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주최로 열린 '교회 세습, 신학으로 조명하다'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정리해서 올립니다. 첫 번째 발제문은 전성민 교수의 '교회 세습에 대한 구약의 고찰'입니다. 이 중 교회 세습의 원인 부분을 발췌해서 등록합니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한국 사회의 혈연주의1)이고, 두 번째는 한국교회의 권위적 지배 구조이다.2) 이러한 원인 분석 자체를 논증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면서 구약은 세습의 원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아볼 것이다.

1) 혈연주의에 대한 구약의 통찰

세습이 혈연주의 때문이라는 설명은 여러 통로를 통해 지적되어 왔다. 기윤실은 '세습에 대한 입장'에서 기독교는 혈연이 아니라 언약의 종교임을 천명했다. 이정석 교수도 "아들이 아버지의 가장 적절한 후계자라는 사고는 의심의 여지없이 혈연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그것은 다수의 후보자 가운데서 객관적인 판단을 통해 선택하려는 생각을 아예 가로막는 혈연적 편애이다"라고 지적했다.3) 이러한 지적은 적절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야 혈연주의를 극복한 듯 아래처럼 서술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약시대에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세습되었으며, 다윗의 왕직도 세습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혈족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죄되었고, 진정한 이스라엘은 육적 후손이 아니라 영적 후손임을 바울이 분명히 하였다. 예수님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으나, 영적 측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혈족의 의미를 무시하였다.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48~50)."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도 혈족주의적 사고를 버리도록 명령하였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마 10:37)." 따라서, 교회는 철저히 혈족주의를 부정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신 영적 가족의식을 중심으로 형성 발전되었다.4)

여기서 언급된 대로 아론의 제사장직과 다윗의 왕직이 세습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사실의 서술일 뿐, 성경이 바람직하게 제시하는 리더십과 관련해 규범적이지 않을 수 있다. 구약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은 그것이 기록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벌어졌던 일들이 규범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 가운데 벌어졌던 일들은 구약 전체(그리고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궁극적으로 성경 전체)의 지향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사라를 자신의 아내라고 속인 사건이나 야곱의 속임수들이 우리에게 규범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행했음을 성경이 알려 주고 있을 뿐이다.5) 요컨대 구약성경 또한 혈연주의를 따르지 않는다(어떤 의미에서 왕직의 세습이 규범적인 리더십 이양이 아닌지는 후에 좀 더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구약이 혈연주의를 따르지 않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극명한 예들은 가장 혈연을 중시하는 듯한 여호수아서에서조차 찾아볼 수 있다. 여호수아서는 가장 혈연적인 혹은 민족적인 책으로 흔히 오해된다. 단지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가나안 사람들이 멸절을 당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혈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신앙, 혹은 언약을 통해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여러 사건들을 통해 분명히 보여 준다.

먼저 여호수아의 초입에서부터 우리는 혈통적으로는 가나안 사람인 라합이 헤세드에 토대한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목도한다. 두 번째로, 여리고성에서의 승리 이후, 아간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거의 멸망 직전에 이른다. 이때 이스라엘이 아이성에서 패한 이유를 여호와께서 설명하시는 본문이 7장 11~12절이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본문에서 "온전히 바친 물건" 또는 "온전히 바친 것"이라는 표현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히브리어 '헤렘'의 번역으로 가나안 사람의 '진멸'을 말할 때 사용되는 것과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7장 1절에도 등장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헤렘)으로 말미암아 범죄 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헤렘)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이런 관찰들을 토대로 상황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언약을 배신한 이스라엘은 그들이 '헤렘'시켜야 했던 가나안과 마찬가지로 '헤렘'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은 그들이 혈통적으로는 여전히 이스라엘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가나안과 다를 것이 전혀 없어졌던 것이다.6) 이러한 사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켰던 언약 때문이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라합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여호수아의 기록은 아간의 범죄를 거쳐 기브온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기브온 주민들과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게 된 과정이 완전히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기브온 주민들은 비록 나무 패고 물 긷는 종의 신분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이 기브온 주민들의 이야기에서도 혈연이 아니라 언약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기준임을 알 수 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호수아는 언약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수 23:16)." 여기서도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살아갈 수 있던 근거는 그들이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해 주셨던 아브라함의 혈연적 후예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언약을 지키기 때문임을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했던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결국 열왕기하에 이르러 끝나게 된다. 그들은 혈연적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호수아 시절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었던 이방 민족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구약시대에도 혈연이 아니라 언약이 하나님 백성 공동체의 본질적인 요소임을 보여 준다.

