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손. ⓒ박철
한 수도원에 밥만 많이 먹던 수사가 한 명 있었다. 이를 눈여겨보던 다른 한 수사는 그것이 무척 못마땅했다. 자신은 한번도 밥을 한 그릇 이상 먹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언제나 철저한 극기와 절제의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밥만 축내는 형제가 어찌나 미워 보였던지.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둘 다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됐다. 고행에 열심이었던 "밥 한 그릇 수사"는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게 됐다.

천국에 들어가게 된 '밥 한 그릇 수사'는 여유 있게 천국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만날 밥만 축내던 그 수사, "지옥 아니면 적어도 연옥쯤 있으려니"했던 그 수사가 자기와 똑같이 천국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밥 한 그릇 수사"는 즉시 베드로 사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따졌다. "이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 공평하신 하느님이라고 늘 강조하셨는데, 전부 거짓이었단 말입니까?"

묵묵히 듣고만 있던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상황을 설명했다. "자네, 혹시 단 한번이라도 저 친구 마음 깊숙이 들어가 본적이 있는가? 사실 저 친구의 적당량은 밥 두 그릇이 아니라 세 그릇이었다네. 원래 세 그릇을 먹어야 했었는데, 저 친구 그걸 참느라고 한평생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네는 모를 걸세. 그렇다면 결과는 당연히 천국이지."

우스개 소리 같지만 하느님의 시각과 인간의 관점, 하느님의 사고방식과 인간의 사고방식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잘 설명하는 이야기이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상상이나 인간적인 사고구조를 완전히 초월하는 나라다. 우리가 하느님을 뵙게 되는 날,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서 펼쳐질 상황은 너무도 뜻밖의 것이어서 기절초풍할지 모른다. 하느님 나라는 인간적인 계산방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 인간의 사고구조를 훨씬 능가하는 특별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정말 가슴 철렁한 말씀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사는 사람들, 교회 가까이 사는 사람들, 나같은 성직자들, 봉사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섬뜩한 말씀이다. 하느님 나라는 성직자들이라고 해서 공짜로 주어지는 선물이 절대로 아닐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겉이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들, 말 잘하는 사람들, 교회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주어지는 선물 역시 절대로 아닐 것이다.

겉은 비참해 보이지만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한 평생 가난과 병고, 갖은 장애로 시달리던 사람들, 철저한 소외와 좌절 속에서 끝없는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 그들은 이 세상에서부터 이미 십자가의 길을 충분히 소화해낸 사람들이며, 끝까지 견딘 사람들이니 하느님 나라 예약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본 훼퍼(Dietrich Bonhoeffer)는 "기독교가 무엇이냐?"하는 물음을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때때로 본질적인 것은 버려두고, 전혀 본질과는 관계없는 것을 붙들고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려고 하는 때가 있다. 신앙과 생활의 일치된 모습이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삶 속에 드러나지 않는 진리는 생명이 없는 이론이거나 속과 겉이 다른 속임수일 가능성이 많다.

진리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적 신앙고백은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삶과 유리된 믿음, 때와 장소에 따라 편리한대로 그 얼굴빛을 달리하는 기회주의적인 믿음은 인간에게 종교적, 심리적인 위안을 줄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적 신앙과 참으로 거리가 먼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12년 전 정회원(감리교단) 자격 심사를 받을 때의 일이다.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초조한 심정으로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호명되어 심사장에 들어갔다. 여섯 분의 심사위원들이 모두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그 중에 연세가 지긋하신 어느 목사님이 내게 물으셨다.

"박 목사, 박 목사는 어느 때가 제일 고민이 되던가?" "네. 제가 강단에서 좋은 말은 다하고 저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그때가 참 괴롭습니다."

▲ 박철 목사. ⓒ박철

12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답은 마찬가지이다. 신앙은 하느님의 사랑에 온통 사로잡히는 것, 그 사랑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 그 사랑이 자기 자신을 결정하도록 온통 내맡기는 행위이다. 이렇게 빛이신 예수께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살지 않는다.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른 빛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Rothar Zenetti)

시나브로 계절은 하지(夏至)를 지나 여름 들머리이다. 가뭄 끝에 사나흘 단비가 내리자 온  산천경계가 물기를 머금고 초록세상으로 변했다. 새로운 생명의 기운이 충만하다. 생명의 신비가 빛나는 이 계절에 우리의 신앙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물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호승 詩.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하늘의 별로서 슬픔을 노래하며
어디에서나 간절히 슬퍼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슬픔의 가난한 나그네가 되소서
슬픔처럼 가난한 것 없을지라도
가장 먼저 미래의 귀를 세우고
별을 보며 밤새도록 떠돌며 가소서
떠돌면서 슬픔을 노래하며 가소서
별 속에서 별을 보는 나그네 되어
꿈속에서 꿈을 보는 나그네 되어
오늘 밤 어느 집 담벼락에 홀로 기대보소서

(이 글은 신앙세계 2004년 7월호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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