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어진 그곳에서 살면서 네 터를 네 꽃밭으로 만들도록 해라." ⓒ박철

이 세상살이에 회의를 품은 참새 한 마리가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먹이를 찾아 다녀야 하는 삶이 괴로웠다. 또한 쫓겨 다녀야 하는 삶도 진저리가 났다. 세상은 날로 혼탁해지고 공해와 더불어 다른 새들보다 한 톨이라도 더 먹으려 싸우고 속이고 속는 것이 싫었다. 그는 스승참새를 찾아가 말했다.

"저는 이 세상살이가 싫어졌습니다. 너무나 치열하고 너무도 비참합니다. 어제 친구가 농약이 묻은 벼를 먹고 죽었습니다. 며칠 전엔 또한 친구가 사람이 쏜 총에 맞고 죽었습니다."

스승참새는 물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참새가 대답했다.
"깊은 산에 들어가서 불쌍한 우리 참새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따라 오너라."

스승참새는 그를 데리고 근처 연못으로 날아갔다. 연못은 위에서 흘러 들어온 흙탕물 때문에 검붉었는데, 거기에 뿌리를 내린 연에서는 놀랍게도 꽃봉오리가 화사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스승참새는 그에게 말했다.

"보아라. 연꽃은 저 더러운 흙탕물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자기 터를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든다. 너도 이 험한 세상을 떠나 도피하려 하지 말고 주어진 그곳에서 살면서 네 터를 네 꽃밭으로 만들도록 해라. 그것이 진짜 보람 있는 삶이 아니겠느냐?"

신발 사러 가는 날 길에 보이는 건 모두 신발뿐이다. 길가는 모든 사람들의 신발만 눈에 들어온다. 사람 전체는 안중에도 없다. 미장원을 다녀오면 모든 사람의 머리에만 시선이 집중된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가하면 그 반대 경우도 있다. 근처 도장방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나는 갑자기 멍해진다. 어디서 본 듯도 한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 도장방을 아침저녁 지나다니면서도 도대체 기억 속에는 남아있질 않는 것이다. 마치 그 집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이 그렇다.

▲ 연꽃은 저 더러운 흙탕물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더러운 자기 터를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든다. ⓒ박철

세상은 내 마음 끌리는 대로 있기 때문이다. 조화도 그게 가짜인줄 알 때까진 진짜 꽃이다. 빌려온 가짜 진주 목걸이를 잃어버리고는 그걸 진짜로 갚으려고 평생을 고생한 모파상의 어느 여인의 이야기도 이에서 비롯된다.

세상은 내가 보는 대로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있다고 또 다 보이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게 다 보인다면 대뇌중추는 너무 많은 자극의 홍수에 빠져 착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대뇌는 많은 자극 중에 몇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선택의 기준은 그때그때의 대뇌의 튠(TUNE)에 따라 달라진다. 정말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여지게 된다면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 고로 세상은 공평하다.

신나게 기분 좋은 아침엔 날마다 다니는 길도 더 넓고 명랑해 보인다. 그래서 휘파람이라도 절로 나오는 튠이 될 땐 슬픈 것들은 아예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질 않는다. 그러기에 내가 웃으면 세상이 웃는다고 하지 않던가.

세상은 우리가 보는 것만 보인다. 해변에 사는 사람에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저녁, 문득 바라다본 수평선에 저녁달이 뜨는 순간, 아∼ 그때서야 아름다운 바다의 신비에 취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내가 느끼는 것만이 보이고, 또 보이는 것만이 존재한다.

▲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박철

우린 너무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다. 느끼질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늘이, 별이, 저녁놀이, 날이면 날마다 저리도 찬란히 열려 있는데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버린다. 대신 우린 너무 슬픈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너무 언짢은 것들만 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속이 상하다 못해 좌절하고 자포자기까지 한다.

희망도 없는 그저 캄캄한 날들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어려운 것은 아니다. 어렵게 보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다고 물론 쉬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반 컵의 물은 반이 빈 듯 보이기도 하고 반이 찬 듯 보인다. 비었다고 울든지, 찼다고 웃든지, 그건 자신의 자유요 책임이다.

다만 세상은 내가 보는 것만이 존재하고 또 보는 대로 있다는 사실만은 명심해야겠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존재하는 세상이 그래서 좋다. 비바람 치는 캄캄한 날에도 저 시커먼 먹구름 장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여유의 눈이 있다면, 그 위엔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평화스런 나라가 보일 것이다. 세상은 보는 대로 있다. 어떻게 보느냐,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다.

계절은 상강(霜降)이 지나 가을 끝자락에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도 나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옷을 벗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가장 적나라해 지는 계절이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깊은 사유를 통해 더욱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더라도
바람 한 점 없이
지는 나무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또한 바람이 일어나서
흐득흐득 지는 잎새를 바라볼 일이다
우리가 아는 것이 없더라도
물이 왔다가 가는
저 오랜 썰물 때에 남아 있을 일이다
젊은 아내여
여기서 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가지며 무엇을 안다고 하겠는가
다만 잎새가 지고 물이 왔다가 갈 따름이다.
-고은, '삶'-

박철 목사는 2004년 10월, 농촌목회를 접고 생각지도 않았던 부산으로 그의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그가 만난 새로운 삶의 울타리는 부산 수정동에 위치한 성광교회(skmchurch.org)다. 그가 20년 동안의 농촌목회를 통하여 체득한 진솔한 삶의 경험을, 도시목회에 어떻게 접목할 것이며, 꽃을 피울 것인가는 두고 볼 일이다. 또 그는 민족작가회 소속의 시인이며 각종 신문과 잡지에 프리랜서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어느 자유인의 고백」(신어림),  「시골목사의 느릿느릿 이야기」(나무생각) 등이 있다. 박철 목사는 현재 느릿느릿 이야기(slowslow.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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