2) 권위적 지배 구조에 대한 구약의 통찰

이승종 교수는 세습이 수용되는 원인으로 "교회의 권위적 지배 구조"를 지적한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권위적 지배 구조가 교회의 위계적 계층제를 활용한 "가시적 권력", 반대 의사의 표출을 효과적으로 제압하는 "비가시적 권력", 설교와 교육을 통하여 세습의 정당성에 대한 부당한 믿음을 도출하는 "잠재적 권력" 등을 통해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강화된다고 설명한다.7) 그리고 그는 이러한 권위적 지배구조 하에서 작용하는 권력은 그 유형을 막론하고 "착취적 권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게 된다고 지적한다.8) 그리고 그것은 "목사는 평신도 위에 일방적으로 군림하고, 평신도는 마치 전제군주의 신하와 같이 저항 없이 묵종"하게 만들고 그 결과 "세습이 유효한 저항 없이 저질러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9)

이러한 설명에서 목사와 소위 '평신도' 간의 권력 관계를 전제군주와 신하로 비유한 것은 흥미롭다. 사실 김동호 목사 또한 세습의 근본 원인으로 "비민주적인 교회 운영"을 지적하며, 담임목사가 왕과 같은 힘을 가진 교회는 담임목사 세습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경우 세습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고 설명한다.10) 이러한 설명들이 적절하다면 한국교회의 세습에 관한 논의를 위해 이스라엘의 왕정을 살피는 것은 의미 있는 통찰을 줄 것이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고백과 예수님이 다윗 왕의 자손이라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구약의 왕정에 대해 은연중에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왕정에 대한 구약의 평가, 특히 소위 신명기 역사의 평가는 냉정하다.11) 왕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평가 뿐 아니라 왕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왕위의 혈연 계승에 대해서도 성경의 평가는 명확히 부정적이다. 이 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왕정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는 것은 사사기 8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 8:22)"라고 청할 때이다. 여기에 왕이라는 단어가 명시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지만 세습되는 통치에 대한 언급은 왕정을 암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요컨대 왕이 되어 달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요청에 기드온은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여호와가 그들을 다스릴 것이라고 '정답'을 말한다(23절). 그러나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그들이 미디안에게 탈취한 귀고리를 달라고 요청한다.12) 이 요청을 받고 백성들이 '즐거이' 드린 금귀고리가 1700이었다. 이것을 세겔의 양으로 생각하고13) 한 세겔을 12그램 정도로 계산하면 약 20킬로그램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초승달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을 기드온이 가지게 된다.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이 언급되는 것을 통해 우리는 기드온이 말로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실질적으로 왕의 권세를 누렸음을 알 수 있다.

기드온의 왕적인 권세는 그의 아내가 많았다는 사실과 그들을 통해 얻은 아들이 70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명확히 감지할 수 있다. 70이라는 아들의 수는 후에 아합의 아들들의 수와 동일하다(왕하 10:1).14) 더욱이 아내들을 통한 아들 외에도 첩에서 얻은 아들도 있었는데 그의 이름의 뜻은 "내 아버지는 왕(아비멜렉)"이었다.

기드온은 자신 실제적으로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으나, 그는 말이라도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아비멜렉은 세겜에서 실제로 왕이 된다. 아비멜렉이 왕이 되기 위해 세겜 사람들을 설득했던 논리는 매우 혈족주의적이다. 아비멜렉은 먼저 세겜에 있는 자신의 외가 식구들에게 어차피 누군가가 그들을 다스려야 한다면 자신이 그들의 '골육'15)임을 기억하라고 요청하고, 아비멜렉의 외가 식구들은 그 말을 세겜 사람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 말에 세겜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고 아비멜렉이 "우리의 형제"가 된다고 말하며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지원한다.

