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씨의 이라크행에는 가나무역에 제출한 이력서 내용이 말해주듯 선교의 목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리고 그가 죽기 전까지 몸담았던 가나무역 역시 표면적으로는 미군 군납업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준 선교기관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 ⓒ뉴스앤조이 신철민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이나 실질적인 회장 김비호 장로는 걸프전 이후 10년간 중동 지역에서 미군에 군납 업무를 해오면서 소위 ‘중동통’으로 활동해 왔다. 한국 개신교의 양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얼마 전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은 것도 이들이다.

가나무역은 한국인 직원 15명 중 11명이 크리스천일 정도로 선교비전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김선일 씨가 가나무역 입사원서에 선교적 소신을 담은 것으로 볼 때, 가나무역은 예전부터 선교비전을 앞세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크리스천 직원 11명 대부분은 30대 전후(온누리교회 청년 4명 포함)의 젊은이로 채워져 있다. 김선일 씨는 매니저로 불렸으며, 젊은이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즐겨 부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선일 씨가 가나무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가나무역 사장 김천호 형제와 같은 교회를 다녔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 강서구 신정2동 목양교회(담임목사 임준식)에 출석했으며, 이 교회 교인인 가나무역 김천호, 김비호 형제와 만난 인연으로 중동선교의 꿈을 품고 이라크로 향한 셈이다.

또 목양교회는 가나무역을 이끌고 있는 김 씨 형제의 영향으로 10여년 전부터 일찌감치 중동선교에 관심을 보였으며, 김선일 씨가 이라크 현지 생활에 잘 적응할 경우 정식 선교사로 발탁할 계획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나무역 김천호 사장은 이 교회 집사이며 친형인 김비호 회장은 장로로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본부를 두고 있는 중동기독실업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김비호 장로는 국내 중동선교 관련 교회나 단체 등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 가나무역 회장 김비호 장로는 중동기독실업인연합회 회장으로 한국교회의 주요 인사들이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안내를 맡는 등 중동통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 9월 4일 김 장로는 쿠웨이트에서 한국교회이라크지원대표단에게 5월에 전달된 1차 의약품 지원의 분배 결과를 보고했다. 사진은 당시 대표단이 서희제마부대에 위문품을 전달한 후 찍은 기념사진이다. ⓒ뉴스앤조이
가나무역, 교계에 잘 알려진 중동 선교루트

한편 한국의 대형교회 중 선교에 가장 열성적인 교회로 알려진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서울시 용산구 서빙고동 241-96)는 김선일 씨 죽음과 관련, 장례와 보상 문제에 깊게 개입하고 나서 이 교회와 김선일 씨의 죽음 그리고 가나무역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세간의 관심이 증폭된 바 있다.

온누리교회의 적극적인 활동 때문에 김선일 씨가 온누리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가 아니냐 혹은 온누리교회가 가나무역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갔다. 특히 정부 측은 유족들과 보상협상에 온누리교회가 깊게 개입하자 유족들이 아닌 껄끄러운 종교단체를 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심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또 여러 정보기관에서도 이 교회가 김선일 씨 죽음에 개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부산하게 움직인 바 있다.

일단 온누리교회는 여러 언론의 취재 공세가 시작되자 공식적으로 김선일 씨와 가나무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교회 측의 해명은 김선일 씨는 교인이 아니며, 선교사로 파송한 사실도 없다는 것, 그리고 가나무역 역시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온누리교회의 공식 해명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수긍할 부분도 있으나 종교적 시각에서 보면 실제 관련성을 상당 부분 축소한 것이다. 김선일 씨의 죽음에 이 교회는 필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실제 김선일 씨는 바그다드 한인연합교회 개척멤버로 지난 4월 19일 이라크한인연합교회 강부호 목사를 비롯, 모든 선교사들이 피신한 상황에서도 한 달 정도 현지에 있는 외국인노동자들과 함께 교회를 지키며 예배를 인도한 이 교회의 실질적인 ‘목자’였다.

▲ 6월 27일 부산의료원을 찾은 온누리교회 교인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규
온누리교회 청년 4명 이라크행, 김선일과 흡사

한편 김 씨의 친구들이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는 연초 계약이 만료돼 국내에 들어오고 싶어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가나무역이나 온누리교회는 이라크 지사를 새로 설립하고 교회까지 세운 시점에서 김선일과 같은 성실한 일꾼이 무엇보다 필요했기 때문에 그의 귀국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종교적 이유 때문에 김선일 씨의 귀국이 늦어지고 결국 파병정국이라는 불행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말려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온누리교회는 가나무역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가나무역 김비호 회장은 중동선교실업인회 차원에서 온누리교회와 힘을 합쳐 바그다드한인연합교회 설립에 힘을 보탰다. 또 교회는 교인들에게 가나무역을 선교비전을 가진 업체로 소개하고 직원채용 공고까지 내걸었다.

사실 김선일 씨의 이라크 행에 이 교회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됐다는 소문이 나돈 것은 김천호 사장의 가나무역에 현재 온누리교회 청년·대학부 소속 교인 4명이 직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 아무개 등 대개 20대 중후반의 젊은이로, 가나무역은 선교 관점에서 소개한 온누리교회의 노력이 맺은 결실이다. 4명의 청년이 분명한 선교목적을 띤 채 가나무역 직원으로 채용돼 이라크로 들어간 것은 김선일 씨의 이라크행 동기와 방법에서 너무나 흡사하다.

사실 가나무역이나 온누리교회는 김선일 씨 죽음과 관련, 세간에 회자되는 것처럼 숱한 의혹을 받았지만 그 의혹의 실체는 그다지 비난 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죽음이 몰고 온 큰 파장과 더불어 김천호 사장이나 교회가 그의 피랍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 역시 눈덩이처럼 부풀었던 셈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선일 씨의 죽음은 이라크 선교를 위한 한국교회의 열정 혹은 욕심이 불행한 역사적 상황과 어우러져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이다. 가나무역은 결국 기독교에서 ‘땅 끝'으로 불리는 이라크를 향한 한국교회의 선교적 열정을 현실로 이뤄내는 비밀창구였다. 또 김선일 씨는 그 비밀루트를 통해 이라크로 들어가 예배 인도자가 사라진 바그다드한인연합교회를 외롭게 지킨 비밀 선교요원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가나무역과 온누리교회는 이라크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도 이 비밀선교요원에게 끝까지 임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다 결국 비극을 불러들였다.

(이 기사는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7월 6일자에 실렸습니다. 단 일부 첨삭된 부분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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