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1월. 나뭇가지 끝에 남은 나뭇잎 같은 달이다. 벼베기가 시작되어 들판이
점점 비어 간다. 가을걷이와 함께 빈 들판에 마음 비우며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는
그이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얼마 전 제 아내가 아주 기막힌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동네 어른 가운데 한 분이 아들에게 꾸중을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그래요. '너 그렇게 공부 안하려면 목사님 따라서 농사나 지어라!'"

농촌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어른의 말은 한편으로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정훈영 목사(39세, 단비교회)가 천안 근교의 척박한 농촌에 10년에 걸친 지난 시간은 무너져 가는 농촌의 현실과 그로 인해 소외된 이웃들 속에서 농촌 선교의 새 방향을 모색해온 기간이었다.

낯선 상황에 뛰어들어 교인도 없고 예배당도 없는 상태에서 동네분들과 사귀어 보고자 그이는 논밭에서 함께 땀흘리며 마을분들의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와서 무너져가는 축사를 개조하여 살집을 마련해놓고는 동내 주민들의 논과 밭으로 쫓아다녔습니다. 바쁜 일손을 거들고 젊은 사람이 필요한 일들을 나서서 열심히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2년을 머슴처럼 살았다. 그이의 사람됨과 신실함 탓이었을까 3년째 되는 해, 마을 어른들은 그이에게 논과 밭을 내주었다.

"그분들과 함께 살려하고 같은 모습으로 살려하니까 저희 부부를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몇 년 후에 떠날 사람이 아니라 당신들과 같이 살 사람으로 생각해서 마음을 열어주셨고 저희를 받아주셨습니다."

소리없이 삶으로 보여준 그이의 모습을 통해 자연스레 예수님을 전할 수 있었고 순수하게 교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첫발의 내딛음은 50호정도의 작은 농촌 마을에 축사 한켠을 개조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교회는 이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중심축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육신의 고단함도 고단함이려니와 제 나름의 내적 갈등과 위기도 있었죠. 늘 힘겨운 생활을 해 나가는 농촌은 정말 어려운 상황입니다. 남은 사람은 나이 드신 분들뿐이고 농민이 농사 지키겠다는 의지를 버린 시대에 농민들의 가까운 이웃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참된 모습과 역할을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농촌이라고 하는 현장에서 이러한 고민을 떠안고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워 하나하나 실천해 나갔다. 우선 농촌 선교의 방향으로 생명 농업의 길을 선택했다. 화학비료 하나 안 쓰고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로만 농사를 짓는 유기농법을 택한 것이다.

"기왕에 농사를 지으려면 땅과 인간을 이롭게 하고 저의 신앙적 가치관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구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유기농입니다."

거의 10년 전 그 당시로서는 참 겁 없는 행동이었다.

"논에 농약도 뿌리지 않고 비료도 주지 않으니까 동네분들이 저보다 더 걱정을 하셨어요. 지금이라도 얼른 비료 주라고 그러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되든 안되든 일단 한 번 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자연히 마을 사람들의 관심 속에 한 해를 보냈다.

"참 감사하게도 첫 해에 농사가 아주 잘 되었어요. 수고가 들어간 만큼 값도 더 받았죠. 그 때 제가 마을 분들을 설득했어요. 이 농사 같이 하자구요. 그리고 그렇게 지은 농산물은 책임을 지고 더 좋은 값으로 판매해 드리겠다고 약속 했습니다."

▲현재 비닐하우스로 만든 예배당은 이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중심축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이듬해부터 처음 다섯 농가 팔천 평정도가 같이 유기농을 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좋은 결실을 얻고 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가을 걷이가 끝나면 그이는 '쌀장사 아저씨'로 지내고 있다.

그이가 이렇듯 농사를 짓기로 결정한 이유는 현장을 끌어 안는 '현장목회'에 있다. 교인들은 다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이들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또하나는 '장기목회'이다.

"농촌에서는 속도가 더딥니다. 일 년에 한 두 분씩 교인이 늘어나니까요. 그리고 마을 어르신들이 저희를 친절히 대해주시지만 그러면서도 교회는 안 나오시더라구요. 그런 과정이 단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심의남(72세), 이호순(71세), 최봉운(73세) 할머님들이 '새벽기도 삼총사'로 불려지고 있지요."

나아가 그이는 농민들의 마음이 전해주는 감동을 결코 잊지 않는다.