그러나 이렇게 혈연에 바탕을 두고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며 왕정 자체가 가치 없는 것이라는 것이 이어지는 요담의 우화의 핵심 주장이다. 결국 요담의 말대로 결국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손에 멸망당하고, 아비멜렉도 그 사건과 연관되어 죽게 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가운데 세워졌던 첫 왕의 운명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왕이 왕적 권세를 누렸던 기드온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이며, 사실상 기드온 또한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후광 속에 성장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요아스-기드온-아비멜렉으로 이어졌던 한 집안의 권세는 비극적 파멸로 끝나고 말았다.

사사기에는 여섯 명의 대사사 외에도 여섯 명의 소사사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 첫 소사사인 삼갈을 제외하고 나머지 다섯 사사는 기드온과 아비멜렉 이야기 다음과(돌라, 10:1~2; 야일, 10:3~5), 입다 이야기 다음에 나온다(입산, 12:8~10; 엘론, 12:11~12; 압돈, 12:13~15). 이 소사사들에 대한 기록이 자녀들을 언급하는 것은 흥미롭다. 야일의 경우, 아들 30명, 입산은 아들 30명과 딸 30명, 그리고 압돈은 40명의 아들과 30명의 손자가 있었다. 후손들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기드온의 70 아들과 아비멜렉의 사건과 더불어 왕정을 연상시키는 기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왕정을 연상시키는 소사사들에 대한 기록은 사사기 전체 맥락 속에서 부정적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16)

사사기의 전체 구조에서 기드온 이야기는 전환점을 이룬다. 대사사의 경우 기드온보다 앞에 나오는 옷니엘, 에훗, 드보라의 경우 긍정적인 측면이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기드온-아비멜렉 이야기 글 전환점으로 그후에 나오는 입다와 삼손은 사사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여 준다. 이러한 사사기 전체 구조 속에서 기드온-아비멜렉 유사 왕조의 실패 이후에 나오는 소사사들의 자녀에 대한 언급은 그러한 자녀를 많이 둔, 그래서 혈연적인 특권이 작동하는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모범 사사로 제시되는 옷니엘의 경우, 그의 자녀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통해서 더욱 지지된다.17)

사무엘상 8장에서 사무엘은 늙어 그의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를 사사로 세운다. 그러나 그렇게 계승된 사사들은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산다(삼상8:3). 그리고 그들의 잘못은 이스라엘 장로들을 중심으로 사무엘에게 왕을 요구하는 계기가 된다. 요컨대 사무엘의 사사 세습은 잘못된 것으로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지도력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왕위 세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먼저 이스라엘의 첫 왕이라고 여겨지는 사울의 경우, 그의 아들 요나단이 왕위를 이어 받지 않고, 새로운 인물인 다윗이 그 다음의 왕이 되었다. 그것을 사울의 잘못 때문이기도 했으나(삼상15:26~28) 이스라엘의 첫 왕이 그의 왕권을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윗이 왕이 된 후 그에게 주어진 나단의 신탁은 사울과는 달리 다윗 왕조 안에서의 왕위 계승을 긍정한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삼하7:11~16)

이 나단의 신탁은 다윗 왕조와 그 안에서 벌어질 왕위 세습을 긍정하며 신학적으로 지지한다.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여호와께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그 세습한 왕이 범죄한다 하더라도 잠시 징계는 있겠지만 사울과는 달리 은총을 빼앗지 않고 그 왕가와 나라가 "여호와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그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보다 더 왕위 세습을 긍정하는 본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과 관련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역사상의 이스라엘 왕국은 망했다!) 그렇게 이 약속을 '실패'하게 만든 것은 권력을 세습하며 누렸던 왕들의 잘못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역사적 층위에서는 깨질 정도로 다윗 왕조는 잘못되어 버렸던 것이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경우, 결국 배교로 끝나, 왕국이 둘로 쪼개져야 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평가받으나, 그는 신명기 17장에 나오는 왕에 대한 경고를 모두 범하고 말았으며, 그의 아들 르호보함의 통치 아래 유다는 후에 북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되는 우상숭배에 빠져 들었다(왕상 14:22~24; 왕하17:0~12 비교).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 중에서 여호와의 가장 확실히 의지 혹은 신뢰(trust)했던 왕으로 소개되고 종교개혁을 단행한다. 그러나 그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그의 아들 므낫세는 반종교개혁을 일으키고(왕하 21:3 참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몰아내었던 가나안 원주민들 보다 더 큰 악을 행하게 한다(왕하 21:9). 그 결과 여호와는 유다의 멸망을 선언하신다(왕하 21:12~15; 왕하23:26). 그렇게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었던 약속이 역사적 층위에서는 깨지고 만다.

