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안 단비교회가 교회 20주년을 기념해 <단비교회 이야기>를 출간했다. 마을 주민과 함께 농사짓고, 예배당을 세운 지난 20년의 세월을 담아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제가 여기 온 지 20년, 다우리(큰 아들)를 낳은 지도 20년 됐어요. 지나고 보니 제가 20년 전에 만나고 싶었던 하나님이 여기 계셨어요. 그분들과 저는 20년 동안 같이 살았고…정말 남편 때문에 여기 산 것 같지 않아요. 할머니들 때문에 살았습니다." (이애경 사모)

남편 때문에 산 것 같지 않다는 말에 웃음이 터졌고, 할머니들 때문에 살았다는 울먹임이 가득한 말에는 위로의 박수가 쏟아졌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교인들도 눈에 띄었다.

봄바람이 솔솔 불던 5월 4일, <단비교회 이야기> 출판기념회 및 북 토크가 천안 단비교회(정훈영 목사) 예배당에서 열렸다. 교회 2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단비교회 이야기>(꽃자리)는 지금까지 단비교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담고 있다.

책의 저자는 정훈영 목사로 돼 있지만, 실제로는 여러 사람이 쓴 글을 엮은 모음집에 가깝다. 이애경 사모와 아들 다우리 씨, 교인과 동료 목사 등이 참여했다. 정 목사는 이중 절반에 가까운 글을 썼다. 책의 원제는 이애경 사모가 쓴 '바로 당신이셨군요'였다. 다만 글의 주제가 교회인 관계로 <단비교회 이야기>로 세상에 나오게 됐다. 책은 예배당을 허물어야 했던 아픔의 역사부터 10년 넘게 교회를 지어 온 사연, 교회가 마을에 동화된 배경 등을 내외부인의 시각을 동원해 보여 주고 있다.

출판기념회가 열린 이날 40평 남짓한 예배당은 서울과 지방에서 온 100여 명의 손님으로 가득 찼다. 북 토크는 한종호 대표(꽃자리)가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란 주제로 진행했다.

▲ 북 토크에서 이애경 사모는 특히 마을 할머니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애경 사모는 황토를 이용해 할머니들의 초상화(사진 가운데 그림)를 그려 전시하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책을 읽고 추억이 되살아나 많이 울었다는 최봉운 할머니. 할머니는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단비교회에서 20년 동안 같이 생활했습니다. 사모님과 목사님이 잘 위해 주고 본보기가 되어 주니, 나이 많은 저희도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비교회를 통해 신앙을 회복했다는 고백도 나왔다. 최은숙 씨는 학교에서 가르치던 학생을 통해 교회를 다니게 됐다. 목사 부부와 나이도 비슷해 금세 친해졌지만 교인이 되는 것에는 부담이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기독교를 아주 싫어했다가 단비교회 때문에 다시 신앙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은 예수님을 제 스승님이라고 생각하고 지내요. 올 때마다 할머니들이 반겨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친정에 온 것 같아요."

정 목사의 아들 다우리 씨가 "저는 이제 마음을 내려놨습니다"고 했을 때 청중은 박장대소했다. 한 대표의 "아버지가 또 집을 짓겠다고 한다"는 말에 대한 답변이었다. 다우리 씨는 책에 쓴 글에서 "아버지가 또 집을 지을까 봐 은근 겁이 난다"고 했다. 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을 했고, 그곳에서 마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과 동고동락한 단비교회

▲ 정 목사는 단비교회를 "흙을 닮은 어머니의 심정에 뿌리내려 꽃 핀 교회"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훈영 목사(당시 전도사)는 20년 전 농촌 목회를 하기 위해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용암 2리에 정착했다. 50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는 주로 노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연고가 없던 정 목사는 버려진 외양간을 수리해 예배당을 세웠다. 이름은 단비교회로 정했다. 꼭 필요할 때 알맞게 내리는 비를 뜻할 줄 알았는데, "농촌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단비교회'로 지었다"고 한다. 정 목사는 이곳에서 봉사 활동을 하러 온 이애경 사모를 만나 결혼했다.

정 목사의 목회 철학은 '현장 목회'다. 마을 주민의 현장인 농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정착 후 2년 동안 논농사와 밭농사 가리지 않고 일손을 거들었다. 이애경 사모는 "새벽녘에 나간 정 목사가 저녁이 다 돼서야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3년째 되던 해 마을 주민은 그런 정 목사에게 논과 밭을 내주었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었다. 마을 주민의 우려와 달리 그해 큰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후 마을에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하나둘 생겼다. 정 목사는 현재 마을 유기농 단체인 '작목반' 총무를 맡고 있다. 10가구가 참여하는 작목반에서는 쌀과 상추, 오이, 고추 등을 재배하고 있다.

