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을…." 이번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을 보며 우리 모두가 내뱉는 말이다. 피해자의 가족은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일인가. 이처럼 무고한 죽음은 어디에 호소해야 할까. 입에 담지 못할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가까이 있는 현실이다.

참담한 현상이 어디 우리 사회뿐인가.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가까이는 이라크 전쟁이 그렇고 아프리카 내전의 처참한 상황과 각종 재난으로 생명을 잃고 폐허가 된 것이 그렇다. 개인이 악의 노예가 돼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것처럼 단체나 국가도 독선과 무력에 사로잡혀 평화를 깨고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다. 처음에는 주저주저 하다가도 한 번 두 번 저지르면 감각이나 양심이 무뎌져 연쇄적으로 끔찍한 일을 벌이게 된다.

경제가 점점 어려워지는 일보다 도덕적 타락으로 서로를 적대시하고 더불어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더 문제다. 가치관이 물질화 되어 있고 개인 이기주위로 가장 소중한 공동체인 가정은 깨어지고, 종교는 더 이상 쉼과 희망이 없는 것이 우리의 위기다.

교회가 절망하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가? 소외 받는 이를 위로하는가? 능력 없는 사람과 같이 걷고 있는가? 가난한 이웃과 고통 받는 사람에게 나눔과 섬김이 구체적으로 있는가? 목회 일 하기는 왜 이리도 어려운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행하셨던 일은 외면하고 우리들끼리 모여 즐기고 있으니, 어찌 강도 만난 이웃의 신음이 들리겠는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사람을 보고도 외면한 그 당시 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요즘의 기독교와 매우 비슷하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의 기도를 물리치시며 우리의 길을 막으시고 자꾸 어려운 현실을 목격하게 하시는 것 같다.

교회는 울어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목사와 지도자들은 예레미야 같은 애통함을 가져야 할 때이다. 목사는 가난해질 필요가 있고 성도는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 어려움 속에서 섬기는 농촌 목회자들은 용기를 갖고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눈물을 흘리려면 자신이 직접 고통 속으로 들어가 남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안아야 한다.

▲ 방인성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진정한 영성은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환각 상태로 들어가거나 현실에서 자기 욕구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분별력을 갖고 하나님나라를 희망하며 현실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없도록 그리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회여, 울고 또 울고 애통하자. 우리사회 뿐 아니라 지구상에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함이 거두어지도록 용기를 갖고 눈물로 외쳐야 한다. 하나님이 더 이상 외면하시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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