요시아는 유다의 왕들 중에서 가장 율법을 잘 순종했고 그에 따라 가장 온전히 돌이켰던 왕으로 소개된다(왕하 23:25).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왕위를 세습한 그의 자손들은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왕들이었다(여호아하스, 23:32; 엘리아김=여호야김, 23:37; 여호야긴, 24:9; 맛다니야=시드기야, 24:19). 그리고 결국 이 네 명의 왕을 끝으로 유다는 멸망하게 된다.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야는 모두 어떤 측면에서 유다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왕들이었으나,18) 그들에게서 왕권을 세습한 그들의 아들들은 모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던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경우, 열왕기서에서 예후, 엘라, 살룸을 제외한 모든 왕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평가된다.19) 엘라와 살룸은 어떤 평가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예후만 오직 유일하게 "여호와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했다"고 평가받는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왕조로서는 상대적으로 긴 그런데 그러한 "의로운 예"”로부터 시작된 예후 왕조의 경우에도 그의 후계자들은 모두 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여호아하스, 왕하13:2; 요아스, 왕하13:11; 여로보암 2세, 왕하14:24; 스가랴, 왕하15:9).

David Lamb은 이 네 명의 예후의 후예들은 고대 근동의 기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 여지들이 있던 왕들이었으나(긴 통치 기간(스가랴 예외)과20) 군사적인 성공21)) 신명기 역사 편집자의 왕위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었다고 논한다.22) 그리고 이러한 왕위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의로운 지도자 혹은 왕이었던 사무엘,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의 후계자들을 악하게 서술한 패턴과 맥을 같이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평가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23)

의로운 왕조 설립자가 악한 후계자로 계승되는 신명기 역사 편집자의 패턴은 예후 왕조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 역사 편집자는 이 패턴을 다윗 왕조와 왕정 이전의 기드온, 엘리, 사무엘 왕조들에 관해서도 반복한다. 따라서 신명기 역사 편집자는 왕위 세습을 결함이 있는 제도로 본다. 왜냐하면 왕조 세습을 통해 선택된 지도자들은 전형적으로 악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역사 편집자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을 왕위를 세습한 지도자들보다 선호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맨 처음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들의 통치 기간 동안 인도와 지지를 얻기 위해서도 여호와께 더 의존적이기 때문이다.24)

요컨대, 혈연을 통한 왕위 세습을 핵심으로 하는 왕정이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권위적 지배 구조라면, 구약은 그러한 왕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왕은 하나님의 통치를 대리하고 대표해야 하는 근본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하나님의 자리를 스스로가 차지해 버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며 왕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장로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 지적하신 것이다. "그들이 …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러한 지적 이후에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왕의 권력이 어떻게 "착취적 권력"인지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신다(삼상 8:10~18). 한마디로 왕은 애굽에서 해방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종으로 만들만큼 착취적인 권력인 것이다(삼상 8:17~18).

혈연에 토대해 권력이 세습되는 왕정에 대해서 성경이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바람직한 지도력 승계로 볼 수 있는 예들은 거의 모두 혈연에 기초하지 않고 있다. 모세를 승계한 여호수아, 엘리를 승계한 사무엘, 엘리야를 승계한 엘리사, 이런 승계들은 모두 혈연적 승계가 아니었다.25)

