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인 가족 중에 자신을 학대하며 사는 가엾은 사람이 있다.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사람이다. 부인이 남편의 치료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했으나 남편은 수술 후유증으로 힘든 생활을 한다.

남편은 자신을 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잘못 수술을 받게 했느냐고 부인을 원망하며 온갖 행패를 부린다. 주변 사람을 원망하다 자신까지 비관한다. 2년 전부터는 자신의 몸도 씻지 않고 방안에서 꼼짝 않고 지내는 이 사람을 돌보기 위해 우리 교회 식구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그냥 내버려 두라고 버럭버럭 소리치지만 머리도 감겨드리고 손톱, 발톱도 깎아 드린다. 결국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 전문병원에 입원시켜 돌보고 있다. 때로 찌들고 엉망이 되어있는 몸을 보며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처참한 모습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어찌 이 사람 뿐이랴. 많은 사람이 겉으로는 멀쩡할지 몰라도 내면에 겹겹이 쌓여있는 미움과 탐욕으로 냄새나는 때가 있다. 훌훌 털고 청소를 하려들면 이대로 살다 가겠다고 오히려 소리 지르며 달려든다. 서로가 돕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하는 수없이 하늘에 맡겨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불쌍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을 열고 공기를 순환시키듯, 세수를 하고 이 닦듯이 씻어야 한다. 며칠에 한번은 목욕을 하고, 가끔은 집안을 대청소 하듯이 씻고 정리하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생활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폐해지고 스스로 썩어져 자멸하게 된다.

우리가 그분을 병원으로 격리하게 된 것은 고통 받는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다. 몸도 성치 않은 아내가 남편 수발에 지친데다 고등학생인 아이는 아빠가 소리 지르는 것에 떨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와는 너무도 다른 처참한 지경이라 가족들은 체념한 터였다. 가난해서 병원에도 못 가고 의논할 대상도 없이 그저 상황을 이어나가는 그들을 외면하지 못해 우리는 뛰어들었다.

병원에서도 환자는 찌들어 온몸이 오그라져 있다. 혀를 내두르며 치료를 하지만 시기를 놓친 것 같아 안타깝다. 부인과 자식이라도 이 짐에서 놓여 쉴 수 있게 해주고 지친 그들을 위로해야 했다. 지금 엄마와 아들은 가벼워진 어깨가 어색해 실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혹시 더 어려운 고난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 같다.

더러운 때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자기를 꽁꽁 싸매고 원망만 하는 병든 한 사람이 주는 고통은 가정 전체를 불행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속이 썩어 냄새나는 교회 지도자들로 인해, 여러 성도들과 그러한 교회를 옆에 둔 이웃은 고통 한다. 청소하고 목욕해야 할 교회와 지도자들의 주변에 있지는 않는가. 아니 덕지덕지 붙은 때가 너무 부끄러워 한껏 움츠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래서 사회와 언론에 교회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면 입 막으려고 애꿎은 성도들 동원하며 시위하는 것인가. 일반 언론에서 말할 때 오히려 하나님의 간접 음성으로 듣고 변화의 용기를 내지 못한단 말인가? 무얼 그리 잘했다고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가. 사회에서는 교회 비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이 교회가 세상의 비판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자신 없기에 한없이 추락하는 것인가.

창피할수록 빨리 청소하고 씻어내자. 바로 지금이다. 회개와 변화는 교회가 계속해서 가야할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전도가 되는 것이지 안에서 쉬쉬하며 괜찮다고 꽁꽁 싸매면 냄새만 난다. 깨끗하게 하시는 전문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오늘도 우리를 초청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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