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소 벽에 걸린 십자가상은 시간과 함께 빛과 그림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독특한 예술품이다. ⓒ정시춘

1997년 미국 시애틀 대학 캠퍼스 안에 건립된 이 채플은 건축의 형태와 공간 디자인에서 인간의 감성을 표현하고, 예배의 신비를 빛을 통해 공간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미국의 건축가 스티븐 홀의 작품이다. 그는 대지와 건축의 통합과 공간 안에서 빛의 다양한 효과를 추구해왔고 이 채플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채플의 건물을 남, 북으로 좁고 긴 부지의 북측 끝에 배치하였고, 남측의 도로와 건물 사이에 남은 넓은 공지에 진입로를 따라 길게 녹색의 잔디밭과 낮은 연못을 배치하였다. 이 녹색의 잔디밭은 학생들의 쉼터로 개방된 캠퍼스의 오픈 스페이스다. 또한 잔디밭과 건물 사이에 있는 장방형의 넓은 연못 안에는 인근 산에서 운반해온 작은 바위 한 개와 야생풀을 담은 박스 하나를 두었다. 이 두개의 점이 넓은 수평면 위에 비친 건물의 모습과 함께 이곳을 사색의 공간으로 만든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통 조경 수법에서 연못 안에 작은 섬을 만드는 것을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특별하게 고안된 종탑을 건물에서 떨어진 장소인 잔디밭과 연못 사이 모서리에 채플의 형태와 어우러지도록 위치시켰다. 이로 인해 연못과 잔디밭을 포함한 대지 전체가 확장된 하나의 건축으로 통합된다.

▲ 채플과 연못 잔디밭 그리고 종탑으로 구성된 대지 전체가 하나의 건축으로 통합되어 캠퍼스의 중심을 이룸. ⓒ정시춘

잔디밭과 연못을 따라 직선으로 난 긴 진입로는 채플의 출입문을 통과하여 내부의 통로를 거쳐 예배실 입구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 예배의 준비과정 공간으로 설정되었다. 밝고 부드러운 목재로 만들어진 넓은 출입문은 크고 작은 두개의 문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문에 7개 눈 모양의 작은 창이 서로 다른 각도로 설치되어 있어 밤에 빛을 방출함으로써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예배당 입구까지 긴 통로와 그 우측으로 이콘을 설치한 벽과 넓은 현관홀이 나타난다. 이 통로와 홀은 공간적으로 하나이지만, 진입 통로를 명확히 구별시키기 위해 난간과 경사로가 설치되었다. '성 이그나시오의 영적 여행'을 보여주는 5개의 이콘들 앞에는 기도대와 촛대가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예배에 사용되는 성서를 올려놓은 성서대와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다.

▲ 예배홀로의 진입통로와 홀 그리고 이콘과 성서대를 설치한 입구홀. ⓒ정시춘

통로로부터 비켜 외부를 면해 있는 현관홀에는 앞마당 연못을 향해 열린 넓은 유리창을 설치하여 전망과 함께, 낮 동안과 1년 중 계절에 따라 햇빛이 연못과 고도로 광택을 낸 콘크리트 바닥에 반사되어 현관홀의 천장에 어른거리는 빛을 만들어 냄으로써 외부와 내부를 연속된 공간으로 통합하고 있다.

▲ 연못이 있는 앞마당으로 열린 현관홀. ⓒ정시춘

한편, 채플의 경사진 입구 통로 왼쪽 벽에는 의도된 불규칙한 4개의 창문들이 설치되었는데, 여기에는 성 이그나시오의 영성훈련 텍스트에 나오는 4개의 주제 즉, Conversion(개종), God's Indwelling(하나님의 내재), Christ's Laboring(그리스도의 사역), 그리고 부활(Resurrection)에 대한 설계자 스티븐 홀의 해석을 담은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다.

이 통로의 끝 곧, 예배실의 입구 앞에는 세례반이 하나의 오브제로 놓여 있다. 이 세례반은 사각의 받침대 위에 반구형의 수반을 올려놓은 모양인데, 출입문과 제단, 십자가 등에 사용된 것과 같은 종류의 목재와 같은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세례반의 물 표면에는 순환펌프에 의해 은은한 물결을 일으켜, 믿음의 공동체 안으로 그리스도인의 들어옴을 표시하는 "살아있는 물"을 상징한다. 세례반의 브론즈 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다:  "어떤 것도 삶이 연합되어 있는 곳을 나누지 못 한다: 하나의 믿음, 하나의 세례반, 하나의 세례."