왕정에 대한 논의는 교회의 권위적 지배 구조에 대한 언급에서 시작되었다. 교회의 권위적 지배 구조가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이유라는 이승종 교수의 지적, 비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며 "담임목사가 왕과 같은 힘을 가진 교회"의 경우 세습을 피할 수 없다는 김동호 목사의 지적, 그리고 세습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왕정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한국교회에서 교회 세습 혹은 담임목사직 세습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담임목사의 권력이 교회라는 조직/공동체 안에서는 왕과 같은 절대 권력이 되었다는 반증이며, 그런 권력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의존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며, 그런 권력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평가를 한다는 것이다.26)

전성민 /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각주)
1) 이정석, "목회세습이 바람직한가?" 2000년 9월 5일(화)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복음과상황> 주최로 열린 공동포럼 "대형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와 대응 방안"에서 발표된 문건. http://seban.kr/13. 오덕호, 앞의 글 참고.
2) 이승종, "평신도가 바로 서야 교회가 산다 :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에 즈음하여", 2000년 9월 5일(화)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복음과상황> 주최로 열린 공동포럼 "대형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와 대응 방안"에서 발표된 문건. http://seban.kr/15.
3) 이정석, 앞의 글. 그는 또한 "아들이 가장 후계의 적임자라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혈족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지적한다.
4) 이정석, 앞의 글.
5) 이 진술이 성경이 우리의 규범이 된다는 고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6) L. Daniel Hawk, Joshua (Berit Olam; Collegeville : The Liturgical Press, 2000), 117.
7) 이승종, 앞의 글.
8) 이승종, 앞의 글.
9) 이승종, 앞의 글.
10) 김동호,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와 우리의 대안", 2000년 9월 5일(화)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복음과상황> 주최로 열린 공동포럼 "대형교회 담임목사직 세습 문제와 대응 방안"에서 발표된 문건. http://seban.kr/16.
11) 물론 친왕조적인 본문들과 반왕조적인 본문들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지만, 반왕조적인 입장이 더 뚜렷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12) 기드온은 "귀고리"라고만 말하지만 나레이터는 그것이 "금귀고리"였음을 밝힌다.
13) 개역 성경에는 천칠백 세겔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 본문은 그냥 천칠백이라고만 되어 있다
14) Tammi J. Schneider, Judges (Berit Olam;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99), 128.
15) 창 2:23; 창 29:14; 삼하5:1; 삼하 19:12; 삼하 19:13; 대상 11:1 비교.
16) Schneider, 153~158, 187~191 참고.
17)
 Schneider, 43. 대상4:13에 의하면 옷니엘에게는 하닷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18)
G. N. Knoppers, "'There Was None Like Him' : Incomparability in the Books of King", CBQ 54 (1992): 411~431.
19)여로보암(왕상 14:9)의 경우에는 "여호와 앞에서"라는 표현이 없다. 그 외에는 모두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다"고 평가된다. 이 주제에 관한 더 자세한 논의는 David T. Lamb, Righteous Jehu and His Evil Heirs: The Deuteronomist’s Negative Perspectives on Dynastic Succession (Oxford Theological Monograph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7)를 보라. 북이스라엘 왕들에 대한 평가를 종합해 놓은 표는 위의 책 20쪽에 있다.
20) Lamb, 164~177.
21) Lamb, 177~204.
22) Lamb, 204~255.
23) Lamb, 162.
24)
 Lamb, 259. "Dtr’s anti-dynastic pattern of a righteous founder being succeeded by evil heirs is not only seen in the dynasty of Jehu, but Dtr repeats this pattern in David’s dynasty and in the pre-monarchical dynasties of Gideon, Eli, and Samuel. Thus, Dtr views dynastic succession as a flawed institution because dynastically chosen leaders are typically evil. He prefer charismatic leaders to dynastic ones since they are more dependent upon YHWH, not only for initial legitimation, but also for guidance and support during their reign."

25) 다윗 왕가와 제사장의 혈연 세습을 통해 교회 세습을 정당화 하려는 시도가 어려움을 겪자 최근에는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홍재철, "후임 담임목사 청빙(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홍재철 목사의 이름으로 2012년 7월 19일 발표된 문건)"
26) 물론 담임목사가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의 자녀가 담임목사직을 승계하게 되는 경우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재 한국의 중대형 교회에서 벌어지는 '승계'들은 거의 모두 권위적 지배 구조와 담임목사의 '왕과 같은 힘' 아래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