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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고고학
구약성서를 읽기에 앞서(1)
  • 박태순 (ipccomae@empal.com)
  • 승인 2012.10.23 16:16

이 글은 성서와 고고학에 관련한 글이며, 지금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서 1년 넘게 에르고니아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하는 글입니다.

이 글에서는 구약성서를 네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초기 이스라엘(족장 시대) / 기원전 13세기~11세기

왕정 시대 이스라엘(왕조 시대) / 기원전 11세기~기원전 6세기


포로 시대 이스라엘(바벨론 포로 시대) / 기원전 6세기~4세기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스라엘(신구약 중간기) / 기원전 4세기~기원후 1세기

각 시기마다 약 2~30개 정도의 작은 글을 올릴 예정이며, 100여 편의 글을 올리려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글이 성경의 영감과 무오성을 훼손한다고 비판할 것이며다른 쪽에서는 이 글이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문자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할 것이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양쪽 진영에서의 비판과 비난을 받고자하는 것이 이 글을 올리는 주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약성서를 읽기에 앞서

구약성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증언을 기록한 책입니다
. 또한 오늘날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이기도합니다. 성서는 여러 면에서 다양성을 띠고 있는데 성경(Bible)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ta biblica, 책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성서가 여러 잡다한 책들을 단순히 한 권으로 묶은 것은 아닙니다. 구약성서는 수천 년의 기록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에 관한 체험과 신앙이 녹아 있습니다. 따라서 구약성서는 유대인에게나 기독교인 모두에게 그들의 과거 경험을 신앙으로 해석하여 삶의 궁극적인 뜻을 밝히려는 '역사작업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 고대 이스라엘의 증언과 기록

고대 이스라엘의 경험은 여러 세기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구약성서는 신앙, 도덕, 예배 의식, 설화, 전설 등이 포함된 '신앙의 도서관'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약성서를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경험에 관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적 삶에 관한 권위 있는 증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구약성서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록, 전승, 보존된 말들이었지만,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야웨 신앙 공동체에 의해 편집되고 모아져서 성경이 되어 오늘날 수많은 이들의 신앙의 지침서가 되었습니다.

약성서가 이러한 글의 모음이란 맥락에서 볼 때, 성서는 문학적인 기교를 포함하는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서를 기록한 이들은 과거의 사건을 '있었던 그대로'의 기술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내용을 적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약성서의 저자들은 신앙 공동체의 구성원인 독자로 하여금 야웨 하나님을 '믿게 하려는 필요 충분한 만큼'의 내용을 저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를 기록하고 편집한 이들은 성서가 계속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교육되며 성서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고양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과거의 사건들을 메마른 낱말들로 나열해 놓는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야기를 함으로써 읽는 이들을 설득해서 그 이야기를 읽고 야웨를 찾고 만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이 문학 작법과 비슷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는 거의 소설가와 다름없이(어쩌면 소설가보다 더) 이야기 순서, 도입과 종결, 심층 의도, 성격 및 심리 묘사 그리고 줄거리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종종 '역사는 단지 과학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예술'이라고 주장하는데, 쉽게 단조로워지고 지루해질 수 있었던 역사 기록은 그들에 의해 매력 있고 흥미진진하고 감동이 넘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구약성서는, 역사를 사실 그대로 녹음한 '녹음테이프'가 아니라 설득과 감동과 줄거리가 있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구약성서의 저자들에게 있어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을 증언하는 기록(성서)이 후대에 계속 읽혀지고 교육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들은 역사가이고, 예술가이며 동시에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서와 관련된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전 1250-1000 모세, 출애굽의 시대 초기  이스라엘
1000-970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 왕정기 이스라엘
970-930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건축하고, 다윗 왕조를 수립하다
930-722 이스라엘이 분리되어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을, 르호보암이 남유다를 통치하다
722 아시리아에 의해 북이스라엘 멸망
640-609 요시야가 남유다를 다스리며 개혁을 단행
598-587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 성전 파괴, 다윗 가문의 추방
540-330 페르시아 시기; 제2성전 건축(520년); 사제 계급의 복권; 다윗 가의 멸망 포로시대의 이스라엘
330-152 그리스(헬레니즘) 시기 그리스-로마 시대의 이스라엘 (신구약 중간기)
152-63 하스모니아(마카비) 왕가의 통치
63 로마 지배가 시작되어 7백년간 이어지다
기원후 70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 함락, 제2성전 파괴
180-200 미쉬나; 신약성서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시작되다 초기 교회 시대
313 기독교가 콘스탄틴 황제 아래에서 로마 제국의 특혜 받은 제의로 인정을 받다
380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다; 팔레스타인 탈무드 기록
428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족장 축출
530 교회 법규 그리고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기록되다

