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에 대해 한마디 해서,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쓴 소리' 해서 나라가 시끄러운 적이 있다. 요즘은 '신행정수도이전' 문제에 대해서 133명에 달하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원로'라는 분들이 성명을 발표하여 소란한 나라를 더욱 소란케 하고 있다.

이들이 신행정수도이전에 대하여 찬성하든 반대하든 우리 공동체의 구성원이기에 한마디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본다. 다만 원로들이란 사람들이 자신을 우리사회의 '원로'라고 지칭하거나 언론에서 원로들이라고 치켜세우는 행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른바 원로라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그들에게 원로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는가. 어떤 법으로 이들이 원로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가. 도대체 원로라는 말 자체가 역겹다.

메이지 일본에서 이토 히로부미나 야마가타 아리도모와 같이 법 위에, 정부기구 위에 군림하는 '겐로'(元老)와 같은 뜻의 원로라면 역겨움은 그 도를 더해 간다. 우리가 한 사회에 살고 있고 발전하는 사회를 추구하고 있는데 누가 원로라는 봉건적 딱지를 아직도 즐기고 있는가. 재발 원로라는 말을 쓰지 말자. 봉건적인 말이고 일본냄새가 풍긴다.

우리를 더욱 노엽게 하는 것은 이른바 이 원로들이 우리 법 위에, 우리 정부의 기구 위에 그리고 우리 사회 위에 군림하는 듯이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성명내용을 읽노라면 이 원로들의 봉건적이고 고압적이며 협박적인 의식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이를테면, "헌법소원은 합헌성을 따지는 것이므로 헌재결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대목에서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는 "정부가 다시 적절한 응답을 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수도이전졸속추진반대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조직적으로 저항"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얼굴 두껍게도 자신들을 원로라고 치켜세우며 자기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라고 으스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묻는다. 이 위압적이고 봉건적이며, 초법적이고 초국민적인 원로들은 누구인가. 누가 그들을 원로라고 부르는가. 누가 그들에게 원로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는가.

시민단체의 대표면 그 이름으로, 종교공동체의 지도자라면 그 이름으로, 그리고 교수라면 그 이름으로 자기들의 견해를 밝히면 된다. 일본 냄새나는 봉건적인 딱지를 붙여 자기들의 주장을 따르지 않으면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저항할 것이라는 사회협박을 하는 것은 옳은 말도 아니고 바람직한 민주시민의 태도도 아니다.

시민으로서 말할 것이 있으면 하라. 종교 지도자로서, 시민단체 대표로서, 개인으로든 집단적으로든 할 말이 있으면 당연히 하면 된다. 교수로서 사업가로서 언제 어디에서든지 할 말이 있으면 하라. 그래야만 건강한 시민사회가 만들어진다.

▲ 박정신 편집인.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러나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이 사회에 걸맞는 의식과 양식을 가져야 한다. 한 시민으로서도 그러하지만 특히 이 사회 각 분야에서 '큰 일'을 해와 존경을 받는 이들은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어떤 일을 좀 했다고 하여 정부기구 위에, 법 위에, 그리고 이 사회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의식과 자기들이 누구보다도 올바른 생각을 지닌고 있다는 행위를 버려야 한다.

이제 밝고 건강한 우리의 시민사회의 올바른 명제를 위해 원로라는 '봉건의 감옥'을 스스로 나와야 한다. 누구에게도 이러한 '봉건의 딱지'를 붙여주지 말자.

박정신 / <뉴스앤조이> 편집인·숭실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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