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나 역사학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이지만, 사회, 역사변동기에는 흔히 가치혼란을 겪는다. 옛 사회질서에서 통합기능을 해 오던 가치나 제도라는 것들이 새 사회에 걸맞기 전에 새로운 가치와 제도가 구축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방황하거나, 또는 어떤 사건을 어느 기준으로 보아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농경사회에서 통합기능을 해 오던 유교의 가치와 가르침들이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통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새로이 들어서는 사회를 밑에서 떠받치는 새로운 가치나 제도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아 갈팡질팡하던 사회현상이 그 좋은 예다.

이러한 역사변동기에는 어떤 가치를 쫒고, 어떤 기준으로 사회현상을 읽어야 할지 몰라 혼동과 무질서에 빠진다. 이런 역사단계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진취적이거나 전향적인 몸가짐으로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가치를 찾으러 나서기보다, 익숙한 옛 가치에 매달려 '안정'과 '질서'를 부르짖는다.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의 대결이니 갈등이라는 말도 이때에 나타난다.

그리고 기득권을 가진 보수 쪽에서 흔들리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쓴다. 이들은 질서와 안정이라는 깃대를 높이 쳐들고 대중의 '질서그리움증'을 교활하게 선동하여 옛 질서를 복원하고자 발버둥 친다. 이러한 역사현상은 인류역사에 한 번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인류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나타났다.

요즘 우리나라가 시끄럽다. '국가보안법' 문제로 시끄럽고 '신행정수도'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친일청산'으로 시끄럽고 '과거사 정리' 문제로 갈등한다. 어디를 가나 '개혁'이니 '수구'니, '진보'니 '보수'니 하며 편이 갈려 서로 목청 높이며 삿대질 한다. 광화문 거리와 시청 앞 광장이 둘로 나뉘어 있고 '집안'도 갈려 있다.

교회도 시끄럽다. 교회 안팎에서도 국보법, 신행정수도, 친일청산이나 과거사 정리와 같은 문제로 의견이 분분하다. 이 '갈등'의 한 가운데 한국교회가 서 있다. 이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염려하는 것과 같이 정말 이러다 교회도 망하고 이 나라도 망하는 것 아닌가 우려가 될 정도다.

우리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우리는 역사의 격변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역사의 주체로서, 역사변동이나 사회질서 재편성 현상을 어떻게 보고 어떤 삶을 꾸려야 하는가. 역사학적 상식에서, 또는 상식의 역사학에 기대어 우리사회의 갈등 현상을 읽어야 한다.

▲ 박정신 편집인. ⓒ뉴스앤조이 신철민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마당으로 보았고 헤겔은 '이데아'의 '정반합'의 과정으로, 마르크스는 계급 사이의 갈등의 마당으로, 신채호는 '우리'(我)와 '저들'(非我)의 쟁투로 인식했다. 예수님도 역사를 정의와 불의, 악과 선의 대결의 과정으로 가르쳤다.

그렇다. 요즈음 우리가 겪는 갈등, 혼란, 혼동도 역사가 진보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으로 읽어야 한다. 이 갈등의 과정에서 우리는 옛 생각에 묶인 닫힌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긴 인류 역사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가르침이다. 성경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고,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는 것이 옳다고 하지 않았는가.

박정신 / <뉴스앤조이> 편집인·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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