구약성서의 경전들
 
구약성서는 넓게는 히브리 성서
, 곧 고대 이스라엘의 경전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성서''신약성서'라고 나누게 된 것은 예레미야서 31: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유대교 경전

히브리어로 된 유대교인들의 경전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라는 이름으로 'Torah Nebhim Ketubhim'입니다. 율법서라고 부르는 '토라'는 일명 '오경(Pentateuch)'으로 우리에게는 '모세오경'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지만 이 말은 오경 전체를 마치 모세가 기록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느비임'은 전기 예언서와 후기 예언서로 나뉘며, 전기 예언서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가 들어 있고, 후기 예언서에는 '이사야서' '예레미야서' '에스겔서' '소예언서 12'이 들어 있습니다.

셋째 묶음인 '케투빔'에는 '시편' '잠언' '욥기'와 같은 시와 지혜서인, '아가' '룻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기'라고 하는 다섯 두루마리, 이 밖에 '다니엘서''에스라-느헤미야기'가 있고 맨 마지막에 '역대기서'가 있습니다.

'토라'5, '느비임'8, '케투빔'11권으로 모두 합하면 24권입니다. 율법서는 기원전 5세기, 곧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돌아온 뒤 학사 에스라의 주도 아래 경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예언서는 시몬(기원전 219~199)이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직에 있을 때 경전이 되었으며, 성문서에 속하는 책들이 마지막으로 경전이 됩니다.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된 20년 뒤인 기원후 90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지역인 얌니아(Jamnia)에서 회의가 열려 히브리어 성서의 범위가 확정됩니다.

사마리아 경전(사마리아 오경)

그리스시대 초기, 유대 땅 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유대교의 중심지였을 때, 옛 북왕국 이스라엘의 중심지 사마리아에 살던 야웨 숭배자들은 예루살렘의 유대 사회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사마리아 여인이 언급했듯이(4:20) 그들은 세겜 근처의 그리심 산을 그들의 제사의 중심지로 정하고 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의 외경으로는 '세페르 하야밈'(Seper Hayyamim: '역사서')'메마르 마르카'(Memar Marqa: '마르카의 교훈 속에 담긴 모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경전(칠십인역, LXX)

헬레니즘 세계 속에서 살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토라(율법)를 확실히 배우기 위해서 히브리어 성서를 희랍어로 번역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나 아람어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율법을 그리스어로 설명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번역되기 시작한 그리스어 구약이 그들의 경전이 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 역시 사두개파나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오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나머지 책들도 그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번역되었으며, 히브리어 구약성서가 경전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책들(외경; '토비트서', '마카베오서 1-4', 다니엘서 13-14장인 '수산나 이야기''벨과 용' )을 성서에 포함시킵니다. '칠십인역' 명칭은 유대교가 아니라 교회의 사본과 인쇄물에 나타나는 기독교적 명칭으로서, 기원후 2세기 전에는 그리스어 성서 본문을 가리켜 칠십인역이라고 부른 적이 없습니다. 토라와 예언서에 대한 전체 번역을 가리켜 칠십인역이라고 부른 최초의 사람은 초기 기독교 작가인 저스틴(Justin, 165년 사망)입니다.

쿰란 경전

1947, 20세기 신학계와 종교계 최고의 발견인 쿰란사본(사해사본)의 발견은 구약성서 본문 연구에 커다란 획을 그었습니다. 발견된 1000여 개의 사본들 가운데 200여 개는 구약성서 필사본이 있으며 에스더서를 뺀 모든 성서가 들어 있습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본은 기원후 895년에 예언서를 필사한 카이로 사본과 925년에 마무리된 알레포 사본이 전부였습니다. 또한 20세기 이후 모든 현대 성경은(우리가 읽는 한글성경을 포함해서) 구약에 관한 한 레닌그라드 사본(L)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레닌그라드 사본은 구약성서 전체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이며 이 사본은 서기 1008년경에 쓰였는데, 현존하는 가장 온전하고 오래된(the most complete and oldest) 사본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쿰란 경전은 이것보다 무려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성서의 역사성에 의구심을 품고 있던 많은 논란을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 경전