▲ 예배홀 입구에 위치한 세례반으로 공동체 안으로의 입장을 의미하는 장소. ⓒ정시춘

공간적으로는 이곳이 과정공간에서 목적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해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서 예배실로 돌아보는 순간 빛으로 충만하여 신비감을 일으키는 예배공간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것은 하나의 드라마다. 이러한 건축적 수법은 일주문에서 금강문, 천왕문 등을 통과하며 긴 통로(과정공간)을 지나 대불전 앞마당(주공간, 목적공간)으로 들어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종교공간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화엄사의 보제루 옆을 돌아 나타나는 각황전과 대웅전이 그러하고, 해인사의 구광루 밑을 거쳐 오르면서 나타나는 대적광전, 부석사의 범종루 또는 안양루 밑을 통과하면서 나타나는 무량수전의 모습이 그러하다. 다만 이 채플에서 과정공간이 인공적·직선적 공간이라면, 한국전통사찰에서는 자연적이며 꺾인 공간들이다.

채플의 예배실은 여러 개의 분절된 매스들로 집합체를 이루고 있으며, 모든 벽체는 적절히 분할하여 공장에서 만든 콘크리트 판넬을 현장에서 세워 조립하는 공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위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곡면을 이룬 지붕들이 덮여있고 그 아래에 광창(光窓)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 광창들을 통해 각 방향에서 내부의 기능에 따라 다양한 빛이 실내로 도입되어 예배공간을 다양한 빛의 집합체로 만든다. 평지붕으로 덮인 통로와 현관홀 위에도 두개의 광창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예배공간에 유입되는 스티븐 홀의 빛은 특이하다. 즉, 광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실내에 직접 들어오지 못한다. 소위 「빛의 차단장치(baffle of light)」라고 불리는 넓은 벽을 창 앞에 세워 직사광선을 차단해 놓았기 때문이다. 각 차단장치는 뒷면이 밝은 색으로 도장되어 있다. 따라서 광창을 통해 들어 온 빛은 이 벽에 반사되면서 벽에 칠한 색으로 바뀌고 굴절되어 주위 벽에 은은히 비친다. 그리고 그 벽 또는 옆에 보색의 작은 렌즈(창)들이 설치되어 작고 강렬한 빛을 발한다. 그래서 예배공간은 신비하며 생명력을 가진다.

▲ 예배공간에 유입되는 빛의 의도적 연출. ⓒ정시춘

사실 내부공간의 빛의 연출은 현관홀과 예배실 진입 통로에서 시작된다. 그곳에는 자연광이 그림자와 함께 있어 예배실로 들어가면서 빛과 그림자의 연출을 경험하게 되며, 긴 통로를 따라 예배실로 들어 갈수록 신비한 빛을 경험하게 된다. 성소 벽에 걸린 십자가상은 시간과 함께 빛과 그림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독특한 예술품이다.

이 광창들은 이 채플에서 밤 예배가 있는 날에는 역으로 빛을 내부에서 밖으로 내뿜어 캠퍼스 내의 모든 방향으로 빛나는 봉화가 된다. 이 빛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새벽까지 비춘다.

▲ 캠퍼스의 밤을 비추는 채플. ⓒ정시춘

성소의 가구들은 물론 건물의 가구들의 대부분과 벽 등이나 펜던트 등과 같은 조명기구들까지도 건축과 조화되도록 설계자인 스티븐 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예배실 후면 안쪽에는 반쯤 개방된 성체성사실이 부속되어 있는데, 이곳은 진입과정통로 축의 끝에 해당된다. 이곳은 병자와 개인 헌신 기도자를 위해 성체성사용 빵을 예비해 둔 곳이다. 이 방의 중심 이미지는 장막이다. 박스형의 방 안에는 한그루의 나무가 서 있고 거기에 호박색 유리에 잎과 씨앗을 그려 넣어 만든 촛불 램프 매달려 있어 방을 밝히고 있다. 스티븐 홀에 의해 디자인된 벽창에는 희랍문자로 예수 이름의 첫 번째 3문자인 'IHS'가 새겨져 있어 햇빛에 발산된다.

이 방의 내부설비를 디자인한 시애틀의 미술가 Linda Beaumont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방 안에서 잡다한 생각들이 씻겨져 버리고, 한 사람이 깊이 생각하고 그 생각이 명상과 기도로 변하기를 희망한다."

▲ 개인의 기도와 명상 그리고 성체성사를 위한 방으로 장막의 이미지를 표현함. ⓒ정시춘

한편, 채플의 설계와 건설은 처음부터 사용자인 학생들의 영적 요구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학생들은 설계과정에 중요한 역할로 참여했다. "나는 내가 수행한 다른 어떤 대학의 프로젝트보다 이일에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였다"라고 스티븐 홀은 말했다. 학생들의 코멘트들은 디자인을 정착시키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 결과는 과거에 뿌리를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디자인으로 나타났다.

이 채플은 미국 건축가협회인 AIA의 뉴욕지부로부터 디자인상을 수상했고, 채플의 모형은 뉴욕의 현대 예술 박물관의 영구 수장품이 되었다.  

The Chapel of St. Ignatius in Seattle University
Seattle, USA
Architect: Steven Holl, 1997

(빛을 통해 예배의 신비를 표현한 미국 시애틀 대학 채플)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