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차 강조하는 바이지만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메가처치 현상이다. 필자가 메가처치라고 했을 때, 이는 메가처치 현상 '가운데' 있는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필자가 대형 교회(big church)라는 용어 대신 굳이 메가처치(megachurch)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규모가 큰 대형 교회가 아니라 메가처치 현상이라는 매우 독특하고 특이한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들을 지칭하기 위해서이다. 필자의 사고 속에서 메가처치는 어디까지나 메가처치 현상이라는 맥락 속에서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메가처치 현상이 없는 곳에서 메가처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여 메가처치 현상이 나타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 필자가 문제 삼는 메가처치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메가처치 현상 속에서 파악할 수 있는 메가처치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이 통상 메가처치는 주일예배 평균 출석 인원이 2000명 이상인 교회를 지칭한다(Scott Thumma & Dave Travis, 2007). 스콧 튜마와 데이브 트래비스는 Beyond Megachurch Myth에서 메가처치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재적 인원이 아니라 실제 출석 인원이 2000명 이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출석 인원이 2000명 이상이 되면 교회의 특성이나 조직 등에 있어서 큰 변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2007: xviii-xxi).

필자는 이러한 메가처치의 정의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메가처치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좀 더 유용한 정의를 제안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메가처치 논박>에서 메가처치를 '한계를 초월하여 성장하는 교회'라고 정의했다(2009: 19~21). 역사상 모든 지역 교회는 교회의 크기에 제한을 가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거나 최소한 그러한 한계가 전제된 상황 속에 있었다. 역사 속의 어떤 지역 교회도 자신의 크기를 무한히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날 단 하나의 지역 교회가 80여만 명까지 모일 수 있게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80여만 명이 지역 교회의 크기의 최대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 이상의 성장도 가능한 시대가 바로 오늘날인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특성이야말로 진정으로 새로운 현상이다. 메가처치의 정의는 이러한 현상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메가처치를 '한계를 초월하여 성장하는 교회'라고 정의하자고 제안하려는 것이다.

한계를 초월하여 성장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먼저는 내적으로 교회가 한계를 초월하여 성장하기 원하는 추진력(driving power)이 존재해야 한다. 이러한 성장을 향한 추진력은 과거의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예컨대, 로마가톨릭교회나 그리스 및 러시아 정교회, 성공회, 종교개혁 시대의 개신교회에서 우리는 이러한 성장을 향한 추진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의 교회라도 메가처치 현상에서 비켜서 있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추진력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메가처치 현상이 휘몰아치고 있는 곳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이러한 강력한 동기 의식과 방향성, 추진력 등을 발견할 수 있다.

메가처치 현상이라는 맥락 속에 있는 교회 중에 자신의 현재 상태(status quo)의 크기에 만족하는 교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교회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하고자 한다. 물론 교회마다 목회자마다 지향점이 다르기도 하고, 목표가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의 활동의 최종 결과가 양적 성장으로 귀결된다고 가정하는 점에서는 모든 교회는 대동소이하다. 교회마다 성장을 향한 추진력의 정도의 차이는 존재한다. 아주 노골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교회도 있고, 좀 덜 그런 교회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교회는 공통적으로 수적인 성장을 추구하거나 전제한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교회는 성장을 추구하는가? 나중에 좀 더 살펴보겠지만 교회가 성장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 300년간 복음주의의 영향 아래서 교회는 자신에게 맡겨진 최대의 사명을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세계 복음화라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개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나라의 확장이요, 세계 복음화와 동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대 교회의 복음주의적 성향이 교회로 하여금 성장을 직간접적으로 추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메가처치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어김없이 성장을 향한 강력한 추진력이 뿜어져 나오는 엔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현대의 교회는 릭 워렌식으로 표현해서 성장이 이끄는 교회(growth-driven church)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성장을 추구하는 현대의 교회는 성장의 한계를 마치 돌파해야 하는 장벽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회성장학의 창시자, 도날드 맥가브란(Donald McGavran)은 그의 작은 소책자에서 교회 성장의 방해가 되는 주요 요인은 "목사와 선교사들이 교회 성장에 대해 쌓아 왔던 합리화의 벽" 때문이라고 말한다(1982: 15). 목사와 선교사들이 교회 성장에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무관심을 정당화하는 것을 그는 성장의 장벽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 벽을 부수기 위해 평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교회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라>에서 칼 조지(Carl G. George)는 또 다른 장벽을 말하고 있다.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다 보면 성장 도상에서 성장의 장벽과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교인 수가 50명, 200명, 400명, 800명, 5000명이 될 때인데, 교회는 그러한 한계를 돌파해야 하며, 또 돌파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1996).

