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파업이 한창 진행 중인 8월 18일 서울 마포구 창전동 이랜드 사옥 앞마당에 설치된 농성텐트에 배재석 위원장은 없었다.
그는 그 시간 서울 서부지방노동사무소 앞에서 노조탄압 및 부당노동행위를 방기하는 노동부 규탄집회를 이끌고 있었다. 배 위원장은 벌써 65일째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 찌는 듯한 더위와 지리한 장마 그리고 회사측의 냉담한 반응 등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회사의 민주화와 동료 노동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회사를 상대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규탄집회가 한창이던 18일 오후 2시 30분경 집회 현장에서 그를 만나 노조의 요구사항과 앞으로의 투쟁방향을 들어보았다.

-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노조에 대한 비판의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노동 조합원이 전체 직원의 10% 정도에 머물러 전체사원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같은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요구는 결코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금인상의 경우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IMF로 인해 동결되고 삭감된 부분에 대한 인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회사가 자행하고 있는 부당노동행위는 노동부로부터도 불법 판정을 받은 만큼 하루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현재 회사는 정규직 근로자들의 업무를 비정규직 파견근로자들에게 맡기고 있고 이는 분명한 부당노동행위입니다.

현행 파견근로자법에서는 근로자 파견법에 의한 파견대상은 아주 일시적인 경우, 즉 직원이 출장을 갔다거나 임신으로 휴직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결원이 생겼을 때 이를 보충하기 위한 경우에만 파견근로를 허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파견근로자법과 근로기준법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도 동일한 노동을 하는 경우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회사측이 행한 파견근로는 전형적인 불법파견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조원이 전체 직원의 10% 정도인 220명에 불과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회사의 지속적인 노조 탄압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93년 노조가 결성될 때만 해도 전체 직원의 50%를 상회하는 800여명이 참여했으나 노조 활동으로 인한 승진누락 등의 불이익이 계속되자 대부분의 사무직 직원들이 탈퇴해 지금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 22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측의 노조관이 개선되면 이 문제 역시 쉽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회사측의 노조관(勞組觀)을 지적하셨는데 회사측의 노조관은 어떤 것입니까.
단적으로 박성수 회장은 노조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직접 교섭에 나온 일이 없습니다. 박성수 회장은 노조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용노조를 원하는 셈이지요.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 노조의 요구사항은 어떤 것들인가요.
올해 투쟁의 핵심은 박 회장과의 직접교섭입니다. 사실상 지난 8년은 노조인정을 둘러싼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사측은 지난 6월말 유효기간이 만료된 단협에 대해 일방적으로 해지통보한데 이어 손해배상소송, 징계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 506,000원의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을 포함해 4년째 삭감·동결된 임금인상과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규직 보강, 부당노동행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박 회장이 신앙윤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박 회장의 신앙관이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씀해 주시죠.
박 회장은 리더는 하나님이 세운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노조는 대표적인 불순종 문제집단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기업논리와 신앙윤리는 엄격히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랜드의 경우 기업논리와 신앙윤리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윤리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것인데 박 회장이 정리해 놓은 기준에 맞춰야 하는 것이 오늘의 이랜드 실정입니다.

-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고 8명의 노조원이 단식농성에 돌입했는데 앞으로 투쟁일정은 어떻게 잡아갈 생각입니까.
파업이 장기화되고 회사의 탄압이 거세지는 만큼 노조원들의 결속은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10개항의 요구사항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란 것을 회사측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다만 박성수 회장의 의지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 만큼 박성수 회장의 직접교섭을 계속해서 요구할 것이며, 끝내 협상테이블에 나오지 않는다면 회사측의 불법·부당 노동행위 즉 △불법파견근로 △불법파견근로자 일방적 해고 △부곡분회 조합원(직영 비정규직)에 대한 일방적 계약해지 등을 근거로 박성수 회장을 직접 고소할 방침입니다.

이번 파업은 우리 노조원들이 사탕 하나를 더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지켜내기 위한 싸움입니다. 단식농성에 돌입한 8명의 노조원들의 이 싸움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분명 저들은 우리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파업을 결의할 때도 그랬듯이 모든 합법적인 방법을 총동원해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끌 것을 전 노조원 앞에 약속드립니다.

지난주에는 퇴사자들을 중심으로 노조후원회가 결성돼 투쟁기금을 보내온 일이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노조 집행부 임기 말인 내년 10월까지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계를 비롯해 시민단체들과의 연대도 모색해 나갈 방침입니다. 끝으로 노동조합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의 매우 소중한 조직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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