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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가는 동안이 더 재미있다
  • 김재성 (kimjaeseong@hanmail.net)
  • 승인 2000.08.17 00:00
모처럼 가족과 함께 동해안으로 피서를 가기로 했다. 경포대를 갈까 했는데, 피서철이면 상습적으로 막히는 영동고속도로를 생각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녀온 사람들이 그러는데 서너 시간이면 갈 거리를 일곱 여덟 시간이 걸려서 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덜 몰리는 평일에 고속도로 대신 비교적 덜 막히는 국도를 타고 화진포로 가기로 했다. 양평, 홍천, 인제를 거쳐 진부령을 넘어가는데, 굽이굽이마다 경치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다가 여러 번 쉬어 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난 옥수수와 감자를 사기도 하고, 그곳의 별미를 사 먹어보기도 했다. 여행이 끝나고 돌이켜 보니 화진포에서 하루종일 해수욕을 한 것보다도, 가며 오며 느낀 강원도의 정취가 더 가슴에 남은 것 같다.

사람들은 대개 고속도로를 더 좋아한다. 그것은 가장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해 주는, 목표지향적 길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위에서는 주변경관이나 정취를 느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가는 사고가 나기 십상이다. 속도계와 시계만을 번갈아 보면서 달린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140을 놓고 왔느니 160까지 달려 봤느니 하는 것이 화제거리가 될지언정, 어디로 해서 무얼 보고 왔는지는 말할 것이 없다. 쉬는 곳도 정해진 휴게소들이고 먹는 것도 가락국수, 호도과자 등 어디에서 먹으나 맛이 비슷비슷한 것들이다.

그것은, 인생의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향해 무섭게 치닫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교회는 이런 것을 더욱 철저화했다. 가다가 쉬거나 곁눈질하는 것은 곧바로 죄악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보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목표를 향해서 인내하고 절제하며 앞만 바라보고 달리는 삶만이 모범적인 것으로 제시하였다.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빙전이 되곤 했다: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숙한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하십시오"(빌 3:12-15a, <표준새번역>).

얼른 보기에, 이 구절들은 정해진 목표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인간상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에서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 맨 끝에 나오는 '성숙한 사람'이 누구를 의미하느냐가 논란이 된다. 일반적 의미로 말한 것인지, 아니면 빈정대는 의미로 말한 것인지 하는 것이다. 앞 뒤 문맥을 볼 때 후자가 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빌립보 교회에는, 바울의 가르침을 거슬러서, "예수를 믿더라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며 이미 구원받은 존재라고 주장하였다. '성숙한 사람'(hoi teleioi)라는 말은 '완전한 사람들'이라는 뜻도 되며, 어원의 의미를 따지면 '목표에 다다른 사람들'이라는 뜻도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할례와 같은 율법을 지키는 데서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했다.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자들과 같이, 지금 여기서 성령을 받고 신령한 사람이 되었으니 이미 구원이라는 목표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였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하고 엄히 경계한다(빌 3:2).

위의 구절들은 이런 맥락에서, 목표만을 향해서 치닫거나, 이미 목표에 이르렀다고 자만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말한 것이다. 바울은 세 번이나 거듭해서, "내가 이것(목표)을 이미 얻은 것이 아니다",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바울은 그런 '완전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명문 가문인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흠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다(5절).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사로잡힌 이후로 이런 것은 그에게 더 이상 자랑스런 것도, 완전함에 이르기 위한 목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뒤로하고 싶은 것들이 되었고, 그 대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상을 받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가 바뀐 것만이 아니다. 바울의 삶의 자세가 바뀐 것이다. 이전에 바울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해 가면서까지, 목표를 성취하는 것만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목표를 향하여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두 번이나 거듭해서, 자신은 목표를 향하여 "좇아가고 있다",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동사는 둘 다 dioko의 현재형(=현재진행형)이다. 목표에 이르는 것보다도, 선한 목표를 향해서 현재 달려가는 삶 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바울은 목표 지향적인 사람의 눈으로 보면 특별히 이룬 것도 없다. 교회의 터를 놓았을 뿐 완성된 것을 보지 못했고, 그 자신 좋은 지위에 올라서 편안하게 산 것도 아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거나 이른바 출세를 한 것도 아니다. 손수 노동을 하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고, 온갖 수난과 박해를 받다가 마침내 순교를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목표가 선한 것임을 확신하기에 그것을 향하여 달리는 하루하루의 삶에서, 그것이 감옥 안이라고 할지라도, 기뻐할 수 있었다.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경험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감동적으로 적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옥 안에 열악한 환경에서 쓰러져갈 때, 그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이 그들을 살아 남게 했는지 연구했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삶의 의미를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가 아우슈비츠 감옥에 들어갔을 때, 소중하게 여겨온 출판 원고를 몰수당했다. 그후로 그는 그 원고를 꼭 다시 써야겠다는 열망으로 종이 조각에 메모를 하고 재편집을 했다고 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런 것이 하루하루의 삶을 의미로 채워 주었고, 수용소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즉 사람에게는 "이미 성취한 것과 앞으로 달성해야 할 것 사이의 긴장, 혹은 현재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미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의 사이에서 차이에서 오는 긴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정이나 생물학계에서 일컫는 항상성, 즉 무긴장의 상태"가 아니라, "그에게 어떤 가치 있는 목표를 위한 노력과 투쟁"이라고 한다.

선한 목표에 사로잡히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기다림과, 노력과, 고생을 어서 벗어나야 할 지긋지긋한 것으로 보지 않고, 목표 못지 않게 소중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인생도 하나의 여행이라면, 목적지를 향해서 치닫는 것이 아니라, 가는 동안 굽이굽이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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