에 위탁 중인 지체장애인 명의의 카드를 도용, 안마시술소·단란주점·고급 음식점 등 유흥비로 사용했다. 또 위탁 장애인들에 대한 치료와 관리를 소홀히 해 사망에 이르게 하고, 수천만 원에 이르는 국가 보조금과 후원금도 착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총신대학교 출신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목사라는 이력도 거짓이었다.

▲ 한 모 씨가 운영하는 시설에 위탁하려는 장애인 가족과 대화하는 장면. 5000만 원을 주면 평생 책임지겠다고 설명하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한 모 씨는 가락시장을 전전하며 구걸해 생계를 유지하던 거지 출신 목사로 알려졌다. 자신도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면서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칭송받았다. 그가 거지 목사로 알려진 것은 거지라는 출신 성분 때문이 아니라, 유명 목사로 변신한 한 후에도 거지처럼 가난하게 살며 장애인들을 도왔기 때문이다.

10년 전, 강원도 홍천에 '실로암 연못의 집'을 운영하면서 한 모 씨의 이중생활도 시작됐다. 시설을 돕기 위해 많은 후원자가 후원금을 보내기도 하고, 자원봉사자로 일하기도 했다. 홍천군청에서는 약 3000만 원을 매달 지원했다. 그러나 한 모 씨는 밤이면 고급 승용차를 끌고 유흥가와 고급 음식점을 들락거렸고, 시설 후원금과 국가 보조금 등을 유흥비에 충당했다.

한 모 씨의 범죄가 드러난 것은 시설에 위탁된 한 장애인 명의의 카드 명세서가 발각되면서다. 지난 3월 사망한 서유석 씨는 '실로암 연못의 집'에 위탁된 1급 장애인이었다. 서 씨는 자신의 힘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지체장애인 이었지만, 그의 가족들은 카드사로부터 약 9000만 원의 카드 빚을 갚으라는 고소장을 받게 된다. 한 모 씨가 서 씨의 명의를 도용해 유령 법인 회사를 만들고, 한도가 높은 법인 카드를 만들어 자신의 유흥비로 사용한 것이다.

한 모 씨의 악행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서유석 씨를 제대로 치료하지 않고, 침실에 버려둬 온몸이 썩어 들어가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최초 한 모 씨의 범행을 제보한 '실로암 연못의 집' 자원봉사자 아무개 목사는 '한수진의 SBS전망대'에 출연해 제대로 된 치료 없이 내버려둬 사망한 장애인들이 3명이나 더 있다고 증언했다.

또 한 모 씨가 종교를 믿지 않을뿐더러, 신학 대학을 나왔다는 것 역시 거짓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모집을 위해 목사라는 직함을 이용한 것이라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들이 한 모 씨가 나왔다는 총신대학교와 예장합동에 학적과 소속을 조회한 결과,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다른 범죄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실로암 연못의 집'에 입소한 장애인들을 관리자들이 조직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또 한 모 씨가 여성 입소자들을 성추행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현재 한 모 씨는 횡령·배임·사문서 위조·폭력·성추행 혐의로 홍천 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다.

한 씨의 범죄에 후원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양의 탈을 쓰고 이리의 행동을 하는 목회자들만 가득하다. 야수처럼 생명을 잡아먹고, 배가 불러 교만하고 거만해서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있다"라고 쓴 한 모 씨의 과거 신문 칼럼을 본 네티즌들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며 한 모 씨를 비난했다. '실로암 연못의 집' 홈페이지에는 계속해서 한 모 씨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다, 현재는 접속이 마비된 상태다. 또 후원자들의 후원 해지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장애인 시설을 제대로 관리·감독해야 했을 홍천군청도 시민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한 모 씨가 10년간 국가 보조금 사용 내용을 제출하지 않았고, 여러 장애인이 방치돼 사망에 이르렀지만 이를 몰랐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홍천군청은 관리·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9월 15일 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공식 사과했다. 또한 후속 조치로 입소 장애인에 대해 개인 희망에 따라 다른 장애인 생활 시설로 보내거나, 가족에게 인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한 모 씨가 설교하는 장면. 그는 과거 설교에서 탐욕을 좇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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