"교회가 정말 어떤 마음에 토대를 둬야 참 교회가 되겠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거기에 가장 가까운 것이 농민들의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농민들이 땅을 만지면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마음, 그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려고 합니다."

지금도 그이는 농민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

"농민들과의 삶은 수시로 행복감과 안스러움으로 찾아옵니다. 그분들과 사는 생활이 좋아서 이미 생의 욕심도 사라진 듯 합니다. 걱정이라면 70이 넘은 그분들의 건강이 날로 쇠약해져 간다는 것입니다. 얼마 안있으면 이 고마운 분들이 농사일에서 손을 놓으셔야 할 처지입니다. 그분들이 없는 빈 자리를 누가 채워줄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비록 노인들이 전부라고 할만큼 피폐화된 농촌마을이지만, 과거 농촌 공동체의 아름다움이 노인들의 가슴과 삶의 터전에 자리잡고 있어 마음이 따듯해진다.

"저희는 봄마다 공동 못자리를 만듭니다. 그 때 마을분들이 모두 나오시죠. 평균 연령을 계산해 보니 놀랍게도 68세가 나오더라구요. 콩과 깨를 심고 보리도 베는 데, 저희가 무슨 일을 하는 날은 말 그대로 총동원주일입니다. 마을 분들이 다 오세요. 당신들 일, 다 제쳐놓고 저희들 일부터 해주시죠. 정말이지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이죠. 그날 저희는 기르던 닭도 잡고 밀농사 지은 것으로 수제비도 해 드리죠. 요즘은 밀농사를 안하니까 저희 집에서 하는 수제비가 특미거든요."

그이는 농기계를 가지고 노인들이 봄.가을로 밭을 갈거나 두둑을 내서 비닐 씌우는 일들을 하실 때 그런 일을 도맡아서 해드린다. 이렇게 마을 분들이 한 가족처럼 품앗이 개념이랄 것도 없이 한 마음이 되어 일을 한다.

그러면서 그이는 오늘날을 '파국적인 풍요함의 시대'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기이한 풍요함 곧 물량주의는 농촌의 황폐화, 더 나아가서 자연의 황폐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오늘날의 풍요한 물량과 낭비 풍조가 놀랍기보다는 무섭다고 토로한다. 그이의 진단은 곧바로 교회로 이어진다.

"목회를 기능적으로 이해해서 개발하려는 몸부림들이 엄청난 것 같아요. 목회는 진정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관심을 보이고 감싸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규모가 적을수록 성심껏 더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도, 우선 무조건 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목회의 목적이 성취욕에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입니다. 오히려 주는 것, 포기하는 것이 되어야죠."

지금의 단비교회가 있기까지는 참으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지난해 자립해가기도 버거운 교회가 땅을 구입하기까지 작년 한해 교회 터 구입과 집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터 구입 때문에 진 부채가 남아있고 집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어려움에서는 한숨 돌린 셈이다.

단비교회는 교회 개척 후 8년 동안 빈 축사를 고쳐 예배당과 주택으로 사용하여 왔고 땅도 역시 임대를 받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땅 주인이 급한 사정으로 교회가 있는 곳의 땅을 매각하겠다고 통고해 온 것이다. 월 15만원의 급여를 주는 교회가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정훈영 목사는 지금도 월 15만원을 받고 있다). 교우들과 다녀가시는 분들이 십시일반 모은 적은 액수가 전재산이었다. 기존의 재산이 전혀 없으니 담보 잡혀 대출 받을 형편도 되지 못했다. 교인들의 힘으로는 토지를 구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이들의 힘으로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지만 '끝에서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은 너무도 놀라웠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 주변의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 기적 같이 땅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단비교회의 여건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한편으로 땅을 사는 과정 속에 마음 아픈 일도 없지 않았다. 젊은층이거나 조금 가졌다는 사람들이 교회의 땅 문제로 속을 썪인 것이다. "교회터를 투기 목적으로 욕심내어 중간에서 가로채려 하고, 그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기회만 노리고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순수성과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교묘하게 우리를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현대적인 스타일의 사람들이고 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의 많은 수가 안타깝게도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진심으로 교회를 걱정해주고 물질과 마음을 다하여 도와주었다. 마을의 칠순을 넘긴 노인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크게는 백만원에서 작게는 당신의 주머니를 다 털어 몇십만원에 이르기까지 내어놓으시며 토지구입에 동참했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단비교회가 자리잡고 있는 천안근교의 용암2리는 할머니들이 주를 이루고 한 동네에서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아직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교회를 걱정해주시는 팔순을 넘기신 할아버지가 세 분 계신다. 애를 태우던 땅 문제가 일단락 지어지며 작년 2월 땅을 계약하게 되었을 때다. 땅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계약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최고령이신 할아버지 한분이 속회예배 보러 가는 사모를 마루에 앉아 부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저를 앉으라고 하시더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십만원을 건네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생전에 이렇게 기분 좋긴 첨이유, 교회가 그 땅을 사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겄슈, 이제 교회가 이 동네에서 아주 살게 됐으니 말유. 이렇게 떠나면 어디가서 십년은 고생해야 자리잡을거 아뉴. 우리 막내 아들 장가들인 것만큼이나 좋아유. 이 돈 목사한티 줘유. 땅사는데 보태진 못해두 오매가매 기름값이라두 하라구유. 그리구 이건 비밀이에유. 우리 할매한테 절대 얘기하지 말아유'(그런데 이 집 할머니는 교회에 열심히 나오시는 분이시다)."

