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간 여러 교단의 이름으로, 여러 기독교기관의 이름으로 나온 '시국선언'을 접할 수 있었다. 건강한 시민사회에서는 누구나 공동체가 안고 있는 현안에 대하여 자신들의 의견을 말할 수 있기에 시국선언 발표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문제는 이들 교단이나 단체의 시국선언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사람 없는 넓은 들판에서 공허한 하늘에 질러대는, 설득력을 지니지 못하는 무기력한 이들의 아우성이라고 빈정대는 이들도 있다. 모처럼 나온 한국교회의 사회·정치적 '목소리'가 왜 이처럼 무시를 당하고 사회에서는 '빈정댐'의 대상이 되었을까.

우리는 그 주된 원인을 한국교회가 '고백과 회개'라는 거룩한 가르침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아니 고백과 회개는 고사하고 입만 열면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과 괴변을 일삼아 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일제 때 신사참배한 것에 대해 고백과 회개를 했다면, 해방 뒤 이 사회에서 더 호소력을 가진 사회 발언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승만 시대에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불의의 독재자와 잠자리한 음란죄를 4·19 혁명 후에라도 고백하고 회개하였다면, 한국교회는 이 땅에서 더 존경받는 공동체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긴 역사에 있었던 '굴절'에 대한 기독교적 '정리'인 고백과 회개가 없었기 때문에, 군사독재 시절에도 독재정권과 함께 호화호텔에서 구국기도회니 조찬기도회니 하며 독재자를 칭송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나라의 사람들이 '하나님나라'를 바로 보지 않고, 그 법도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나라 사람들이 세상권력과 짝하여 놀아난 간음죄를 지은 것과 같다.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이 고백과 회개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교회 안팎에서 '고백과 회개'를 통한 '과거정리'를 주장하고 나오자,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지난날 세상권력과 함께 한 그 단잠의 달콤함, 그 동침을 그리워하는 듯 '잠을 깨우는 이들'을 원망하며 질시하고 있다. 아니 이 잠을 깨우는 이들을 반기독교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행위는 일제시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끌려가 죽어간 선배 그리스도인에 대한 모욕이다.

이제 한국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의 '굴절된 과거'를 하나님과 공동체 앞에 내어놓고 고백하고 회개하자. 개인의 굴절도, 교단의 굴절도, 기독교단체의 굴절도 내어놓자. 고백하고 회개하자. 교단의 이름으로, 교회기관의 이름으로 선언문을 내기 전에 그 교단, 그 교회기관의 과거굴절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어놓고 고백하고 회개하자.

이렇게 해야 이 땅에서 교회가, 교회 지도자들이 떳떳하게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교회의 발언'이 힘차고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 지난날의 굴절을 고백하고 회개하자.

박정신 / 뉴스앤조이 편집인·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