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모를 들풀에도 하느님의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박철
인터넷 신문을 비롯해 여기 저기 잡지나 종이 신문에 실린 내 글과 사진을 보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교동을 찾아온다.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교동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관광을 목적으로 교동에 온 사람들은 배에 차를 싣고 와서는 교동을 휘 둘러 보고 간다. 그리고 이내 실망하고 만다. 이유는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엇을 기대하고 왔는지 모르지만 짐작하건대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이벤트 상품, 음식점 등이 부재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교동을 방문해서 모두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좋은 느낌을 받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 참 이상하다. 똑같이 교동을 방문해서 어떤 사람은 실망하며 돌아가고, 어떤 사람은 좋은 느낌을 받고 간다. 눈으로 보는 것은 거의 비슷한데 말이다.

나는 주로 교동의 자연이나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쓰면서 한 번도 눈살을 찌푸리게 할 이야기를 쓴 적이 없다. 그렇다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허황하게 부풀려서 쓴 적도 없다. 있는 그대로 내 느낌을 전달했을 뿐이다. 나는 교동에 들어와 산지 8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동을 아끼고 사랑한다. 뭍으로 외출을 했다가 돌아와 월선포 선착장에 발을 들여 놓을 때 나는 교동이 내 고향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 가을은 코스모스가 미소를 짓는 계절이다. ⓒ박철
나는 가급적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자연을 대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글이나 사진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이다.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에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지금은 사람이 하나도 살고 있지 않지만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 울안에서 복덕이며 살았을 것이다. 장독대에 앉아서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담쟁이덩굴에 햇살이 반짝거린다. 순한 바람이 불자 담쟁이덩굴 잎이 가늘게 떤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도회지 그 어떤 대저택보다 아름답고 훌륭한 집으로 느껴진다.

아침 일찍 산책을 하다가 나뭇가지에 거미가 만들어 놓은 거미줄에 영롱한 이슬방울이 맺혀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침햇살에 이슬방울이 반짝거린다. '아!'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슬방울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요즘은 어떤가? 처서가 지나자 하늘이 높아지고 맑다. 뭉게구름이 춤을 추듯이 천천히 움직인다.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해거름 저녁노을이 바다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에는 온 들판이 물든다. 그러면 인간의 모든 허욕(虛慾)이 사라진다.

▲ 거미줄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보석처럼 빛난다. ⓒ박철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시간에 그냥 눈으로 하늘을 보면 아무 색이 없지만 삼각 프리즘으로 하늘을 보면 아름다운 일곱 가지 무지개 색으로 보인다. 노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노랗게 보일 것이고, 파란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일 것이다.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교동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점은 배를 타는 문제다. 배 시간표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 때나 불규칙하게 가고, 보통 때는 15분이면 건널 수 있는 것을, 물이 빠지면 바다를 건너는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게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다.

교동에 처음 온 사람이나 어쩌다 오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 그만큼 삶의 여유가 없고 조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동 사람들은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다리는데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빨리 가는 것은 편리한 것이고, 느리게 가는 것은 불편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갈수록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빈집.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집이 있을까? ⓒ박철

오늘날 우리는 무수히 '보는 것'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엇을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선택사항이 되고 있다. 보아서 기쁨이 되고, 보람과 희망을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보아서 두려움과 근심이 되고 평화를 깨트리는 것이 있다. 보아서 영혼과 육체가 건강하게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보아서 병들게 하고 파괴 되는 것이 있다.

세상에는 시시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다 나름의 존재의미가 있다. 길가에 들풀 하나, 굴러다니는 돌멩이, 지나가는 바람 한 점에도 하느님의 생명의 신비가 담겨져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마음이 귀한 것이다.

며칠 전 교동을 방문하고 돌아간 사람이 내게 메일을 보내왔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이다.

"목사님, 교동 구경을 참 잘했습니다. 목사님을 뵙지 못하고 왔지만, 교동의 너른 들판을 둘러보면서 바로 여기가 삶의 도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석리 망향단에 올라가서 연백의 산야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나도 울고 아내도 울었습니다. ○○○의 냉면 맛도 특이하고 시원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른 고추도 한 자루 샀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더욱 낮추어 자연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대하고 섬기는 목사님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 처서가 지나자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박철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새벽녘 영롱한 이슬을 달고 있는 풀잎을 보라. 나뭇잎에 빗방울 떨어지는 것을 보며 살아있음에 전율해 보자. 곱게 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삶의 겸허함을 배워보자. 때로는 시멘트 구조물 속의 인공조명 아래서 나와 하늘에 걸린 달을 바라보기도 하자. 아아, 너무도 오래 계절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참회의 감정과 함께 풀벌레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무엇보다 저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 생명의 빛을 함께 느끼고 바라보자.

지금 과연 나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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