더뎠지만 교인도 조금씩 늘었다. 첫해 교인은 마을 주민 2명이 전부였다. 그러나 '지성이 지극하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주민 하나둘씩 교회를 찾기 시작했다. 불교 신자였던 동원이 할머니는 교회에 나오라는 목사 부부의 권유에 천일기도가 끝나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뒤 할머니는 약속대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여울이 엄마'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교회를 다녔다. 핍박하던 시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겠다고 했을 때 여울이 엄마와 이애경 사모는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 단비교회에는 현재 30여 명이 출석하고 있다. 사진은 이날 행사에 참여한 교인들의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정 목사 부부에 대한 교인의 사랑도 깊었다. 올해 83세인 전병순 할머니는 교회에 다닌 지 16년이 넘었다. 전 할머니는 "조선 팔도에 정 목사 부부만큼 목회 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농번기에는 이집 저집 돌며 도와주고, 추수하면 독거노인에게 쌀과 장을 나눠줘요." 또 다른 할머니는 3년 전 건넛마을에 있던 교회에서 단비교회로 옮겼다. "목사가 손도 안 잡아 주고, 이야기할 때 눈도 마주치지 않아서 서운했어요." 단비교회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현재 단비교회에는 매주 30여 명의 주민이 출석하고 있다.

무너짐과 세움…10년의 기다림

▲ 출판기념회에는 단비교회를 통해 맺어진 인연 100여 명이 교회를 찾았다. 예배당을 지을 때 큰 도움을 줬던 사랑의교회 청년들은 엄마 아빠가 돼 교회를 찾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야트막한 산자락을 배경으로 한 단비교회는 'ㄱ'자 모양의 2층 한옥이다. 기와에 알록달록한 색깔을 덧칠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정 목사는 80세가 넘는 할아버지를 스승으로 삼고, 2000년부터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1년 10월 3일, 마침내 입당 예배를 드렸다. 1층 예배당과 식당 공사는 마무리됐지만, 1층 도서관과 2층 다락방 공사는 올해 5월 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예배당 벽면에는 단비교회와 함께 호흡했던 마을 주민의 사진과 황토로 그린 할머니 초상화 세 점이 전시돼 있었다. 이 가운데에는 육신이 쇠약해져 요양원에 가 있거나 소천하신 분도 더러 있었다. 이애경 사모는 "그분들을 잊지 않기 위해 전시해 둔 것"이라고 했다.

▲ <단비교회 이야기> / 정훈영 지음 / 꽃자리 펴냄 / 236면 / 1만 4000 원

지금의 교회로 서기까지 곡절도 많았다. 토지와 건물 소유권 문제로 8년 넘게 사용해 온 예배당과 사택을 무너뜨린 적도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임시 예배당을 세우고, 컨테이너에서 살았던 광야 시절도 있었다. 다행히 교회 내외부적으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며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마을 주민은 수년간 함께해 온 교회가 떠날 것을 걱정하며 10만 원~100만 원 상당의 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교회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직접 돕기 위해 찾는 이들도 있었다. 사랑의교회 청년부는 지난 20년 동안 한 달에 두 번씩 교회를 방문해 건축과 농사일을 돕고 있다. 단비교회는 도움의 손길을 잊지 않고 매년 감사의 뜻을 전한다. 마을 할머니들과 직접 만든 청국장, 들기름, 고추장, 된장 등을 감사 편지와 함께 후원자들에게 보내고 있다.

'공동체 복원'이 꿈인 정 목사는 마을 섬김과 교회 건축 사업을 병행할 계획이다. 황토방으로 된 친환경 쉼터를 지어 개인과 가족이 이용할 수 있도록 게스트 하우스를 지을 예정이며 기공식도 진행했다. 귀농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귀농 학교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동체 학교도 준비 중이다.

예배당을 짓는 기간만 해도 10년이 넘었으니 게스트 하우스도 오랜 시간이 들지 않을까. 정 목사는 예배당과 게스트 하우스는 구원을 짓는 것이라면서 시간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건축 기간이 10년이든, 20년이든 그만큼 (사람 간) 서로 엮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출판기념회에 앞서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창립 33주년과 디아코니아 가족 공동체 10주년을 기념하는 예배가 열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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