할아버지 마음은 잘 알았으니 받은걸로 하고 그만 두시라고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로 내어 놓으신 십만원을 받아들고 사모는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그리곤 굳게 다짐했다고 한다.

"어느 누구의 천만원보다도 값진 이 돈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잘 살아야지."

다른 교회는 교인들이 헌금해서 땅도 사고 예배당도 짓는다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한다고 늘 안타까워하시는 할머니들은 노력봉사로 그 일을 대신하고 싶어하신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들은 교회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나서신다.

"터 구입문제로 힘들었던 작년 한해는 봄부터 가을까지 할머니들의 도움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농사일이 손에 잡히겠냐고 하면서 수시로 동네 일손들을 다 모아 밭일들을 도와주셨어요."

콩심는 일부터 밭 매는 일, 거기에 콩타작, 타작이 끝난 콩으로 메주를 만드는 일까지 당신네 농사도 벅찬 칠순을 넘긴 노인들임에도 젊은 사람 두 몫을 더하신다.

작년에는 그렇게 만든 메주로 장을 담아 교회 부지를 위해 헌금을 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추장과 된장을 담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자칫 교회가 도움 받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쉬운 풍토 속에서 작은 정성으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뜻에 할머니들은 기꺼이 동참해 주셨고 할머니들의 노력은 그 어떠한 금액의 헌금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장을 팔아 돈을 만드는 일보다 노인들과 더불어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다.

이번 겨울에도 할머니들과 메주를 쑬 것이다. 그리고 청국장을 띄우고 들기름, 참기름을 빈 병에 담아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함께 보내 드릴 것이다. 받은 것에 감사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마음들이 모아져 지금의 단비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논 2000평, 밭 2,000평을 일구고 있는 그이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현재 임시방편으로 지어진 비닐하우스 예배당을 예배도 드리고 공동의 수련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는 일이다. "저희 교회는 청년들이 많이 옵니다. 농활뿐만 아니라, 수련회나 기도회로 찾곤하죠. 한 번은 학생들에게 기왕 농촌에 왔으니 신발을 벗고 같이 놀자고 하고 길도 걷고 논밭에고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젊은 학생들이 흙을 밟는 것을 아주 소름끼쳐 하더라구요. 그날 처음 흙을 밟아본 학생들도 있었죠. 참 걱정스럽습니다."

그이의 귀에는 청년들에게서 어떤 신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그것은 목마름의 문턱에서 허덕이는 갈급한 영혼들의 목소리가 아닐까.

▲정훈영 목사와 가족들 ⓒ뉴스앤조이 김승범
"저희 교회를 찾아와 농촌을 둘러보고 흙과 더불어 짧은 시간을 보내고 가면서 참으로 유익한 것을 많이 얻어간다고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농촌의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희망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문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이제는 원래의 것, 자연스러운 것들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이는 여러 도움의 손길을 통해서 얻게 된 교회의 터를 의미있게 사용하고 싶어 한다.

"농촌에서 지속적으로 선교 사역을 하고 좋은 먹거리를 땀흘려서 영혼이 깃든 농산물들을 나누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저희가 해왔던 일들을 지속하면서,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쉼의 장소로, 일하면서 기도와 수련을 겸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어느덧 11월. 나뭇가지 끝에 남은 나뭇잎 같은 달이다. 벼베기가 시작되어 들판이 점점 비어 간다. 가을걷이와 함께 빈 들판에 마음 비우며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그리는 그이의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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