이러한 식의 성장의 장벽이라는 개념은 빌 설리반(Bill M. Sullivan)의 <200명 장벽을 돌파하는 열 단계>(Ten Steps Breaking the 200 Barriers, 1988)나 해리 파울러(Harry H. Fowler)의 <새로운 교회성장의 장벽을 돌파하라>(Breaking Barriers of New Church Growth, 1988) 등의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즉 현대 메가처치는 성장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부수고 성장을 향해 전진하는 교회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추진력이 현대 메가처치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처럼 성장을 향한 추진력은 메가처치 현상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러한 성장을 향한 추진력은 메가처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지역의 1%의 메가처치뿐만 아니라 99%의 비메가처치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메가처치 논박>에서 필자가 현대의 모든 교회는 메가처치 DNA를 가지고 있다고 했을 때 이는 바로 모든 교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성장을 향한 추진력을 말하는 것이다(2009 : 21, 80). 성장을 향한 추진력은 메가처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곳에서 메가처치나 비메가처치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이다.

한계를 초월하는 성장을 위한 두 번째 조건은 외적 장벽의 제거다. 내적인 추진력만으로는 교회가 한계를 초월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지속적인 성장을 막는 외적인 장벽들이 해제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테면, 개별 교회들 간의 성장의 경쟁은 초대교회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더러 경쟁적인 복음 전파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바울 사도는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아울러 전 세계를 하나의 공교회(Catholic)로 보았기에 교회들 간의 성장의 경쟁이란 결코 가능할 수 없었다.

이것은 중세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중세 교회에는 모든 교회가 로마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라는 공교회에 대한 강력한 신념과 함께 정교한 교구 시스템이 만들어져서 교회들 간 경쟁을 허락하지 않았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의 개신교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유럽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의 취향을 찾아 교회를 옮기는 일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당시 유럽 교회는 국가 교회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 교회들 간의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대륙에 이르러서 소위 교파 교회(denominational church)의 전통이 생겨나면서 비로소 교회들 간의 성장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도 교파들 간의 경쟁이 우선이었지 지역 교회 간 경쟁은 부차적이었다. 지역 교회가 교단보다 더 중요해진 20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지역 교회들 간의 성장 경쟁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개별 교회의 성장의 추구가 가능해진 시기는 역사적으로 비교적 최근이며 그 이전에는 아예 그러한 일이 가능하지 않았다. 이상은 바로 성장을 막는 외부적인 장벽의 한 가지 사례이다.

특별히 <메가처치 논박>에서 다루었듯이 인구의 폭발적 증가, 도시화, 시장 상황의 도래,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 등과 같은 역사적, 사회적 조건 등은 개 교회의 무한 성장을 막아 왔던 장벽들을 하나둘씩 해제했다. 메가처치 현상은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조건이 조성되기 전에는 나타날 수 없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메가처치 현상이 1970년대를 전후로 지구상에 급작스럽게 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조금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필자의 가정에 따르면 이 시기는 성장을 향한 교회의 내적 추진력이 왕성해지는 동시에 성장을 막는 외적인 장벽이 충분히 와해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팝콘을 튀길 때와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팝콘에 열을 가하면 처음에는 팝콘에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옥수수의 단단한 외피가 팝콘의 팽창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팝콘은 열과 함께 팽창하려는 에너지가 내부적으로 점점 축적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가 임계점에 이르면 갑자기 하나둘씩 폭발하여 순식간에 수북한 팝콘 더미로 변하게 된다. 메가처치 현상이 1970년대에 급작스럽게 나타난 것도 이러한 팝콘 효과로 설명해 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의 가설에 따르면 메가처치 현상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복음주의 운동이 시작된 이래 지난 300년간 개신교회의 지역 교회들은 성장과 팽창을 추구하는 열망과 에너지를 점차 내적으로 축적해 왔다. 하지만 개 교회의 무한 성장을 막는 역사적, 사회적 장벽들 때문에 메가처치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외적인 장벽들이 하나둘씩 차례로 제거되다가 조건이 충분히 숙성되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메가처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필자가 문제 삼는 메가처치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역사상 최초의 메가처치는 단연 여의도순복음교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만일 단순히 예배 출석 인원 2000명 이상(2000-plus attendances)인 교회를 메가처치라고 한다면 우리는 최초의 메가처치를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장 칼뱅(Jean Calvin)의 편지에 의하면 베르주라크(Bergerac)의 교회에서는 4~5천 명이, 몽펠리에(Monpellier)의 교회에서는 5~6천 명이 모여 칼뱅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또 비슷한 시기의 툴루즈(Toulouse)의 한 목사는 자신의 교회 교인의 수가 8~9천 명이나 된다며 놀라워하고 있다(Bird, 2012).

미국의 경우, 1734년에 버지니아 주에 세워진 The Fall Church와 1789년에 메릴랜드 주에 세워진 Bethel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는 이미 18세기에 메가처치의 반열에 들어갔다.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은 Metropolitan Tabernacle을 목회하면서 1892년 어느 주일날 5311명에게 설교한 적이 있으며, D. L. 무디(Moody)가 시카고에 세운 The Moody Church의 경우는 이미 1876년에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예배당을 건축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백 년이 넘도록 3000명 이상이 예배에 출석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오래된 메가처치로 인정을 받고 있다(Bird, 2012).