구약성서는 일찍부터 두 언어로 전승되어 왔습니다. 하나는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서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기원전 3세기에 히브리어에서 그리스어로 번역된 그리스어역 구약, 일명 칠십인역(LXX)입니다. 바울 서신과 복음서에서 인용되는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 성서가 아닌 그리스어 성서(LXX)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번역한 다양한 언어의 성경들(한글성경 또한)끼리 차이가 있는 것은 70인역성경(LXX)의 간접적인 영향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없는 소위 외경(外經)이라고 하는 책들이 더 들어와서 나중에 가톨릭의 성서가 됩니다. 개신교에서 외경이라고 부르는 것을 가톨릭에서는 '2경전(deuterocanonical)'이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그리스어 신약성서를 합친 성경을 '1경전' 혹은 '원경전(protocanonical)'이라고 불러서 이 둘을 구분하지만 모두 가톨릭의 성서입니다.

2경전에 들어가는 책은 일정치 않게 역사적으로 변천됩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성서'(1977)에 보면, '토비트' '유딧' '에스델(1경전 에스더기의 추가부분)'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다니엘서(1경전 다니엘의 추가 부분)'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이상 9권입니다. '바룩서' 안에는 '예레미야의 편지'가 마지막 장으로 들어 있고, 다니엘서의 추가 부분인 13~14장에는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이 들어 있습니다. 영어개역표준성서(RSV, 1957)에 실린 제2경전에는 '1에스드라' '2에스드라' '므낫세의 기도'가 더 들어 있습니다.

개신교 경전

개신교의 성서는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개신교의 성서는 유대교와 달리 신약 성서를 경전으로 갖고 있으며, 구약의 경우도 내용은 같지만 책의 분책과 배열은 다릅니다. 이를테면 개신교에서는 '사무엘 상' '사무엘 하'로 나누지만 유대교는 사무엘서 한 권으로 묶여 있습니다.

책의 순서도 개신교는 욥기, 시편, 잠언 등으로 되어 있는데 유대교는 시편, 욥기, 잠언 등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개신교 구약성서의 맨 마지막은 말라기인데 히브리어 성서는 맨 마지막이 역대기상하입니다. 개신교가 '외경'이라고 부르는 가톨릭의 제2경전은 매우 중요하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많음에도 한국교회에서는 그러한 것이 있는지조차 알려 주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양한 구약성서

구약성서는 히브리어로 쓰였고 일부는 아람어로 쓰였으며(31:47, 10:11, 4:8~6:18, 2:4b~7:28), 신약성서는 헬라어(그리스어, 희랍어)로 쓰여 있습니다.

유대성경(타나크) 칠십인역(LXX) 개신교 로마가톨릭 그리스정교
토라(오경) 오경 오경 오경 오경
태초에(창) 창세기 창세기 창세기 창세기
이름은 이러하니(출) 출애굽기 출애굽기 출애굽기 출애굽기
그리고 그가부르셨다(레) 레위기 레위기 레위기 레위기
광야에서(민) 민수기 민수기 민수기 민수기
말씀들(신) 신명기 신명기 신명기 신명기
느비임(예언서) 역사서 역사서 역사서 역사서
여호수아 여호수아 여호수아 여호수아 여호수아
사사기 사사기 사사기 판관기(사사기) 사사기
사무엘 룻기 룻기 룻기 룻기
열왕기 열왕대 1-4 사무엘 상하 사무엘 상하 열왕대 1-4
이사야 역대기(파랄리포메논) 열왕기  열왕기  역대기
예레미야 에스드라1 역대기 역대기 에스드라 1
에스겔 에스드라2(에스라+느) 에스라 에즈라(에스라) 에스라
호세아   느헤미야 느헤미야 느헤미야
요엘 토비트   토비트 토비트
아모스 유딧   유딧 유딧
오바댜 에스더+α 에스더 에스델(더)+α 에스델(더)+α
요나 마카비 1-2(3-4)   마카베오 1-2  마카베오 1-3 (4)
미가        
나훔 시와 지혜서 시와 지혜서 시와 지혜서 시와 지혜서
하박국 욥기 욥기 욥기 욥기
스바냐 시편 시편 시편 시편(151장)
학개 잠언 잠언 잠언 잠언
스가랴       므낫세 기도
말라기 전도서 전도서 전도서 전도서
  아가 아가 아가 아가
  솔로몬 지혜서   솔로몬 지혜서 솔로몬 지혜서
  집회서(시락서)    집회서(시락서)  집회서(시락서) 
케투빔(성문서) 예언서 예언서 예언서 예언서
시편 호세아 이사야 이사야 이사야
욥기 아모스 예레미야 예레미야 예레미야
잠언 미가 예레미야 애가 예레미야 애가 예레미야 애가
룻기 요엘   바룩 바룩
아가     예레미야 편지 예레미야 편지
전도서 오바댜 에스겔 에제키엘(에스겔) 에스겔
예레미야 애가 요나 다니엘 다니엘+α 다니엘+α
에스더 나훔      
다니엘 하박국 호세아 호세아 호세아
에스라 스바냐 요엘 요엘 요엘
느헤미야 학개 아모스 아모스 아모스
역대기 스가랴 오바댜 오바댜 오바댜
  말라기 요나 요나 요나
  이사야 미가 미가 미가
  예레미야+바룩 나훔 나훔 나훔
  예레미야 애가 하박국 하박국 하박국
  예레미야 편지 스바냐 스바냐 스바냐
  에스겔 학개 학개 학개
  다니엘+α 스가랴 즈가리야(스가랴) 스가랴
    말라기 말라기 말라기
  *열왕대 1-4 *에스더+α= 에스더+ 6개 첨가문 *다니엘+α= 다니엘+ 아자랴의 기도, 세 아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용  

