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정 신부가 외국인노동자 쉼터 샬롬의집 사목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6월 20일 오랜만에 사제복을 입고 처음 예배를 집례하고 있는 이재정 신부. ⓒ뉴스앤조이 최소란

이재정 신부가 만 5년 간의 정치생활을 접고 대한성공회 산하 외국인노동자 쉼터 샬롬의집(소장 이정호 신부) 사목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성공회대 총장을 지낸 이 신부는 지난 99년 성공회 사제직을 휴직하고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으로서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올 1월 불법 대선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가 3월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 신부는 구속 직후 성공회 사제직과 교수직 사직서를 서울교구(정철범 주교)에 제출했으나, 정철범 주교는 사직서를 반려하고 이 신부를 샬롬의집으로 발령냈다. 6월 20일 이재정 신부가 오랜만에 다시 사제복을 입고 처음 예배를 집례한 샬롬의집에서 몇몇 기자들과 그를 만났다.

"국회의원은 안 해도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남는다"

이재정 신부는 정치인으로서나 사제로서나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한 모습이라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정치인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다한 후 지금은 본래 성직자의 역할로 돌아온 것뿐이라는 얘기다. 그는 최근 모 일간지 기사에서 자신을 "돌아온 탕자"로 표현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한화 비자금 연루사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에 들어갔다고 해서 '탕자', 그렇지 않다고 해서 '성자'라는 식의 구별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선자금과 관련됐다는 이유로 '너는 탕자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당을 두 번 만들었고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민주적 사회로 가기 위한 정치권의 변화와 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저에게 정치자금을 준다면 또 (당에) 전달할 것입니다. 다만 지난번에는 그것에 대한 영수증이 발급되지 않았기에 불법으로 규정된 것입니다. 제가 그런(영수증 처리의)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었다면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이지만, 그런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도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성명서도 발표하고 사직서도 낸 것입니다."

▲ 이날 예배에는 샬롬의집 소속 외국인노동자들 뿐 아니라 다음카페 재정사랑 회원 등 이 신부를 격려하고 환영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뉴스앤조이 최소란

이재정 신부는 앞으로 국회의원 자격이 아닌 열린우리당 당원으로 남아 넓은 의미의 정치활동을 펼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이 신부는 "우리사회에서는 흔히 특정한 사람만 정당활동을 하고 종교인은 아예 정치를 멀리 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데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정치는 결코 정치인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국민이 정당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정당과 정치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국회의원이 될 생각은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안 할 것"이라면서 "당원의 신분은 버리지 않고 정당인으로 남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 신부는 "마치 배우가 최선을 다해 연기한 다음에 막이 내리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정치권에서 나의 역할을 마쳤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돌아왔다"고 밝혔으며 "(정치권에서) 금방 떠나온 사람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며 이라크 파병 문제 등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는 또 외국인노동자 문제와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기여하고 싶다고 전하면서 외국인노동자 문제든 교육문제든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입각에 대한 제안도 전혀 생각해 본 일이 없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 외국인노동자 교인에게 영성체를 집례하는 이재정 신부. ⓒ뉴스앤조이 최소란
"고용허가제 개정에 정치 역량 쏟겠다"

이 신부는 앞으로 샬롬의집 사목으로서 주일예배를 인도할 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 해결에도 힘쓸 계획이다. 샬롬의집 등 성공회가 운영하는 각 지역의 쉼터에서 외국인노동자와 지원 간사를 만나 그들의 얘기를 듣고 정치권에 현장의 얘기를 올바로 말해주는 일, 즉 일종의 '로비스트' 역할도 마다않을 예정이다.

그는 법과 제도적인 측면 뿐 아니라 외국인노동자문제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 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외국인노동자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 문제입니다. 전 세계에 수백만의 한국인 디아스포라가 이주노동자,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외국인노동자를 우리보다 어려워서 우리 쪽에 찾아온 손님처럼 잘 대접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게 우리의 책임입니다. 법과 제도적인 노력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국민의 이해를 높이는 역할도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나라가 없습니다. 그들을 우리와는 뭔가 다르고 이상한 사람들로 여깁니다."

이재정 신부는 특히 고용허가제 개정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할 각오를 보였다. 그는 "올 8월부터 시행될 고용허가제에 따르면 4년 이상 불법체류한 외국인노동자들이 강제출국 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면서 "국회에 있을 때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고용허가제 입법안이 환경노동위원회 등을 거치면서 핵심이 빠졌기 때문에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1988년부터 세 차례 총장을 지냈던 성공회대에서 자신의 정치 경험을 토대로 '정치와 신앙', '교회와 정치' 등의 관계에 대해 강의하며 체계적으로 이론화 작업을 하는 꿈을 갖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