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일의 죽음을 순교로 보는 시각에는 한국교회의 팽창주의적 혹은 제국주의적 선교관이 포함돼 있다고 기독교 지도층 인사들은 말한다. 따라서 그의 죽음 속에는 한국교회 선교관에 대한 깊은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김선일의 죽음은 한국기독교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그의 장례식이 한국기독교 역사상 초유의 범기독교연합장으로 치러진 것은 그 죽음이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김선일은 서울 신정동 목양교회(임준식 목사)의 예비선교사 자격으로 이라크를 향해 떠났으며, 온누리교회(하용조 목사)에서도 지난해 6월 대학청년부 차원에서 파송절차를 거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되기 전까지 바그다드 한인연합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등 이 교회의 목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그는 한국교회 선교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라크에 피를 뿌린 기독교인일 수도 있다. 교계 일각에서 그의 죽음을 가리켜 ‘중동선교의 밀알’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교계에서 그를 사실상 순교자로 추켜세우는 것은 전체 기독교계나 일반 사회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선교지상주의적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다. 선교 목적을 띠고 이라크행을 택한 것과 이라크 한인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한 경력만으로 순교자라는 직함을 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미 군납업체 가나무역 직원으로 활동하던 중 피랍됐고,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전쟁의 소용돌이와 한국군 파병이라는 국제관계의 정치적 메카니즘 속에서 희생됐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그를 선교사이기 때문에 혹은 그리스도를 증거했기 때문에 죽였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김선일의 죽음을 순교로 채색하는 시각은 어떻게 해서 탄생한 것일까. 기독교 지도층 인사들은 이런 시각을 한국교회의 팽창주의적 혹은 제국주의적 선교관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분석한다.

박상증 이사장(아름다운재단)은 “17세기 이후 개신교의 선교방식은 과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 선교사를 보낸 것과 흡사하다”고 지적하고 “한국교회 역시 마찬가지다”고 말한다. 박 이사장의 견해는 김선일 씨가 일했던 가나무역이 미군 때문에 존재하는 기업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고 동시에 선교적 비전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제국주의적 선교모델의 전형이라는 지적인 셈이다.

또 한완상 총장(한성대)은 “선교란 그리스도인이 자기를 비워 남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이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만이 선교가 아니다”고 말하고 “한국교회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구원받지 못한 불쌍한 존재로 보고 개종시키려고 하는 자세를 벗어나서 성숙한 선교로 올라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만자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도 “19세기 아시아와 제3세계를 향한 선교는 피선교지 중심적 사고보다는 소위 선진화된 서구문명을 확대시키고 주입시키는 ‘기독교 이식’이 주류였다. 전제하고 “그런 선교방식은 올바른 것이 아니며 지금은 선교를 통해 피선교지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생명력 있고 풍요롭게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선교는 단순히 보내는 것보다 목적이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중동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개종 선교보다는 전쟁과 종교 간의 갈등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방식이다”고 말한다.

결국 김선일의 죽음과 순교를 동일시하는 시각 속에는 한국교회의 왜곡된 선교관이 근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그의 죽음 속에는 한국교회 선교관에 대한 깊은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과제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이라크인에 대한 사랑과 애정 그리고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정신은 이제 한국기독교가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좋은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다.

한 총장은 “김선일 씨는 죽는 순간까지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제발 이라크에 들어와 있는 한국군을 철수하라고 절규하며 죽어갔다”며 “그의 죽음을 순교로 높이는 대신 그의 절규를 우리 기독교가 평화의 운동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경재 목사(안동교회 원로)는 “그가 선교하러 이라크에 간 것인지 일하러 간 것인지를 떠나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파병 반대 입장에 서야 하고 또 다른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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