개신교 구약성서는 내용은 히브리 성서를 따르고 배열순서는 그리스어 역(LXX)을 따릅니다.

성서의 역사성과 권위

현대인들에게는 '저자'의 개념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고대 셈어계에서 '저자'는 낯선 개념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 바빌로니아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 이집트의 '난파선의 선원', 신들의 싸움에 관한 가나안의 서사문학 '바알과 못' 등에는 저자가 없습니다.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기록한 서기관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어에는 '저자'라는 말이 없습니다. 가장 비슷한 말은 '소페르'인데 이 말은 저자라기보다는 그저 전통을 기록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서기관'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후에 알렉산더 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고대 근동 세계에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 가치를 확산시키면서 '저자' 개념을 가져다줍니다. 이때부터 글의 권위가 저자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성서는 하루아침에 정경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전의 분량과 순서가 다르며 성서가 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이 있었으며, 성서의 '저자' 문제 또한 성서의 권위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는 것도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다양한 참고 문헌들이 있었는데 성서 자체는 그 저자들이 활용할 수 있었던 다양한 자료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야살의 책'은 그러한 자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10:12~13). 성서 기록 가운데는 사울과 요나단을 위한 다윗의 조가(弔歌)도 포함되어 있으며(삼하 1:18), 다른 자료들로서는 '여호와의 전쟁기'(21:14), '솔로몬의 실록'(왕상 11:41), '유다 왕 역대지략'(왕상 14:29),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왕상 14:19), 호새의 사기(대하 33:19) 등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서와 열왕기는 이런 참고 자료를 활용했던 사실을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결국 성서가 정경으로서 권위를 갖추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다양한 시각, 그리고 참고 문헌 등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성서의 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교회 역사를 통해서 구약성서의 정경 목록은 단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었으며 긴 시간 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로마가톨릭 경전은 개신교(유대교를 포함해서)의 경전보다 몇 권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수천 개에 이르는 다양한 사본에 의해 더 세분화되는데요, 이렇게 되면 '성서 무오설'이라는 말 자체는 상당히 애매한 주장이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성서 원본은 무오하다'라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성서 원본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도 없고(개인적으로는 정말로 완전 무오한 원본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설사 있다고 해도 성서의 본문 자체 역시 같은 사건을 다르게 기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이러한 주장을 약화시킵니다성경은, 성경이 스스로 완전 무오하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사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성서는 철저히 인간의 기록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말이 '성경은 오류투성이기에 믿을 만한 것이 전혀 못 된다'라는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임과 동시에 인류 역사의 산물이며 그렇기에 성서 기록의 과정과 성서 이야기의 역사성을 살펴보는 것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서 무오설이나 축자영감설을 주장하는 것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고 또한 성서가 지배층 엘리트들의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고문서일뿐이라는 시각을 잠시 접어 두고,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서의 내용과 역사성을 조금 더 세밀하고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고학'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고고학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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