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50만 부 넘게 팔려 나갔다. 저자는 책에서 링컨이 기독교인으로서 믿음과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업적을 이뤘다고 설명한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기독교 서적 중에는 어려운 신학 책보다는 신앙서가 더 많이 팔린다. 유명한 사람의 신앙 이야기라면 더욱 더 관심을 받는다.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백악관>·전광, 생명의 말씀사)도 신앙고백에 목마른 이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며, 2003년부터 지금까지 9년간 50만 부 넘게 팔려 나갔다. 여세를 몰아 어린이용 <백악관>도 제작했다.

저자 전광 목사는 링컨(1809~1865)이 노예해방과 남북전쟁의 승리를 이룬 것은 그의 믿음과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 뒤에 링컨을 이끄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설명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찬사와 감탄으로 가득한 추천사와 서평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격하고 은혜를 누리고 도전을 받지만, 이러한 책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이 주목하는 것은 신앙서적이 말하는 링컨과 실제 역사 속 인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링컨이 기독교인으로서 기도했기 때문에 업적을 이뤘다는 책 내용도 당시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오류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대다수가 열광한 <백악관> 삐딱하게 보기

▲ 옥성호 본부장은 그의 책 <갑각류 크리스천>에서 <백악관>을 "유명인의 이름에 기대어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한 대표적인 책이다"고 혹독하게 평가했다.

옥성호 본부장(국제제자훈련원)은 그의 책 <갑각류 크리스천>(<갑각류>·옥성호, 테리토스)에서 <백악관>을 "유명인의 이름에 기대어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한 대표적인 책이다"고 혹독하게 평가했다. 옥 본부장은 "링컨이 백악관에 기도실을 만든 적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그 책을 비평한 서평 하나를 인용했다. 기독교인으로 미국사를 전공한 전광수 씨가 <백악관>을 "아전인수의 대표격인 책"으로 비판한 글이다.

전 씨는 "한국교회 목사들이 흔히 인용하는 예화집에 나오는 위인들의 이야기는 역사적인 근거가 희박하거나 꽤 부풀린 내용이 상당하다"며 글을 써 내려갔다. 단지 유명인들이 신앙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행적과 신앙을 부풀리는 일들이 많다며, <백악관>에 나오는 링컨도 그렇다고 했다.

우선 전 씨는 <백악관> 저자 전광 목사가 링컨을 시대의 영웅으로 전제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전 씨는 "링컨을 노예해방을 이룬 위대한 인물로 인정하는 역사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며, "저자가 링컨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전혀 모르고 있다"고 했다.

링컨의 신앙을 살피기 위해 연설문을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도, 전광수 씨는 "당시 미국이 기독교 중심의 종교적 사회여서 정치가가 기독교 신앙이 묻어난 연설을 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며 연설문을 개인의 신앙과 연결하는 것은 당시 사회적 상황과 맞지 않다고 꼬집었다.

<갑각류>에서 비판한 내용에 대해 <백악관> 저자 전광 목사는 "다양한 생각이 있을 수 있다. 그분 생각이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링컨의 신앙 이야기를 썼을 뿐이다"고 말했다. 전 목사는 링컨의 역사적 실체를 근거로 <백악관>을 비판하는 지적에 대해서 자세한 언급은 피했다. 전 목사는 <뉴스앤조이>의 인터뷰 제안도 거절했다.

생명의말씀사 편집부 관계자는 "<갑각류>에서 <백악관> 제목을 너무 직선적으로 해석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링컨이 기도했던 대통령이었다는 뜻이지, 백악관에 정말 기도실을 만들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말했다. 전 독자의 서평에 대해서는 "전 목사가 시카고에 8년간 살면서 여러 박물관과 도서관에 링컨에 대한 자료를 찾아 다녔다. 그 자료 자체가 거짓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책을) 쓴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전광수 씨는 <백악관> 서평에서 "링컨을 노예해방을 이룬 위대한 인물로 인정하는 역사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며 저자 전광 목사가 링컨을 시대의 영웅으로 전제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서점 '갓피플몰' 누리집 갈무리)

