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에 대한 권리를 두고 출판사와 단체가 6년째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교인들은 이해 당사자들의 주장만 반복해 들어야 했다. 사건의 경과와 본질은 가려졌다. 교인들이 사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찬송가 기획 기사를 마련한 이유다. 연재는 총 3회에 걸쳐, 사건의 흐름, 원인, 손해 등을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 주
▲ 찬송가가 5년 만에 새로 나온다. 찬송가가 29년 만에 둘로 나뉘는 것이다. 찬송가 분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찬송가를 하나로 합치는 관행이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뉴스앤조이 유영

올해 새 찬송가가 나오면 29년 만에 찬송가가 나뉜다. 찬송가 분열 소식에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신신묵 대표회장)는 8월 30일 성명을 내고 "한국교회 찬송가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찬송가 통일은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일구어 낸 큰 사업"이며 "교회 성장에 한몫했다"는 게 이유다.

찬송가 통일이 절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은 성명을 낸 일부 목회자만의 것이 아니다. <통일 찬송가>가 나온 뒤로 한국교회가 같은 찬송가를 써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찬송가 통일이 불러온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찬송가 분열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찬송가 통일이 꼭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볼 때다.

찬송가 통일, 교회 연합 지키기 혹은 무리한 합치기

▲ 찬송가 통일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로 여겨졌다. 찬송가가 나뉜다는 소식에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찬송가를 통일하면서 잃은 것도 많다. (<국민일보> 갈무리)

찬송가 통일 운동은 현실적 이유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에는 선교 100주년을 앞두고 개신교 연합 집회가 많이 열렸고, 집회 때마다 찬송가가 셋으로 나뉘어 불편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찬송가 통일을 위해 만들어진 한 단체가 1974년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설문에 응한 전국 교회의 95%가 통일 찬송가 발간을 원했다.

연합 집회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찬송가를 합치는 거라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없었던 건 아니다. 김의작 총신대 교수는 <현대사조> 1978년 2월호에 "교회는 행사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개 교회마다 매일의 생활이 있다. 연합 집회 때 부르기 위해 찬송가를 통일한다는 건 일상생활에 입을 옷을 파티 의상으로 맞추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미국처럼 연합 집회 준비위원회가 함께 부를 찬송을 선정하고 유인물에 인쇄하여 사용하면 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찬송가 통일 반대 의견은 '교회 일치'를 앞세운 통일 찬성에 밀렸다.

"진보 교단에 소속한 교회에서도 같은 찬양을 부를 수 있어 좋았다"는 한 보수 교단 출신의 목회자 말처럼 찬송가 통일이 주는 일체감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진정한 연합과 일치를 의미하느냐는 고민해 볼 대목이다. 김의작 교수는 "우리가 진실로 교파 통일을 원한다면 (찬송가 통일에) 막대한 희생과 노력과 재정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교리를 통일하기 위한 솔직한 운동을 선행해야 한다"며 찬송가 통일 운동을 반대했다.

교단마다 교리가 다른데 하나의 찬송을 부르는 것이 신학적으로 옳은가에 대한 의문은 지금도 제기된다. 찬송가를 합치면 각 교파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신앙과 교리가 찬양에서 사라진다는 것. 이기선 총신대 교수는 "교파별로 교리와 신앙고백이 다른데 억지로 같은 찬송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찬송가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교단 특징이 사라진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20세기 미국에서도 찬송가 연합 운동이 활발했지만, 감리교는 감리교 안에서, 장로교는 장로교 안에서 하나의 찬송가를 만들었다. 교파를 초월한 찬송가는 만들지 않았다. 이은주 장신대 교수도 "교단별로 찬송가를 만드는 게 낫다"며 "교단별로 찬송가를 만들어도 많은 찬송가가 공유된다. 찬송가가 나뉜다고 해서 교회 연합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 찬송가 통일 요구가 거셌던 1970년대는 연합 예배가 많았다. 여러 교단이 모여 찬송가를 부를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찬송가는 하나로 합쳐졌다. 사진은 지난해 열린 부활절 연합 예배 모습. (사진 제공 2012 부활절 연합 예배 공동 취재단)

찬송가를 만들 때 교단별 안배가 중시되면서 찬송가 곡이 불필요하게 늘었다는 지적도 있다. 교회의 찬송가 선곡을 조사한 논문을 보면, 1999년 1년간 100개 교회가 부른 찬송가 숫자는 평균 88곡이다. <통일 찬송가> 전체 558곡의 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다. 100개 교회가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찬양은 45곡이나 된다. 이은주 장신대 교수는 "모든 교단의 찬송가를 넣다 보니 교회나 교단에 따라 부르지 않는 곡들까지 찬송가에 들어가 있다. 찬송가를 통일하면서 곡이 불필요하게 늘어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21세기 찬송가>에 실린 곡 중에도 불리지 않는 곡이 많다. 조용기 목사가 작사하고 김성혜 한세대 총장이 작곡한 찬송 '내 평생 살아온 길', '얼마나 아프셨나'와 임태득 목사가 작사한 '성령의 봄바람 불어오니'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문승 서울신학대 교수는 "조용기 목사가 지은 노래는 조 목사를 따르는 교회와 교인들은 즐겨 부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잘 부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임 목사는 당시 찬송가공회 회장이었다. 임 목사 외에도 공회 임원이나 찬송가 선정 위원들의 곡이 다수 들어갔다. 이들의 곡은 대중적으로 즐겨 부르거나 작품성이 뛰어나 선정된 게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앙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전문가보다 목사가 더 많은 찬송가공회

찬송가 자체도 문제지만, 찬송가를 만들고 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단체가 부실한 점도 문제다. 이러한 조직의 허점을 개선하지 않은 채 새 찬송가 발간에만 열을 올리다보면, 7년 만에 폐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21세기 찬송가>와 같은 오류를 반복할 가능성도 크다.

찬송가공회는 기존에 있는 두 연합 단체(한국·새찬송가위원회)가 손잡고 만들었다. 연합 단체가 다시 합친 형태라 인적 구성에서 단체와 교단 안배가 중요시됐다. 회장과 총무는 2명씩 뽑았다.

찬송가공회 역할은 <통일 찬송가> 권리를 관리하는 것이었다. 찬송가 제작을 맡은 단체가 연구보다 관리에 방점을 찍고, 전문가보다 목회자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일부 정치 목사가 찬송가 제작을 좌우했다"는 <21세기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수의 증언은, 전문가와 교인이 배제되고 교단 파송을 받은 목회자로 구성된 찬송가공회 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또 하나의 졸작 찬송가를 남발하며 1200만 교인을 우롱하는 찬송가 관계자들은 새 찬송가 발간 의도를 밝히고 회개해야 한다." 백효죽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지휘법)의 외침은 찬송가를 둘러싼 다툼으로 5년 만에, 1년 남짓 걸려 만든 찬송가를 다시 사야 하는 교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찬송가공회(비법인)는 우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새 찬송가 제작을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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