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스골에서 울란타바르로 돌아오던 날 저녁, 우리 일행은 오랜만에 한국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울란바타르 중심가에 있는 한국식당에는 우리 일행이 먹을 해물찌개가 준비되어 있었다.

재한몽골학교, 몽골 사역 중심

▲ 홉스골에서 울란타바르로 돌아오던날 저녁. ⓒ유해근

홉스골의 아름다움은 기가 막힌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그 못지않은 추억이 있다면, 그곳에서 김치찌개와 매운탕-홉스골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로-을 해먹은 일일게다. 정말 그 김치찌개와 매운탕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타국땅에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시 한국 음식이다. 특히 몽골의 음식문화는 우리가 쉽게 적응할 수 없을 만큼 육류중심이다. 양념도 없이 그저 삶아서 먹는 것이 고작인지라 우리 일행에게 음식은 피곤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문화원의 실무자들이 이것저것 반찬거리를 미리 준비한 관계로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음식이라는 것이 삶의 양태와 문화를 상징하지만 또한 부(富)를 상징하기도 하는 것을 이번 몽골여행을 통하여 새삼 알게 되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라면 거의 갈비를 연상한 것처럼 몽골에도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몽골의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란 과연 무엇일까. 놀랍게도 김치가 몽골의 부자들이 먹는 음식이었다. 김치가 부자들의 음식문화의 상징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김치가 그런 엄청난 위상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몽골문화원이 있는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 가장 많이 모이는 근로자 그룹은 단연 몽골인들이다. 하긴 몽골문화원이 있고, 재한몽골학교와 몽골인터넷선교방송국이 있는 선교회에 몽골인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몽골인들은 서로 만나고 신앙생활을 배우고 인간적인 사귐과 교제를 이루어간다. 현재 한국의 몽골인들이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와 몽골문화원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역할이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 선교회와 문화원을 통하여 돌아간 몽골인들만 해도 수만 명에 달할 정도로 오랜 시간동안 몽골인 사역의 중심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돌아간 사람들이 울란바타르를 중심으로 10만여 명에 달하고 있다. 그들은 몽골의 여론 주도그룹이 되어가고 있으며, 몽골사회 변혁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에서 돈을 벌고, 한국의 문화와 제도 그리고 선진화된 의식을 습득하면서 그들은 이미 상당한 부분 변화되어 있었다. 그들이 변하면 몽골이 변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목격한 몽골의 변화는 다름 아닌 그들의 변화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들은 김치를 먹는다. 김치는 한국의 문화와 정신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던 의식의 상징이다. 그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며, 엘리트이고 부자가 되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렇다. 몽골에서 부자와 엘리트는 김치를 먹어야 했다.

우리가 울란바타르에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모인 저녁, 우리 일행은 몽골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큰 감격과 감동을 받았다. 몽골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부자들이나 드나들고 먹는 한국음식점에 현지 몽골인들이 모여들었다.

▲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와 문화원에서 가깝게 지내던 유 목사님과 권 목사님이 왔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유해근

"목사님, 안녕하세요?" "권 목사님, 사모님."

한국말이다. 한국말을 쓰는 몽골인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도 예사스럽지 않았다.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정말 반가운 모양이다. 그들은 누가 모이라고 해서 모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와 문화원에서 가깝게 지내던 유 목사님과 권 목사님이 왔다고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잠깐 사이에 30명이 됐다. 

급히 음식을 더 주문하기도 했다. 자기들도 오랜만이라며 반가워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의사로, 혹은 한국어 학과를 다니는 대학생이나 한국말 통역관으로, 아니면 자기 사업을 하는 사업가로 변신해 있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천덕꾸러기처럼 대우받던 사람들이 전혀 딴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감도 보였다.

저녁식사 후 우리 일행은 그날이 수요일인지라 이정일 목사님을 모시고 잠시 수요예배를 드렸다. 물론 현지 몽골인들도 참석한 수요예배다. 돌아간 몽골인들의 입에서 한국말 찬양소리가 나온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몽골인들 중 민재라는 자매가 일어나 감사와 환영의 인사말을 하였다. 얼마나 유창한 한국말을 하던지 그리고 그 말속에 우리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엄청난 몽골 선교의 방법이 새겨져 있었다.

신앙 키울 수 있는 공간과 여유 필요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마디는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고 모여 예배할 수 있는 장소를 갖고 싶습니다'는 고백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 일행 모두는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모이고 예배할 수 있는 곳은 몽골에는 없다. 물론 교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렇게 신앙이 성숙되지 못한 그들이 모여 한국을 그리워하며 함께 교제하고 신앙을 키울 수 있는 공간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을 뒤에서 돌보아줄 수 있는 선교사도 없었다. 왜 현지 교회에서 모이지 않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현지의 분위기와 정서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엘리트며 구별된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 자부심과 차별성이 기독교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자기중심적인 생각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들에게 그 정도 수준까지 주문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자기중심적인 해석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몽골에 돌아가서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만남과 교제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고픈 욕구가 있다. 그것은 분명 선교의 접촉점이며 기회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었다. 한국에서 외국인근로자 선교만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을 위한 후속 선교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과 고민이 없었다. 그것은 실로 심각한 선교의 공백이고 실수였다.

물론 서울노회에서 이미 그런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9년 서울외국인근로자선교회에서는 돌아간 몽골인들을 위한 후속 선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그곳에서 사역하던 사역자 중 한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겪으면서 후속 선교 프로그램은 자취를 감추었다. 만약 그때 후속 선교  프로그램이 제자리를 잡았다면, 몽골선교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을 것이다. 그 날 우리 일행 모두는 당시의 후속 선교 프로그램이 실패한 것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정말 땅을 치고 아쉬워할 일이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많은 몽골인

우리가 몽골선교를 향한 특별한 비전과 목적을 가졌다면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몽골을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하는 선교의 구체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우리 일행은 돌아간 몽골인들과 재회를 통해 몽골선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

몽골선교는 한국에 와 있는 1만 7천 명의 몽골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한 교육을 통하여 그리고 한국에서 돌아간 몽골인들과 지속적인 사귐과 신앙양육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전에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특별한 선교의 기회이며 접촉점이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이와 같은 선교 전략으로 몽골선교의 지평을 열어갈 것을 재차 요청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몽골에서 돌아오던 날 저녁, 울란바타르 공항까지 민재와 몇 명의 친구들이 배웅하기 위하여 찾아왔다. 잘 돌아가라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곳까지 찾아와 배웅하는 그들을 보면서 무척 감사하고 흐뭇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울란바타르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돌아간 몽골인들을 만난 것은 우리 일행 모두에게 큰 감동과 기쁨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몽골 선교의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었다.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한국으로 들어가는 많은 몽골인들이 타고 있었다. 한국에 가려는 그들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면, 그들을 그곳에 태우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몽골의 미래가 변화되는 것이리라. 정말 하나님의 섭리와 사람의 생각은 너무도 다른 것이다.

이번 몽골선교여행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몽골문화원과 외국인근로자 선교사역 그리고 재한몽골학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몽골선교의 비전을 품고 돌아오면서 구체적인 선교의 전략까지 깨닫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귀중한 소득이었다. 이번 몽골선교여행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린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