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우아는 뜻밖에 여자 분이셨습니다. 온양에서 살고 있으며, 모 증권회사 연수원에 근무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온라인에서 서로의 느낌이나 생각을 주고받다가 작년 10월 오프라인 모임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우아는 혼기가 꽉 찬 아가씨였습니다. 외모도 예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작년 가을에는 우리 내외가 여행 중에 한우아가 근무하는 증권연수원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한우아의 집안은 부모님이 농사를 짓는 가정으로 그렇게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한우아는 부모님께 의존하지 않고 자립해서 대학을 졸업하였고, 지금껏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니 혼기를 놓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올 초여름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익어가고 평생을 반려자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결혼을 약속하고 내게 결혼 주례를 부탁해 왔습니다. 흔쾌히 이들의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지난 9월 중순,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 오기 전 강화 교동에서 살 때 한우아는 애인을 데리고 인사차 교동을 찾아왔습니다. 신랑 후보는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 씩씩한 청년이었습니다. 누가 이토록 아름답고 착한 한우아를 신부로 데려갈 것인가 궁금하게 생각했는데, 활발하고 붙임성이 있는 듬직한 청년이 데려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들의 결혼 주례 부탁을 승낙하고 나서 갑자기 부산으로 내려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부산으로 이사 온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사람과의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습니다. 이 두 젊은이의 사랑의 약속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었고, 이들 사랑의 행진에 나도 동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세태를 일컬어 매우 살풍경한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불신시대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의 정황과 징후들이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고 우울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최근 내가 붙잡은 느릿느릿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구이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 구석구석에서 별빛처럼 빛을 발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느릿느릿은 이들을 소통하게 해주는 창(窓)과 같습니다.
누가 자신의 지친 마음과 육신을 호소하는 몸글을 올리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힘과 용기를 주는 댓글이 주르륵 달립니다. 깊은 사유와 성찰을 통한 묵상의 글이 올라오면 함께 마음을 정화하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현대인의 일상사에 벌어지는 재밌는 일을 공개해서 함께 신나게 웃기도 합니다.
이따금 오프라인 모임이나 각 지역을 중심으로 번개모임을 갖기도 합니다. 나이차와 성별을 초월하여 함께 느끼고 나누는 아름다운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지금껏 한 번도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느릿느릿은 참으로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볼 수 있는 창입니다.
어제 저녁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신부 한우아는 다음과 같은 글을 느릿느릿 홈에 올렸습니다.
"엄마, 나 시집가는 거 맞아?" 오늘 출근하면서 엄마한테 하고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꼭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 같고, 주위에 계신 분들도 실감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 날짜를 잡고 아직 멀었다 싶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갈 줄 몰랐습니다.
나이 먹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어서 부모님께 죄송했는데 막상 시집을 간다고 하니 그동안 속 태우고 속상한 일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옵니다. 그동안 나를 위로해주고 힘이 되어준 느릿느릿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할 뿐입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서 기쁘고 그분들을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그 힘으로 아름답고 예쁜 가정으로 느릿느릿 선배님들 따라서 열심히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사랑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느릿느릿 가족 여러분, 결혼식 마치고 여행 다녀와서 밝은 모습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한우아 올림.
오늘 정오 12시, 서울에서 있을 한우아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침 7시 아내와 함께, 그리고 부산의 느릿느릿 가족인 다른 두 분과 함께 KTX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한우아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 결혼식에 참석한 느릿느릿 가족의 뒤풀이 모임도 가질 예정입니다. 아내는 한우아 씨의 덕분으로 KTX를 타 본다고 하면서 마치 신혼여행이라도 가는 신부처럼 들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주례사 말미에 낭독할 시를 암송하며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가을 풍경을 음미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은
느낌으로 붙들 수밖에
삶은 당신이 꾸미는
나의 작은 나라입니다.
때로 절망하며 내 스스로 넘어질 때
당신의 힘을 빌려
어둡고 긴 날을 넘어 온 나
이제 당신은 내 핏속에 흐르고
나는 새날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가는 것입니다.
박철 '사랑'.
(주례사) 저는 이 두 젊은이에게 벌써 여러 달 전에 결혼 주례를 부탁받았습니다. 아마 이들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약속을 했을 무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강화 교동이라는 섬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부산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부산에서 열차 편으로 아내와 함께 올라왔습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올라오지 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당황해 할 신랑 신부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술렁이는 하객들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막 웃음이 나왔습니다. 긴장해 있는 신랑 신부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웃자고 한 말입니다. "거친 바다로 나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식에 나갈 때는 세 번 기도하라"(에리히 프롬)는 말이 있습니다. 곧 결혼이 인생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두 사람을 의미하는 인간(人間)은 혼자서 살 수 없음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결혼의 조건은 사랑이어야 합니다. 결혼은 같이 살지 않으면 못 견딜 만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결합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낭만적이기보다 현실적이기 때문에 사랑이 비록 충분조건까지는 되지 않아도 필요조건이 됩니다. 에리히 프롬은 "한 사람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인생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양가 부모님과 여러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이 두 젊은이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만났습니다. 아마 서로의 짝을 찾다가 이렇게 세월이 조금 늦어진 것 같습니다. 조금 늦게 만난만큼 더욱 사랑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 나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오늘 이 두 사람의 결혼식의 주례자로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1. 결혼의 전제조건이 사랑이니만큼 서로 잘 맞는(어울림) 부부가 되었으면 합니다. 2. 상대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떠나시기 바랍니다. 4. 상대방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갖추시길 바랍니다. 5. 서로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일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6. 서로 화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가꾸어 나가는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7. 서로가 승자가 되는 싸움을 하십시오. 오늘 결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의 보금자리를 꾸릴 박종훈 군과 이정희 양, 저는 앞으로 그대들의 삶을 지켜볼 것입니다. 오늘 두 사람의 사랑의 약속이 더욱 튼실하게 뿌리를 내려 두 분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주례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조금 늦게 만난 만큼 더 행복하고 사랑하며 사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