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건국신화에는 그 나라의 정체성에 관한 의미들이 녹아있다. 애굽에서 노예들을 탈출시켜 이스라엘 민족을 형성하게 만든 역사를 기록한 출애굽기는 다윗이 왕좌에 오르는 기록과 더불어 유대민족의 건국신화라고 할 만하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찬찬히 읽어보면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은유를 만날 수 있다.

요즘 출애굽기를 다시 묵상하고 있는데 가슴에 와 닫는 부분이 바로 '만나'다. 신은 모든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바다를 가르기도 하시고, 그의 백성들이 목말라 할 때 반석에서 물을 나게 하기도 한다. 또 그의 백성들이 굶주릴 때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허기를 면하게 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 만나는 하루가 지나면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먹을 것 이상을 거두지도 말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기도 하지만 더 많은 만나를 거두어 보아야 힘든 노동만 더할 뿐 아무런 실익이 없다. 그저 필요한 만큼 거두고 먹을 만큼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은 것을 저장할 필요도 남의 만나를 빼앗을 이유도 없다.

출애굽기의 후반에 되풀이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바알 신에 대한 경계다. 바알신은 농경신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도망쳐 나온 애굽과 마찬가지로 농경은 생산물의 잉여에 대한 저축을 가능하게 한다. 생산물의 잉여는 계급을 낳고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게 만드는 토대가 된다. 더 많은 물자를 가지고 그 물자에 대한 저축이 가능하게 됨으로 하루하루의 삶에 필요한 것 이상의 노동에 매진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그 산물로써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고대문명의 흔적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만나를 통해서 만나는 하나님은 잉여노동을 할 필요를 없게 한다. 더 많은 부를 축적할 방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신이다. 그저 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얻는데 만족하고 살아가는 삶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인물들의 주된 삶의 양식인 목축도 이와 유사하다. 농경이 아닌 목축을 통해서는 부를 축적할 수가 없다. 짐승들은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에 보존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삶들은 잉여가치의 산물인 조형물이나 도시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남기지 못하고 있다.

후세에까지 무엇을 남기는 것. 그래서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가 자신을, 혹은 자신이 남긴 것을 기억하게 한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정신이 아니다. 예수는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공중에 나는 새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후일의 일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설파했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썩어질 세상의 부와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방법을 따라서 열심히 살아가라는 것이다. 무엇을 축적하려고 애쓰지 말고, 무엇을 남기려고 신이 우리에게 준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날마다 기도하며, 그날이 이 세상에 이루어져 하나님 나라가 임할 것을 노력하는 것. 성서는 우리에게 그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요즘 세상은 썩지 않는 만나. 사라지지 않는 만나 때문에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자본이라는 이름의 그 썩지 않는 만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을 구속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악의 근본이기도 한 이 자본의 위력은 또 하나의 바알신앙과 다르지 않다. 자본에 대한 추종은 정의와 평화의 나라에 대한 갈망을 뛰어넘는다. 가히 우리 사회의 신은 자본이다. 그 자본의 부스러기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을 하고,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하는 등 온갖 못된 일은 다 행하고 있다.

오늘, 나 또한 바로 그런 삶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만나를 먹으며 살던 탈출한 노예들의 삶과 그들의 신앙고백을 묵상한다. 그리고 내가 감히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참 신앙을 발견한다. 신은 오늘도 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지 않느냐고 나에게 묻고 있다. 오늘 저녁 은밀한 시간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과연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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