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노동자 자녀들 중 약 20%만이 취학하고 있다.(사진: 박용훈)
몽골 아이 지혜는 부모님을 따라 4년 전 한국에 왔다. 지난해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아이라는 느낌이 많았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올해부터는 부쩍 처녀티가 나는 것이 또래의 아이들보다 성숙한 느낌을 준다. 사실 나이로 따지면 벌써 중학교 2학년이 되고도 남았지만 나이에 맞춰 학교를 갈 수 없었기에 이제야 중학생이 되었다.

지혜뿐 아니라 다른 많은 외국인노동자 자녀들이 제 나이보다 어린 동생들과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기 일쑤다. 외국인노동자 자녀에게 교문을 개방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00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불법체류자 자녀라 하더라도 관할구청에서 출입국사실증명서나 외국인등록사실증명서를 발급 받아 초등학교에 제출할 경우, 인권적인 차원에서 입학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지난해 국가인권위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노동자 자녀 약 1천 명 중 실제 학교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은 2백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문은 개방했지만 입학허가는 학교장 재량에 맡겨놓아 결국 학교장 성향에 따라 외국인노동자 자녀들의 취학 여부가 갈리는 벽을 남겨놓은 셈이다.

어쨌든 운 좋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지혜와 친구들은 그 부모들이 몇 년 걸려도 쉽게 구사하기 어려운 한국말을 마치 모국어처럼 구사한다. 그 덕에 처음 지혜를 만났을 때 '몽골에서 살다온 한국아이라서 몽골어를 잘 하는구나'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자연스럽게 이중언어를 구사하게 된 지혜와 그 친구들 삼총사는 1년 넘게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에서 통역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 흥겨운 어린이날 축제에 함께 한 이주노동자 가족들, 이들 중 누군가는 지금 이산가족이 되고 있다.(사진: 정영진/ 이주여성인권센터)

처음에 진료소에서 만난 그 아이들은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서 아예 통역 봉사자로 눌러앉은 셈이다. 매월 첫째, 셋째 주 일요일에 운영하는 경동교회의 선한이웃 클리닉과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 운영되는 정동제일교회 정동아가페클리닉은 이들이 통역봉사자로 주름잡는 활동무대다.

진료소를 찾은 몽골 어른들은 지혜와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픈 곳을 상세히 설명도 하고, 무슨 진료를 받아야 되는지 시종 진지하게 묻곤 한다. 그러면 지혜는 아가페클리닉의 치과 진료가 있는 지하층에서부터 일반 진료실이 있는 3층까지 쉼없이 오르내리며 필요한 곳마다 달려가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낸다.

▲ 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일본과 같은 특별체류허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사진: 정영진/이주여성인권센터)

몇 주 전 일요일 진료소에서 만난 지혜는 먼저 집에 가겠노라며 인사를 하러 와서는 한껏 풀이 죽은 모습이다. 왜 혼자 먼저 가냐고 하니 다른 친구들이 자꾸 자기한테만 뭐라고 한다며 삐쳐서 먼저 가겠다는 것이다. 한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볼 참이었던 터라 잠시 그 아이를 붙잡고 말을 붙였다.

방학해서 어떻게 지내는지. 중학생이 되니 어떤지. 또 요즘은 뭐가 제일 관심 있는지 등. 한국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타국생활을 잘 견디고 적응하는 아이가 신기해서 이것저것 시시콜콜 물어보았다.

친구들 때문에 별로였던 기분을 바꾸기라도 하듯, 이어지는 질문에 아이는 금세 중학생이 되어서 어려워진 학교공부에서 좋아하는 친구 타입, 연예인 얘기까지 최근의 일상을 들려준다. 그냥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으련만 최근 상황 때문에 그의 부모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혜의 부모는 둘 다 4년 이상 국내 체류한 불법체류자여서 지난해 말 있었던 4년 미만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합법화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이다. 고용허가제 전면 시행을 앞두고 정부에서 강력 단속의지를 밝힌 터라 그 부모의 근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혜의 부모는 다행히 지금까지 단속을 면해 강제추방은 피할 수 있었지만 고용허가제 실시와 함께 강화된 단속과 추방으로 결국 본국으로 돌아갈 결심을 했다고 한다. 그럼 지혜도 부모와 함께 몽골로 돌아가는지를 묻자 지혜는 "아뇨"라고 잘라 말한다. 지혜의 부모는 돌을 넘긴지 얼마 안 되는 지혜 동생만 데리고 귀국할 예정이고 지혜는 체류비자가 있는 할머니와 함께 남아있을 것이라 한다. 물론 그 부모가 지혜를 남겨두고 가는 일이 어디 쉬웠을까마는 같이 가자는 부모를 떠나보내는 건 바로 아이다.

"엄마랑 아빠가 같이 가자고 하는데, 전 여기가 더 재미있어요. 그래서 여기 있을 거예요." 이미 자기 친구들 중에 많은 아이들이 몽골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는 여기처럼 재밌는 일이 많지 않다고 돌아간 걸 후회한다는 것이다. 아직 철부지라서 부모 없이 타국에 남는다는 게 어떤 건지를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이미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이 확고해서 이곳에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겠다는 것일까.

가까이 보면 여전히 아이 모습을 한 그 아이에게서 많은 답을 찾아내기는 힘들었다. 아이는 여전히 별 두려움 없이 웃고 있지만 우리 모두 이주노동자 가족의 이산을 강요하는 공범이 된 듯해 몹시 씁쓸해졌다.

▲김미선 사무처장.
일본에서는 몇 년 전 불법체류 가족들이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법무부를 찾아가 학업을 마칠 때까지만 가족들이 추방되거나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특별체류허가를 받은 사례가 있다. 즉 취학아동이 학업을 마칠 때까지 강제퇴거 조치를 중단하는 것이라서 '불법체류자'에 대한 사면은 합법화까지 못 미치는 미흡한 조치였다. 그러나 부모와 떨어져 홀로 남는 지혜에 비하면 그나마 일본의 특별체류허가가 인도적이라고 생각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8월 17일부터 고용허가제가 전면 실시됐다. 그와 함께 정부는 약속대로 불법체류 외국인 또는 그들을 고용한 고용주에 대한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과 같이 특별체류허가조차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혜를 다시 만나면 그 부모가 몽골로 돌아갔는지 아이에게 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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