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날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이 터진다. '원로'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장외투쟁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사건도 벌어졌다. 법과 정부기구 위에 있다는 듯이 위세당당하게 말이다. 교회도 그렇다. 왜 그렇게 단체가 많은지 혼란스럽다. 모두가 '한국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다.

두꺼운, 너무나 낮두꺼운 '성령의 사람'(?)

최근에는 '한국기독교성령100주년대회'라는 단체에서 한국기독교 '성령의 사람 100인'을 선정해서 말이 많다. 단체가 수도 없이 많고 또 그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관심 가질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일을 하면 그것은 우리 기독교공동체 구성원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공공의 영역'이다.

보도에 따르면, 그 단체의 대표와 선정 위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100인 명단에 넣었단다. 소나 돼지가 웃을 일이다. 철없는 어린 아이도 손가락질 할 일을 했다. 양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남이 주어도 사양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이들은 그러한 역사적 인물선정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들의 행위는 기독교의 미덕이라는 종됨이나 자기낮춤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 사람들의 양식과 상식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행위와 행동을 막무가내로 해대니 교회지도자들이 교회 안팎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이 선정한 일물들 가운데는 친일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백낙준이 그러하고 김활란과 고황경이 그렇다. 양주삼도 그렇고 최태용과 채필근이 그러하다. 이들은 윤치호를 '독립운동' 분야의 인물로 선정했는데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선정이다. 그가 근대 시민운동을 펼치긴 했어도 식민지시대 내내 '독립운동'을 뚜렷이 하지도 않았고, 일제 말에는 전쟁동원에 앞장선 친일인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누가, 왜, 어떤 기준으로 한국기독교의 '성령의 사람'으로 뽑았는지 이제는 공공의 마당에서 논의하고 토론해야 한다. 호텔방 구석에서 끼리끼리 모여 한국기독교의 대표적 인물을 선정하는 것은 기독교와 우리 사회의 '올제'를 위해서 비판받아야 한다.

친일인물이 성령한 사람의 '지름길'

밖에서는 개혁을 이야기하고 어두운 과거의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곧고 건강한 미래를 만들어가자고 야단이다. 그런데 한국기독교 단체가 '친일 인물'을 '성령의 사람'으로 선정했다. 정의의 역사를 세우려는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어제' 이 땅에서 이러저런 공헌을 했다고 소리치기에 앞서 역사의 어두운 시대에 교회가, 교회 지도자들이 현실과 타협하고 굴종한 행적을 고백하고 회개의 기도를 올리어야 할 때다.

교회가 앞장서 '어제'의 굴절을 고백하고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일제시대만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 권위주의와 군사독재시대에 교회가, 교회지도자들이 독재자들과 호화호텔에 자리하여 독재자를 '모세'니 '여호수아'니 하며 독재자를 칭송하고 함께 춤추어 온 '가까운 '어제'도 포함되어야 한다.

▲ 박정신 편집인. ⓒ뉴스앤조이 신철민

이렇게 하는 것이 10년 후, 20년 후에 또다시 '과거사 정리'로 혼란을 겪는 것을 막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이 세상권력과 짝하는 것을 앞서 막는 일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국기독교가 이 사회, 이 시대에 '소망의 공동체'가 되는 길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앞으로 낯 뜨겁게 스스로 이름을 집어넣는 몰염치를 막는 일이다. 왜냐하면 '가까운 올제'에는 그 '명단'에 든 인사들이 '역사 검정'을 받고 '역사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아, 언제 이 땅에서, 언제 우리 기독교회에서 존경스런 지도자를 보게 될까.

박정신 / <뉴스앤조이> 편집인·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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