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며 열린 28회 그리스 아테네올림픽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육체적 기량과 한계를 확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겨루는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올림픽 정신과는 많이 빗나간 상업주의나 과도한 경쟁으로 약물소동이니 심판관 매수니 하며 각종 반칙이 있어 씁쓸하다. 우리나라는 금메달만을 지나치게 부각하여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고 일등만을 부추기는 잘못된 경쟁심과 가치관을 심어준다.

물론 불완전한 사람들의 축제이니 모두 다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분명하고 의도된 반칙을 대강대강 덮어두거나 백지화해서는 안 된다. 운동 경기 중 반칙은 어떤 면에서 있을 수 있지만 적발되면 즉시로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는 것처럼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

반칙을 하지 않고는 못 살아남나

반칙세상 속에 물든 우리는 이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모든 영역에서 교묘한 수법으로 눈속임을 한다. 이런 현상을 반영이나 하듯 지난 2000년 2월에 흥행한 영화 '반칙왕'이 생각난다. 영화 '반칙왕'이 대박을 터뜨린 이유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과연 "현시대의 진짜 반칙왕은 누구냐?"는 물음과 반칙을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반칙을 부추기는 사회"에 대한 비웃음일 것이다.

낮에는 평범한 은행원이지만 밤에는 가면을 쓰고 반칙 전문의 프로레슬러로 돌변하는 영화 '반칙왕'의 주인공은 현실 사회를 지배하는 주역이라고 꼬집고 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세상살이는 프로레슬링처럼 어차피 반칙이고 쇼다"라는 영화의 한 대사의 대목처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반칙왕들이 판을 치고 있지 않는가?

헌금사용처 불분명…상급 경쟁심 유발도 반칙

반칙을 막아야할 교회가 사회보다 더 높은 기량(?)으로 반칙을 하면서도 여기에 한술 더 떠 그런 것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 몇 가지 반칙들만 열거하자면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는 것, 교회건축으로 인한 과도한 빚과 헌금강요 하는 것, 교회가 어떤 특정인의 소유인양 주인 행세하는 것, 헌금의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 목사가 성도위에 군림하는 것, 교회지도자들의 비리가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쉬쉬하는 것, 천국 가서 상급 많이 받으라고 무거운 짐 지우며 경쟁심 유발하는 것 등은 기독교 복음을 훼손하는 심각한 반칙이다.

이런 반칙 행위들은 반드시 자백하고 치유되어야 밝은 미래가 있는 것이다. 어렵다고 현실의 길을 택하여 옳지 못한 것을 타협하는 것은 반칙이며 과거의 잘못된 일을 지나간 것이니 덮어두자는 것도 분명한 반칙이다.

십자가는 반칙을 행한 인생에 대한 그리스도의 대리적 처벌(레드카드)이기에 스스로 고백하는 이에게 승리(구원)의 은혜가 주어진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기에 반칙 할 수 없으며 반칙을 했더라도 용서를 구하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보니 금메달과는 비교될 수 없다. 그러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성도들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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