하지만 필자는 메가처치를 1970년 전후에 나타난 메가처치 현상과 관련하여 보겠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워렌 버드가 연구한 이들 초기 대형 교회들은 메가처치 현상과 분리되어 존재하고 있다. 물론 이들 대형 교회들이 메가처치 현상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가 보기에 이들 교회는 메가처치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 시기에 예외적으로 존재했던 특이한 사례들이라고 보아야 옳다. 하여 위의 교회들은 특이한 대형 교회들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서의 메가처치라고 부르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던 교회들 중 1만 명이 넘는 예배 출석 인원을 기록한 교회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조지 휫필드, 찰스 스펄전, D. L. 무디 등의 이벤트성 전도 집회는 2~3만 명의 청중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 지역 교회의 출석 인원이 1만 명이 넘었다는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위의 교회들이 특이할 정도로 크게 그리고 예외적으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충 1만 명 선에서 성장의 장벽을 이들 교회가 뛰어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지칭하는 메가처치들은 그렇지 않다. 메가처치들은 1만 명이 아니라 10만 명도 거뜬히 뛰어넘는다. 메가처치들 중 단연 독보적인 교회는 여의도순복음교회다. 여기서 잠깐 현대 메가처치의 전형으로서의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사례를 살펴보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자체 통계에 따르면 1958년 대조동에서 처음 개척했을 때 교인은 5명이었다. 그런데 1963년에 이미 2000명을 돌파했고, 1972년에는 1만 명 돌파, 1979년 10만 명 돌파, 1981년 20만 명 돌파, 1987년 30만 명 돌파, 1988년 40만 명 돌파, 1989년 50만 명 돌파, 1991년 60만 명 돌파, 1996년 70만 명 돌파, 그리고 2007년 현재 76만 5301명을 기록하고 있다(2008). 물론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듯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이러한 통계 수치에도 신뢰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범하고 경이적인 성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일어났음을 확인시켜 주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의 특징은 먼저 시기적으로 메가처치 현상이 출현한 때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워렌 버즈가 들었던 앞의 사례들이 메가처치 현상과는 다소 동떨어져서 특이한 예외적 사례들로 머물러 있는 것에 반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메가처치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와 맞물려 일어났다. 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을 예외적 사례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속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5명으로 개척한 지 5년 만에 2000명을 넘어서서 메가처치의 반열에 들어섰다. 다시 개척한 지 14년 만에 1만 명을 넘어섰고, 20년이 지나기도 전에 벌써 10만 명이 넘어서 있었다. 더구나 1987년부터 3년간은 1년마다 10만 명씩 성장했다. 겨우 1년 만에 10만 명씩이나 증가했다! 이러한 성장의 속도는 유사 사례를 찾아볼 수 없게 만든다.

또 다른 특징은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소위 성장의 장벽이라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계를 초월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칼 조지가 성장의 장벽이라고 했던 50명, 200명, 400명, 800명, 5000명 단계의 장벽을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숨에 부숴버린 것이다. 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한계를 넘어서는 성장의 전형을 보여 준 것이다.

무엇보다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사는 자체의 통계 수치를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80만 명의 장벽 앞에서 더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80만 명이라는 숫자는 닫힌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즉 80만 명 선에서 일어난 정체 현상은 필연적이기 보다는 우연적이다. 이를테면, 조용기 목사의 정년 퇴임과 같은 변수의 결과인 것이다. 하여 상황과 조건이 새롭게 조성된다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다시 계속될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서 80만 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무한대를 향해 열린 숫자다. 즉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개별 지역 교회의 성장이 80만 명을 넘어서 얼마든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며 그러한 상상력과 비전을 일깨워 준 성장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한마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경이적이며, 비범하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마치 고만고만한 교회들 한가운데 군계일학처럼 우뚝 서 있다. 그것을 금자탑이라고 부르든 바벨탑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하든 간에 말이다. 종교현상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신성한 아우라가 드러나는 일종의 '성현(hierophany)'이다(1997 : 11). 탈신성화된 세계의 한가운데 출현한 성현. 그 경이적이고 놀라운 사건이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성장은 수많은 추종자와 추종 교회들을 낳았다. 그들 추종자와 추종 교회들이 메가처치 현상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필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최초의 메가처치요, 메가처치의 최고의 전형이라고 보고자 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출현과 함께 진정한 메가처치가, 그리고 메가처치 현상이 지구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문헌>

여의도순복음교회. (2008). <여의도순복음교회 50년사>. 서울 : 여의도순복음교회.

Fowler, H. (1988). Breaking Barriers of New Church Growth. Rocky Mount, N.C.:Creative Growth Dynamics.

George, C. F. (1996). <교회성장의 한계 이렇게 돌파하라>. 최예자 & 유진화 역. 서울 : 프리셉트.

McGavran, D. (1982). <교회성장학>. 박은규 역.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Mircea Eliade. (1997). <성과 속>. 이동하 역. 서울: 학민사.

Sullivan, B. M. (1988). Ten Steps Breaking the 200 Barriers, Kansas City, Mo.: Beacon Hill Press.

Bird, Warren. (2012). World’s First Megachurch? http://leadnet.org//blog/post/worlds_first_mega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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