영웅 링컨의 실제 모습은

<백악관>과 <갑각류>는 서로 링컨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백악관>과 같은 링컨 위인전들은 링컨에 대해 어린 시절 고생하고,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을 얻고, 노예해방을 이루고, 남북전쟁을 성공으로 이끌고, 마지막에는 안타깝게 암살당한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 있다. 이것이 대중의 일반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 김민웅 교수는 링컨의 대통령 재임 시절 정치·경제적인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링컨의 행적을 모두 신앙의 소산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그러나 <갑각류> 같이 링컨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다른 각도로 살피는 책과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 독자가 서평에서 소개한 <링컨>(데이비드 허버트 도날드, 살림)이 대표적인 책이다. 도날드 교수(하버드대 역사학부)는 링컨과 당대 인물들이 남긴 원본 문서를 활용했고, 링컨의 변호사 시절 문서도 참조했다. 도날드 교수에 의하면 링컨은 대선 후보 시절 노예제를 나쁘게 여겼지만 주 정부들이 헌법으로 인정해 온 제도이기 때문에 노예제도를 폐지할 생각이 없었다.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한다.

<가면을 벗긴 링컨>(토머스 J. 디로렌조, 소화)도 있다. 디로렌조 교수(매릴랜드로욜라대 경제학)는 "링컨을 숭배하는 학자들이 링컨뿐만 아니라 대통령직 자체와 미국을 신격화해 링컨 신화를 제국주의 정책에 활용하고자 했다"며 링컨 영웅화 작업을 비판했다.

미국의 대외 정책을 연구해 온 <밀실의 제국> 저자 김민웅 교수(성공회대 NGO대학원)는 "노예해방선언 이후 남부 대농장에 묶여 있던 노예들이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북부 자본주의 체제에 노동자로 흡수되었다"며 링컨 정책의 한계를 말했다. 김 교수는 "노예들에게 신분 해방과 더불어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거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이것은 링컨이 애초부터 노예해방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지적이다.

▲ 옥성호 본부장은 "남의 성공 신앙 이야기가 인기 많은 것은 '링컨처럼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공하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김 교수는 "남북전쟁이 미국의 연방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북부 대자본가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전쟁이었다"며 링컨의 대통령 재임 시절 정치·경제적인 상황을 토대로 링컨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다각도로 접근해 실체를 확인하지 않고 링컨의 행적을 모두 신앙의 소산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다"고 했다.

남의 성공 신앙에 마음을 뺏겨

<백악관>은 링컨을 서술한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꾸준히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생명의말씀사 편집부 관계자는 "<백악관>이 링컨의 정치·역사적인 측면보다는 링컨의 신앙을 다뤄 다른 책과 차별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책이 나왔던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링컨을 얘기했던 것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저자가 여러 교회에 강연하러 다니고, 교인들이 책을 단체 구입하고, 현장에서 저자 사인회를 했던 것도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옥 본부장은 유명인의 신앙 전기가 잘 팔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옥 본부장은 "남의 성공 신앙 이야기가 인기 많은 것은 '링컨처럼 훌륭한 신앙인이 되어 사회에서 성공하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욕망과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은혜만 받으면 그만이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 김성민 편집장은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책을 내는 저자와 출판사도 문제지만, 독자들의 관심도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진
SFC출판사 김성민 편집장도 잘 팔리는 내용 위주의 책을 주로 펴내는 기독 출판계에 쓴소리를 냈다. 김 편집장은 "기독 출판계에 나오는 인물 전기들은 역사적 맥락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책보다는 개인적 관점에 치우치고 특정 인물의 승리주의적 분석을 한 책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성공한 사람들의 경건을 강조한 책이 잘 팔리는 이유는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개인 영성과 자본주의에 천착한 자기 계발 경건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대중의 욕망이 투영된 책을 내는 저자나 출판사도 문제가 있지만, 독자층의 관심도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김 편집장은 "여러 관점이 담긴 책들이 나오면 좋은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 쉽지 않다. 하지만 다양한 기독교 신앙을 담은 출판을 계속 시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 본부장은 "정직하게 쓰인 신앙 전기들도 많이 있다"며, "우리가 평생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짚어주고 신앙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정직한 전기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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