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고등학교 때의 한문 선생님을 그리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잊고 지낸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돋았습니다.

선생님은 언젠가 우리들이 한문 수업을 게으르게 한다고 갑자기 교실 창문으로 뛰어내리겠다며 자살소동을 벌이셨습니다. 우리들이 선생님 발을 붙잡고 용서를 구하고 사죄를 한 다음에야 내려오셨습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그 일을 연중행사로 치르셨습니다. 선생님 별명은 녹음기였습니다. 수업의 내용이 언제나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시작할 때 선생님은 지난 시간에 어디까지 공부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들은 지난 시간에 이미 배운 것을 배우지 않았다고 속여서 선생님의 수업을 다시 들었습니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한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우리는 얼마나 킥킥대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은 수업의 내용처럼 생활까지 한결같았습니다. 선생님은 자전거로 출퇴근하셨으며, 자전거 뒷자리에는 언제나 납작한 도시락이 묶여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은 언제나 신중하셨고, 최선을 다하여 느리거나 빠르지 않게 임하셨습니다.

갑자기 불타는 열정이 아니라 꺼지지 않고 언제나 일정한 온도의 열정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선생님은 일제시대에 그 유명한 동경제대를 졸업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친구들은 모두 그 시절에 두각을 나타내며 중앙의 무대에서 일하였고, 선생님도 그들로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교사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퇴임식에서 선생님은 비로소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 박명철 기자. ⓒ뉴스앤조이

"나는 모든 길을 버리고 교직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식민치하를 보내고 가난에 찌든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젊은이를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다시 태어나더라도 다시 이 가시밭길을 가겠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디선가 박수가 나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하나둘씩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습니다. 박수는 10분 이상 계속되었고 박수소리에 선생님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시다가 박수가 그치자 우리를 향해 훠이 손을 한번 흔들고는 조회대를 내려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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