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
한 농부가 정원에서 잡초를 뜯고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얼굴에서는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는 혼자서 푸념을 했다. "이 지긋지긋한 잡초만 없다면 정원이 좀더 깨끗해질 텐데, 어째서 신은 이와 같은 잡초를 만들었을까?" 그러자 이미 뿌리 채 뽑혀서 마당 한구석에 놓여있던 잡초가 대답했다.

"당신은 나를 지긋지긋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나도 한마디 할 말이 있다. 사실 우리 잡초들은 당신이 생각하듯 당신의 정원에 있어서 백해무익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뿌리를 흙 속에 뻗음으로써 흙을 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를 뽑아버리면 흙이 부드러움을 잃고 딱해져서 갈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또 비가 내렸을 때에는 흙이 떠내려가는 것을 막아주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건조한 시기에는 바람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것까지도 막아주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당신의 정원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없었더라면 당신이 꽃을 가꾸려고 하더라도 비가 흙을 씻어내고, 모래바람이 불어 닥쳐 제대로 해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꽃이 아름답게 피었을 때에 우리의 수고를 상기해 준기 바란다."

농부는 이 말을 듣고 자세를 바로 하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리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 이후 잡초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었다.

▲ ⓒ박철
녹이 슨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다. 신의 창조행위는 나날이 진전된다. 인간도 이런 창조의 행위에 참가하고 있다. 자연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는 매일 새로 태어난다. 지식에서 패션에 이르기까지 매일 모든 것이 변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 세계에는 창초의 행위가 시시각각으로 진전되고 있는 반면 동시에 그 반대의 일 또한 벌어지고 있다.

창조를 위해서는 낡은 것을 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드라마의 그늘에는 낡은 것이 끊임없이 썩어가야 한다. 녹이 슨다는 것은 자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낳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부수는 일이 없다면 세계는 잡동사니로 가득 차고 만다.

인간에게도 녹슨 것과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래 전에 행해진 일을 잊기 때문에 모든 과거의 기억을 간직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만이 새로운 문제에 대해 또 생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이빨과 기억이 나빠진다고 하는데, 신은 나이든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서 기억력을 약화시키고, 부드러운 것만이 노인의 몸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이빨을 약하게 하는 것과 같다. 

▲ ⓒ박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겸허한 태도에서 솟아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겸허해지면 보는 시야가 크게 넓어진다.

감사는 불만을 잠재우고 행복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욕심이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아서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고 항상 불평만을 토로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은 너무나 많다.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간과하고 남이 가진 것만을 부러워하기 때문에 항상 불만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불구자를 생각하면 성한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굶주리며 죽어가는 아프리카사람에 비하면 세끼 밥을 온전히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차 한 잔, 저 활짝 핀 벚꽃, 아름다운 아침의 새소리, 푸른 저 하늘, 황홀한 노을, 그리고 고요한 안식의 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즐거움과 안식을 주는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 한 모금 한 모금이 나의 생명력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한다면 진정 숨 쉬는 것조차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자 하는 일이 잘못되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도 있듯이, 현재의 시행착오는 더 큰 성취를 위한 밑거름일 수 있다. 우주는 항상 현재의 것보다, 혹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실을 확신하고 매사를 감사로 돌리면 반드시 더 큰 만족과 성취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매 순간 모두가 삶의 선물, 생명의 선물이다. 그러니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 금방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 그런 사람처럼 생명의 소중함에 감사를 느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이 한도 끝도 없이 솟구치면 감개무량한 눈물이, 구슬 같은 눈물이 쏟아진다. 그때는 은혜의 축복 속에 살게 되고 그 마음이 바로 천국이다. 그 천국에서 사는 사람은 부러울 것이 없다. 없는 가운데서 있게 되고, 더 풍성하게 살게 되는 그런 조건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박철
꽃잎을 이우고도
끝내 남은 꽃받침더러
아무 말씀 마시게나
꽃 진 자리마다
씨방을 열어
세상을 여물어 가려는 것이니
그 찢어진 상처 마다
사랑을 모두어 가려는 것이니
아서라,
우리도 지치고
힘든 자리마다
마음을 활짝 열어서
사랑 하나 튼실하게 여물까
그 깊은 심연으로는
귀족의 피가 흐르는지
지지리 못난 열음으로도
그 세상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침잠하는 적요 속에 부시시 몸을 열고
꽃바람 한 자락이
덧없이 흘러간다

-꽃잎

나는 흐르는 물같이 살고 싶다

교동에 들어와 몸을 의탁한 지 만 7년6개월 만에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어사지간 시골생활 20년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시골생활을 접고 떠난다고 생각하니 꼭 마음이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교동은 내 인생의 두 번째 고향 같은 곳이다. 교동을 떠난다고 하니 무슨 문제가 생겨서 떠나게 된 줄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교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주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평소 내 소신은 노자(老子)의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과 같이 살자는 것이었다. 노자의 상선약수라는 경구가 내가 교동을 떠나는 이유라고 둘러대면 안 될까? 다음과 대목인데, 제대로 된 풀이인지 모르겠다.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다.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하여 흐를 뿐이다. 그러기에 물은 도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낮은 데를 찾아가 사는 자세이다. 심연을 닮은 마음이다. 사람됨을 갖춘 사귐이다. 믿음직한 말이다. 정의로운 다스림이다. 힘을 다해 섬기는 것이다. 때를 가린 움직임이다. 겨루는 일이 없으니 나무람 받을 일도 없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내가 머무는 곳이 어디든지 이미 하느님께 맡긴 이상 내 의지와는 관계없다. 떠날 때가 된 것 같으면 또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물 흐르듯이. 진즉부터 그런 삶의 화두를 붙잡고 살아왔다. 적어도 그 점은 아무런 과장이나 가식이 없었다고 자부한다.

교동에 들어와 살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내가 섬기던 교우들은 물론이려니와 동네 사람들, 산과 들, 나무, 지나가는 풍경, 바람 소리, 밤하늘의 별, 들꽃 하나에 이르기까지 내 마음에 진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운가 보다.

오늘 아내와 마지막으로 화개산을 올랐다. 아내와 나는 가을풍경을 아쉬워하며 느릿느릿 오른다. 산 중턱 갈대숲이 바람에 춤을 춘다. 산의 고스락에 서서 교동의 너른 들판을 바라본다. 추수가 끝난 논과 추수를 기다리는 논이 확연히 구분된다.

갑자기 아내가 통곡을 한다. 가만 아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내에게 창피하게 왜 우느냐고 묻질 못하겠다. 나는 교동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마음에 담기 위하여 단전호흡을 하고 묵상을 했다. 울음을 그치고 아내가 말한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프네요. 완전 탈진한 기분이에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아내는 그날부터 몸살이 걸려 꼼짝을 못한다.

불혹(不惑)의 나이에 교동에 들어와 지천명의 나이에 교동을 떠나게 되었다. 한 때의 꿈과 청춘과 기쁨을 여기에 묻어두고 떠난다. 대신 교동을 내 마음에 담고 떠난다. 두고두고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내게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생소한 길이다. 힘껏 끌어안고 살면 되는 것이겠지. 지금 나는 새로운 길을 향하여 막 나설 참이다.

(박철 목사는 지난주 강화 교동 지석교회를 사임하고 이번주 부산 성광교회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인사이동에 따른 모든 행정적인 절차를 마치고 10월 18일(월) 이사합니다. 뉴스앤조이 독자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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